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한달살이 :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버스를 타자마자 마음 놓고 졸기 시작했어. 어차피 10분 정도 지나면 사람들이 우르르 내릴 걸 알고 있어서 나도 그 속에 합류만 하면 됐거든.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목으로 여유 있게 리듬을 탔어. 반수면 상태가 조금만 더 깊었다면 흥까지 가미해 꾸벅거렸을 거야. 조는 게 이렇게나 자랑스러울 일인가. 겸연쩍긴 했지만 적어도 나에겐 꽉 찬 버스 속에서 느끼는 평균 이하의 심박수는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었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첫날이 떠올랐어. 분명 숙소로 들어오는 차였음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제대로 찾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긴장을 풀지 못했었지. 그때와 비교하면 10분 겨우 타는 버스 속에서도 졸 수 있는 지금은 여간 여유로운 게 아니잖아. 시간은 허투루 흘러간 게 아니었구나 싶어 쏟아지는 졸음이 더욱 고소하더라. 버스는 어느 정도 가다가 속도를 줄였어.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 사람들도 주섬주섬 일어나기 시작했지. 그제야 나도 게으르게 눈을 뜬 후 느리게 차에서 내렸어.
혼자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다녀오는 길이었어. 여행 마지막 날은 각자 흩어졌다가 저녁에 모여 같이 밥을 먹기로 했거든. 식구들과 함께 오고 갔던 길을 종일 혼자 다니며 외로움과 홀가분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아. 뉴욕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잖아. 군중 속 고독이 올라오더라고. 허전함을 느끼며 계속 걸었어. 그러다 길을 잃기도 했지. 식구들과 함께였다면 빨리 해결했어야 할 일인데 혼자 있으니 가다 보면 나오겠지 싶은 정도의 일이 되더라. 가진 건 시간밖에 없는 내가 뭐가 걱정이었겠어. 여유인지 게으름인지 정확히 알 순 없었지만 정글 같은 뉴욕을 가족들과 함께 다니며 생긴 것만은 틀림없었어.
박물관은 생각보다 컸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한쪽 구석에 서서 동서남북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봤어. 나 빼고 다들 뭔가를 아는 듯했지. 동시에 내가 왜 여기에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 그래도 이미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후잖아. 부끄럽긴 하지만 그때 올라온 본전 생각이 도망가고 싶었던 내게 힘을 줬던 것 같아. 함부로 돈을 낭비하는 건 용서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조금씩 어슬렁거리며 주변 그림들 제목을 보고 설명도 읽기 시작했어. 그러다 우연히 내가 아는 화가 이름을 발견했지. 한 번쯤은 본 적 있는 그림들도 보이고 말이야. 순간 몸에서 힘이 쑥 올라오더라고. 얄팍하게 가지고 있는 그림 지식이 작품을 감상하는데 흥을 돋아줬지. 퍼즐을 맞추는 느낌이 들어 점점 재미가 들었어.
실물 그림이라 작가와 교감하는 정도도 달랐던 것 같아. 특히 피카소 이름을 보기 시작하면서 더 그랬지. 나는 그의 초기 작품 앞에 오래 있었어. 피카소의 유명한 그림들은 대부분 이해하기 어렵잖아. 그런데 어릴 적 그렸던 작품들은 사실적인 부분이 많아 보기 훨씬 편하더라고. 나는 그 변화가 궁금했어. 그래서 눈앞에 있는 피카소 그림에 대한 정보를 바로 인터넷으로 찾았지. 그는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에서 탈피해 점점 대상의 본질만을 그리려 노력했다더라고. 그건 대상을 이해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었어. 나의 본질은 뭘까. 피카소가 나를 그렸다면 어떻게 그렸을까. 문득, 질문이 떠오르더라. 그리고 그가 찾은 답을 나도 찾고 싶어 후기 작품을 보고 또 봤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어. 그림이 아니라 어려운 철학책을 읽는 듯했어.
