일본 한달살이 : 현지인과 함께
식탁 위에는 한국어, 일본어, 영어가 섞여 나왔어. 언어 3개가 복잡해서 대화가 끊어지기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잘 이어지더라고. 내 옆에 계시던 한국인 어머니가 고향 음식이 그리워 한 번도 해 본 적 없던 김치를 일본에서 만들어 먹는다는 말씀을 하셨을 땐 얼마 전 우연히 매운 음식을 먹고 눈물이 났던 기억이 떠오르는 거 있지. 사람 마음은 다 비슷하잖아. 그 공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몰라. 식사가 끝나고 배웅할 땐 서운하기까지 하더라. 밥 한 끼에 이렇게도 정이 들 수 있는 건가. 나는 방으로 다시 들어와 그대로 침대에 누웠어.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몸이 한없이 꺼졌지. 밥은 코로 먹은 지라 식사가 끝난 직후부터 배가 꼬르륵거리고 있었어.
"친구들이 집에 오기로 했어요. 주말에 같이 식사할래요?"
숙소 주인이 나를 모임에 초대했어. 손님은 삿포로에 사는 한국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그리고 시어머니 세 분이었지. 일본인 주인 부부와 나까지 총 6명이 함께 식사를 할 거라 더라고.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좋았어. 더군다나 나는 바쁠 이유가 없는 한량이잖아. 거절할 이유가 없었지. 동족을 만나고픈 마음은 처음 본 사람에게 낯을 가리는 원래 내 성격 따위는 가볍게 눌렀어. 혼자 밥 먹으며 지낸 지 오래되어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 게 어색하다는 사실도 모임에 대한 기대감을 앞서지 못했지.
주인도 아니면서 주인 부부와 함께 들어오는 손님과 인사를 했어. 어색했지만 처음에는 원래 그러려니 했어. 다행히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만큼 다른 점들이 있어 이야깃거리는 산더미였지. 우린 식탁에 놓인 여러 음식 중 낫또 김밥을 보며 김밥과 후도마키의 차이점이 크기에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어. 내가 낫또를 매일 아침 먹는다고 했더니 다들 놀라시더라고. 나는 놀라는 그들의 반응에 더 놀랐어. 일본 현지인들은 우리가 김치 먹듯이 낫또를 먹는 줄 알았거든. 가격도 한국의 3분의 1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일본에서는 더 열심히 먹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제일 꼬박꼬박 먹는 사람이었어.
주인 부부는 일본어와 영어를, 손님들은 한국어와 일본어를, 나는 한국어와 영어를 사용했어. 여러 가지 언어가 섞인 대화의 밑바탕에는 일본인과 거의 일본인이 다 된 한국인들 특유의 배려심이 깔려 있었던 것 같아. 내가 소외감을 느낄 틈을 주지 않았거든. 누군가와 있을 때 불편하지 않는 건 상대가 나를 배려하고 있기 때문인 거잖아. 나는 티 내지 않고 나를 보듬어 주는 그들이 고마웠어. 덕분에 문화 차이로 나도 모르게 실수할까 불안했던 마음도 차분해졌지. 평소에는 식당에서 일본 사람들이 소곤거리는 모습을 구경만 했었는데 그날은 나도 소곤거림에 동참했어. 꽤 재미가 있더라.
"일본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하신 것 같아요." 내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어. 언어 공부 중이신 한국인 어머니가 이런 배려 문화는 일본어에도 그대로 들어 있다고 말씀해 주셨지. 일본에서는 대화할 때 무조건 듣는 상대방을 높이고 나를 낮춘다고 하더라고. 예를 들어, "김개똥 사장님이 나중에 연락드린대요."라는 말을 일본어로 하면 "김개똥이 나중에 연락드린대요."라고 해야지 뒤에 '사장님'이란 단어를 써서 내 쪽을 높이면 안 된다고 했어. 철저하게 상대 중심이었지. 근데 이건 한국어로 직역하면 무례한 말이 되는 거잖아. 번역을 할 때 언어뿐만 아니라 문화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더라. 내가 몰랐던 부분이라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어.
그리고 두 가족 모두 키우고 있는 앵무새 이야기도 했어. 새가 강아지와 성향이 비슷하대. 같이 놀아달라고 소리를 내고 쓰다듬어 달라고 머리도 내밀고 말이야. 하루는, 한국인 남편이 머리 위에 복순이(키우는 새)를 얹고 쓰레기 분리배출을 하려고 아무 생각 없이 현관문을 연 거야. 그때 새가 '자유다!' 싶었는지 하늘로 날아갔지. 날아간 새를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누가 생각하겠어. 남편은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그래도 날아간 방향으로 새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붙였다 하더라고. 마침 복순이도 창문을 열어놓은 어떤 집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에 사는 할머니가 새 찾아가라고 또 전단지를 붙인 거야. 결국, 두 전단지를 모두 본 동네 사람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복순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대. 경험담을 듣고 있는데 할머니께 옛날이야기를 듣는 듯했어. 사람 사는 냄새가 폴폴 나더라고.
두 시간쯤 지나고 우린 헤어졌어. 주인 부부와 함께 뒷정리를 하는데 식구 같은 느낌이 들더라. 하긴 '식구'가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란 뜻이니 지금은 맞지 않을까. 주인이 내게 한국인 어머니가 말을 많이 하는 걸 처음 봤다고 귀띔해 주셨어.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아 모임에서 여태 거의 조용히 계셨던 듯하더라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분께 반가움의 대상이 된 거지. 공짜로 떡 얻어먹은 기분이었어. 나의 반가움도 잘 전달이 됐겠지? 일본인, 한국인 모두 한 식탁에서 같이 밥 먹으며 재미있게 보냈어. 이야기하느라 밥을 잘 못 먹은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이런 배고픈 식사라면 다음에도 언제든 환영이야. 잠시 누웠다가 바로 편의점에 가서 요깃거릴 사 왔어. 그리고 굶었던 것처럼 신나게 먹었지. 여러 모로 행복한 식사였어.
대문사진 : 픽사베이(사람들과 인사하고 이야기한다고 식사 사진을 못 찍어서 픽사베이 사진 써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