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한달살이 : 혼밥 할 권리
"혼자 드실 분 계세요?"
나는 줄 중간쯤에 서 있다가 손을 번쩍 들었어. 그리고 들어오라는 손짓에 바로 자리에서 이탈해 식당으로 들어갔지. 먼저 서 있던 사람들을 지나치는 게 멋쩍었어. 새치기는 아니지만 배고픈 건 똑같을 테니 나를 보는 눈길을 마주 볼 용기는 안 나더라고. 그래서 고개를 더욱 반대쪽으로 돌리고 빠르게 식당으로 향했지. 식당 안 상황을 알 수 없던 터라 운 좋게 애매한 좌석 하나가 났나 보다 했어. 미안한 마음과는 별개로 입구와 가까워질수록 곧 먹을 수 있다는 기쁨이 스멀스멀 올라오더라.
얼마나 맛있길래 만나는 사람마다 이 집을 이야기하는 걸까? '부산감자옹심이'를 찾은 건 며칠 태백에 있으면서 현지인들에게 제일 많이 들은 식당이기 때문이었어. 시장에 들어가니 애써 찾지 않아도 줄 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 곳밖에 없더라고. 바로 저기구나. 예전엔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식당은 아예 생각도 안 했는데 혼자 한달살이를 하며 시간적 여유가 생긴 후로는 여태 못하고 산 것에만 호기심이 생기는 거 있지. 느릿한 걸음으로 긴 줄에 합류를 했었어. 그리고 한참 줄을 서 있다가 남들보다 먼저 탈출한 거였지.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벽을 타고 일 자 형태로 만들어진 테이블이 있었어. 주인은 내 쪽으로 선풍기를 돌려주며 앉으라고 했지. 나는 뒤를 살짝 돌아봤어. 좌석이 여러 개였는데 그곳에 손님은 나뿐이었거든. 바깥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들어와도 될 것 같았지만 바쁜 식당 안에서 내 의견을 내며 토론할 분위기는 아니더라고. 나는 식당에서 알아서 하겠지 하고 오지랖을 접었어. 그리고 빠르게 움직이는 종업원을 겨우 붙잡아 감자옹심이를 시켰지. 한 번도 보진 못했지만 말로는 이미 몇 번을 먹은 듯한 바로 그 옹심이를 말이야. 드디어 먹는다는 생각에 입이 절로 쩝쩝거렸어.
처음 보는 옹심이는 생각보다 밍숭해 보였어. 낯선 물체에 선뜻 손이 안 가 국물을 먼저 공약했지. 뜨거운 멸치 육수에 감자 전분이 더해져 걸쭉하고 깊은 맛이 나더라고. 담백한 게 내 입맛에 딱이었어. 애매하게 열려 있던 마음이 확 열릴 정도로 말이야. 그 뒤론 옹심이의 낯선 자태 따윈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어. 쫄깃쫄깃한 옹심이는 식감이 약간 거칠게 만든 떡 같더라. 처음 느낀 식감이었는데 깊은 멸치 국물과도 잘 어울렸지. 나에겐 제법 많은 양이었는데도 땀 뻘뻘 흘리며 국물까지 다 먹었어. 김치도 리필해 가면서 말이야. 감자로 몸보신하는 느낌이었어.
먹을 때는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다 먹고 나서도 내 옆은 휑 했어. 바깥에 줄 선 사람들의 수도 여전했지. 그때 알았어. 내가 앉은 곳은 혼자 먹는 손님만을 위한 좌석이라는 걸 말이야. 바 형태로 된 테이블이 있는 식당은 주변에 많았지만 동행이 있는 사람들도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도 비어있는 좌석을 이해하는 데까진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 그 식당에는 1인 좌석이 비어 있더라도 바깥에 사람들은 기다려야 했어. 덕분에 나는 혼자였지만 옆 사람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식사 시간을 즐길 수 있었지. 귀밑에서 흐르는 땀을 닦으며 참 잘 먹었다는 생각을 했어. 옹심이 한 그릇에 배만큼 마음도 불렀어.
혼자 떠돌아다니며 산다는 건 매일 혼자 밥을 먹는다는 뜻이야. 나는 홀로 온 손님을 대하는 식당 주인의 다양한 반응을 경험했었어. 이쪽으론 제법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당은 처음이었지. 고맙더라고. 기대하지 않고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몰라. 생각지 못한 따뜻함에 살짝 울컥하는 걸 보면 나도 모르게 여태 서러운 마음도 들었었나 보다 했어. 내가 언제 어디서든 소수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와닿기도 했고 말이야.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말을 옹심이를 씹으며 더 실감할 수 있었어.
그 뒤로 틈만 나면 옹심이를 먹으러 가. 좀 더 당당히 혼밥 하고 싶을 때는 더욱 말이야.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장사를 하는 가게가 손님들로 매일 북적거려서 다행이야. 그 속에 나도 한 그릇씩 보태고 있어서 뿌듯하고. 태백에서 '부산감자옹심이'를 다녀온 사람들은 알 거잖아. 혼자서 밥 먹을 때도 움츠러들지 않고 당당해도 된다는 걸 말이야. 한 식당의 배려가 한 그릇의 음식을 통해 여러 사람에게 전달 돼. '나 하나쯤 어때'라고 함부로 말하며 살면 안 된다고 밥 먹이며 가르쳐주시는 곳이 아닐까 싶어. 오늘도 가게 앞에는 긴 줄이 있겠지? 왠지 기분이 좋아. 마치 내 가게가 잘 되는 것처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