내가 본 피카소 초기 그림 중 자화상은 3점이었어. 그림 속 화가는 행복해 보이진 않았지. 잘은 몰라도 그만의 그림 세계를 찾기 전처럼 느껴졌어. 창작의 고통이 커질수록 점점 더 답답하지 않았을까. 다소 어둡게 보이는 어릴 때 자화상은 훗날 그림의 밑거름이었을 거라 생각해. 그나마 내가 그의 고민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었던 건 그가 애인과 함께 테이블에 앉아 있는 그림 앞에서였어.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애인은 그를 보지 않고 있었고 피카소는 냉소적이면서도 쓸쓸해 보였지. 인간적인 고뇌가 그대로 느껴지는 그림이었어. 그가 이 작품을 훗날 다시 그렸다면 어떤 그림이 됐을까. 그 속에 든 본질은 사랑이었을까.
피카소 그림을 보면서 옛사람들의 그림을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예술 속에 삶의 답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림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피카소와 나를 연결하고 있었거든. 할 수만 있다면 그림 한 점을 두고 진하게 인생에 대해 토론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 피카소를 거장이라고 부르는 정확한 이유를 나는 몰라. 그가 본질을 그렸다고 하는 후기 작품들을 여전히 이해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그래도 언젠가는 그의 그림을 읽어 보고 싶어. 그래서 그가 생각한 삶의 본질이 내 것과 결이 같은지 알고 싶어. 그때가 되면 그가 그린 나의 자화상도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내가 직접 그려봐도 되고 말이야.
피카소와의 만남은 2시간 정도에서 끝이 났어. 언제 다실 볼 수 있을진 모르지만 오늘이 마지막이 되진 않을 듯해.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으니까. 입장료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돌아오며 나는 만족감에 부풀어 있었어. 그리고 저녁에 있을 마지막 식사가 기대가 됐지. 오늘 본 피카소를 식구들에게 알려줄 생각을 하니 밥을 먹지도 않았는데 배가 부르더라고. 다른 식구들은 또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을까. 그리고 여행을 끝으로 각자 하고 싶은 말도 있지 않을까. 마냥 편안했던 여행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할 말이 많을 거라 생각했어. 무슨 말이든 잘 들어줘야겠다고 다짐도 했지. 훈훈한 마무리를 꿈꾸며 사람들 틈에 섞여 버스에서 내렸어.
종일 편안했던 내 심박수는 숙소에서 올라가기 시작했어. 현실은 오징어 게임이었거든.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다들 TV에 푹 빠져 있더라고. 넷플릭스가 잘 되는 숙소에서 '오징어 게임'을 찾은 게 화근이었어. 저녁을 먹은 후 나는 몇 시까지 볼 거냐는 소심한 발언을 두어 번 했다가 씨도 안 먹히는 듯해 조용히 방으로 올라왔어. 그리고 이상은 피카소지만 현실은 오징어인 지금의 나를 자화상 그리듯 글로 썼지. 분위기 잡으려다 마구 납작해지고 나니 화도 나고 웃기기도 하더라고. 가족 여행이라 이런가 보다 생각하니 마무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야. 피카소 이야기는 다음에 하지 뭐. 나는 마치 스스로 이 시간을 선택한 거라는 듯 혼자 거들먹거렸어.
말도 탈도 많았던 9박 10일 가족 여행이었어.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다녀온 것 같다고 말할래. 다소 험난했던 여행 덕분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뭉칠 수 있었으니까. '오징어 게임'을 같이 본 시간까지도 말이야. 자식들이 다 크고 난 후에는 각자의 인생이 바빠 부모와 함께 지낼 시간이 많지 않잖아. 뉴욕은 우리에게 헤쳐나가야 할 정글이었지만 그래서 여기로 가족 여행을 오길 잘했다 싶어. 어려울수록 더 끈끈해지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어. 여행은 그걸 확인하는 시간이었나 봐. 그래! 가족. 그게 여행의 본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