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작가와의 만남

태백 한달살이 : 젊게 늙는 법

by 마나

요즘 소화는 잘 돼? 똥오줌은 잘 나오고? 별 걸 다 묻는다고? 그래, 내 질문이 당황스러울 수는 있겠다. 그래도 어이없다 생각만 말고 한 번 대답해 봐. 별것 아닌 듯한 게 사실은 별것일 수도 있잖아. 요즘 나는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듣기 좋아. 가끔은 트림 소리도 그렇고. 몸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남이 내든 내가 내든 예전에는 거북했던 소리들이 반갑기 시작하더라고. 웃기지?


소화가 잘 된다는 건 외부에 있는 낯선 것들을 잘 받아들인다는 뜻이래. 대소변이 잘 나온다는 건 익숙해진 것들과의 작별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하는 거고. 어때? 맞는 말 같지? 작가는 두 가지를 다 잘하는 사람은 건강할 거라 했어.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건강해지려고 애쓰며 살고 있네 싶더라. 남들보다 헤어짐을 더 어려워하긴 하지만 말이야.


정선의 한 도서관에서 책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쓴 고미숙 작가를 초청한다고 했어. 책은 내가 읽기엔 좀 어려워 보였지. 허준이 쓴 '동의보감'의 번역서이자 해설서인 듯했어. 그래도 한 번 만나 보자 싶었어. 작가가 자신의 병을 알아보기 위해 동의보감을 읽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거든. 나도 건강해지기 위해 애쓰는 중이니 작가처럼 책을 읽다 보면 뭐든 깨닫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어.


우리는 보통 아프면 병원을 가잖아. 내 몸에 들어온 병이 무엇인지 직접 알려고 하진 않고 의사 선생님의 입만 바라보면서 말이야. 작가는 의사가 처방한 방법이 싫었대.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알아나 보자 싶어 '동의보감'을 읽었다고 했어. 그 후엔 혼자 읽고 말기엔 아까운 책이라 생각해 내용을 쉽게 풀어 다시 책을 냈고. 환자로서 작가는 꽤 능동적이었어. 그를 따라 해 보며 나도 아픔이 배움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수 있었지.


작가는 청춘을 창조하라더라. 생로병사는 인간의 운명 아닌가. 진시황제도 못 찾은 불로초를 어떻게 찾으라는 거지? 나는 강의에 집중하며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했어. 그리고 그다음 작가의 말에서 다시 답을 찾았지. 목소리에서는 생기가 느껴졌어. 작가 앞에서 병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 탐험심을 불러일으키는 미지의 세계 같더라. 몇 살일까.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작가를 보며 문득 그의 젊음을 느꼈어.


그가 찾은 불로초는 소통이었어. 뭐든 주고받으며 유연하게 흘려보내는 것만이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이라더라고.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는 게 많으면 많을수록 우린 꽉 막혀 썩기 시작할 거라 했어. 변비 환자인 나는 답답한 배를 쓰다듬었어. 그리고 작가의 말을 바로 이해했지. 똥도 쓸 때가 있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거구나 싶더라. 내 몸과 잘 소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비는 그저 받아들일 게 아니라 작가처럼 탐구해야 할 대상이라는 걸 알 것 같았어.


잘 소통하기 위해 작가가 제시한 구체적인 방법은 배움이었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배운 것을 다른 이에게 알리는 거야 말로 젊게 살 수 있는 방법이라더라고. 머리로 하는 말이 아니었어. '동의보감'을 읽으며 스스로 자신의 병을 공부한 작가가 마음으로 알려주는 삶의 비법이었지. 그의 삶에서 병은 그를 멈추게 한 게 아니라 새롭게 움직이게 한 동력이었어. 내가 느낀 작가의 젊음은 호기심을 가지고 산 결과물이지 않았을까.


'동의보감'은 전문 의료 지식만이 아니라 다양한 사례들을 보여줘서 읽는 재미도 있다고 했어. 작가의 책은 나처럼 한문에 지레 겁먹고 '동의보감'을 읽을 생각조차 안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징검다리와 같은 책이었지. 배우고 공유하며 소통하고자 노력한 작가의 젊음이 보관된 곳이기도 했고 말이야. 책만 읽었을 때보다 작가를 실제로 뵙고 이야기를 들으며 허준을 더 이해할 수 있었어.


허준이 책을 만든 것도 의원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이 책 한 권으로 많은 질병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대. 고미숙 작가의 책도 허준의 의도를 다른 이들에게 알려주기 위함이었지. 몸은 스스로 돌보며 살아야 한다고 말해주는 듯했어. 내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면서 말이야. 작가의 강의를 들으며 흐른다는 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어. 잘 소통하는 것이 왜 젊음을 유지해 주는지도 말이야.


우리가 제일 두려워하는 암은 몸이 잘 흐르지 못하고 막혀서 생긴 덩어리잖아. 허준은 '통즉불통(通則不痛)' 즉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라고 표현했어. 작가도 이것만 기억하라고 했지. 어렵게 찾은 불로초를 무료로 나눠주는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어. 허준에서 고미숙 작가로, 작가에서 나에게로 흐르는 젊음의 물결이 다시 다른 누군가에게로 흐르기 위해 나는 또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겠다 싶었어.


작가와의 만남은 2시간 동안 진행됐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트림이 나오더라. 오늘 배운 게 소화가 잘 됐나 봐. 신나게 사는 작가님을 뵙고 나니 나도 다시 잘 흐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막힌 것보다는 흘러가는 게 훨씬 재미있어 보이니까. 일단 변비부터 어떻게 뚫을지 고민해야겠어. 성가시다기보다는 궁금한 마음을 가지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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