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 한달살이 : 시골 인심
"국물 더 드려요?"
내가 너무 정신없이 먹었나 봐. 주인 목소리가 들리긴 했는데 잘못 알아들은 듯했어. 그릇에 코 박고 한참을 먹던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들었어. 그리고 주인이 하는 말을 다시 들었지. 국물 더 먹고 싶은지를 묻고 계신 게 맞았어. 콩국수 국물이 리필된다고? 희한한 곳이다 생각했어. 내 귀엔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리필된다고 말하는 듯했거든. 내 마음이 삭막한 건가. 버퍼링이 걸린 나는 잠시 주인을 쳐다만 보고 있었어. 그 사이에도 고소한 콩물은 입안에서 구수하게 퍼지고 있었지.
군침은 돌았지만 주인에게 괜찮다고 했어. 그리고 마음 써 주시는 게 고마워 국물이 맛있다고 덧붙였지. 주인은 웃지도 않고 진지한 얼굴로 당연하다고 하시더라. 일반 가정에서 해 먹는 것처럼 콩을 직접 갈아 요리한 거라 말씀하시면서 말이야. 정색을 하며 자기 자랑을 하는 건 잘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난 또다시 혼란스러웠어. 그렇다고 거부감이 들진 않았던 것 같아. 되레 재미있는 곳이다 싶어 호기심이 생겼지. 음식에 대한 그의 자부심에는 근거가 있어 보였거든. 침이 계속 나오는 내 입도 그 이유 중 하나였어. 그래서 나는 주인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어.
먹다 보니 그릇 아래 부분에 작은 알갱이들이 있었어. 투박하게 갈린 콩 침전물인 듯했어. 나는 숟가락으로 퍼서 야무지게 입에 넣었어. 그리고 입안에서 다시 곱게 갈았지. 주인의 손에서 시작된 요리가 내 입에서 완성되고 있었어. 애초에 더 많이 갈아서 요리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완벽해 보이지 않는 내 앞의 콩국수가 더 좋더라고. 전문 요리사의 음식보다 엄마가 해주신 집밥이 더 당기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말이야. 콩국수 한 그릇을 비워내는 동안 씹는 맛이 있어 안 지겨워 좋다고 생각했어. 적어도 나에겐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진심만 있다면 음식 자체는 완벽하지 않아도 상관없었어.
옆에는 손님 네 분이 보리밥을 시켜 드시고 계셨어. 맛이 있어서 그런지 반찬을 세 번이나 더 달라고 하셨지. 주인은 그때마다 기분이 좋으신 듯했어. 저렇게 장사하면 수지가 맞나? 나는 은근히 밥정이 든 주인이 걱정됐어. 그 손님들도 나와 같은 마음이셨는지 9천 원짜리 보리밥 4인분을 지불하며 4만 원을 주셨지. 거스름돈은 됐다고 하시면서 말이야. 그러자 주인은 또 가만히 있질 못하고 직접 담근 거라며 매실차를 내오시더라. 아, 이 집은 이렇게 운영이 되는 거구나.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 상황을 파악했던 나는 순간 머쓱했어. 그리고 혼자 했던 쓸데없는 걱정을 들킬 세라 당장 거뒀지.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훨씬 많구나 싶었어. 정이 듬뚝 든 밥 한 끼에 좁쌀 같은 내 마음도 살짝 커지는 느낌이었어.
"보리밥도 1인분 가능해요?"
계산을 하며 주인에게 물었어. 원래 옆 테이블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잖아. 얼마나 맛있길래 반찬을 세 번이나 리필을 하지 싶었거든. 며칠 전에 다른 보리밥 집에 갔다가 1인분은 팔지 않아 못 먹고 돌아온 적이 있어서 크게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주인은 의외로 점심 때는 괜찮다 하시더라고. 콩국수만큼이나 시원하고 만족스러운 대답이었지. 배가 더 든든해진 느낌이었어. 나는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식당을 나왔어. 집밥 생각이 날 때마다 와야겠다고 식당에 침도 발라놓고 말이야.
시골 인심은 도시에 살면서 찌들었던 나를 통통하게 살찌우고 있었어. 참 좋은 곳에서 지내고 있구나 싶어 마냥 행복한 생각도 들었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더위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어. 태백이 원래 시원한 곳이긴 하지만 에어컨 없이 한여름을 날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한 적이 없었거든. 그게 가능하더라고. 오늘은 콩국수 한 그릇만으로 충분히 시원해서 종일 선풍기도 틀지 않고 지냈어. 이렇게 좋은 곳에 왜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걸까. 폭염으로 나라 전체가 힘들다는 뉴스를 보니 내 하루가 더 꿈만 같았어. 할 수만 있다면 한국에도 시원한 곳이 있다고 떠들어 대고 싶더라. 주인에게 배운 대로 조금의 겸연쩍음도 없이 당당하게 태백을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잘 먹는다는 건 뭘까? 일단, 음식은 손맛이 제일 중요한 게 아닐까. 요리를 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심이 손을 타고 그대로 음식에 들어갈 테니까 말이야. 거기에 먹는 사람의 마음도 잘 버무려져야 할 거야. 음식은 쌍방향으로 잘 주고받아야 그 진가가 제대로 드러날 거잖아. 당연한 듯 받거나 만든 정성을 알아주지 않는다면 주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상하겠어. 안 그래도 음식 잘 상하는 한여름이니 더욱 조심해야지. 그런 의미로 잘 먹는다는 건 잘 주고받는 것으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싶어. 내일은 보리밥 먹으러 갈 거야. 반찬은 한 번만 리필하는 걸로 마음 단단히 먹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