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 주세요

태백 한달살이 : 시시한 책방 북스테이

by 마나

지난번 커피가 맛있었다고? 안면이 있는 손님이 다시 서점으로 들어오셨어. 그리고 그때와 마찬가지로 아이스커피를 타 달라하시더라고. 처음 커피를 팔았던 때가 떠올랐어. 얼음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나는 서점 주인과 연락이 닿지 않아 며칠 굶은 하이에나처럼 주방을 헤맸었지. 겨우 만들어 드린 커피가 써서 달게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다시 들어왔었어. 그래서 2차로 부엌을 헤맨 후 1.5L 크기의 시럽 통을 겨우 찾아 통째로 손님에게 드렸지. 입맛에 맞게 넣어 드시라고 말이야.


통이 커서 조심히 따라도 손님의 커피에는 시럽이 초과해서 들어갔어. 작은 컵에 시럽을 담아 드렸어야 했는데 그때 난 시럽을 찾았다는 것에만 몰두해 있어서 그런 디테일까진 챙기지 못했지. 덕분에 너무 달아진 커피를 무마하기 위해 또다시 커피에 물을 넣어야 했어. 3단계를 거쳐 손님 손에 겨우 커피는 안착했어. 내가 실력은 없어도 열심히 하는 듯 보였는지 손님은 웃으며 카드를 내어주시더라. 커피값을 받기가 무척이나 미안한 날이었어. 그래서 가는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계속 문 앞에 서 있었어.


바로 그 손님이셨어. 며칠 동안 시럽을 병째로 드렸던 것이 내내 걸렸었는데 다시 만회할 기회가 온 거였지. 거기다 손님은 처음 타 준 커피가 맛있었다며 그대로 만들어 달라 하시더라고. 내 기억과 정반대의 말을 해주시는 손님의 응원에 힘입어 나는 더욱 힘차게 부엌으로 들어갔어. 한 번의 경험은 꽤 힘이 컸던 것 같아. 커피를 타는 내 손길에 여유가 느껴졌거든. 시럽도 작은 잔에 담아 쟁반에 받쳐 함께 내어 드렸지. 자전거를 타는 분이라 많이 더웠는지 내어준 시원한 커피를 맛있게 드시더라. 순간 퐁신퐁신한 뿌듯함이 올라오는 거 있지. 따로 들고 온 텀블러에 시원한 물을 넣을 수 있냐고 해서 얼음까지 꽉 채워서 담아드렸어. 그리고 무인서점이니 언제든 들어오셔서 커피 타 드시라고 안내까지 마쳤지.


오늘 받은 커피값은 덜 미안했어. 손님이 나를 인간 만들어주시는구나 싶더라고. 서점을 나서는 손님은 내게 음악을 틀어놓으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씀해 주셨어. 그런가? 북스테이를 하며 아침마다 아무도 없는 서점을 들어왔었어. 나도 손님이라 홀로 에어컨까지 켜고 있기 미안해 문만 열어 놓고 있었지. 최소한으로 움직이며 서점에 있는 게 맞다고 생각했거든. 매미 소리도 좋고 크게 덥지도 않아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었어. 그런데 들어오시는 손님들 입장에서는 내가 손님이 아닐 거잖아. 주인 같아 보이는 사람이 더운 날 에어컨도 켜지 않고 음악도 없이 덩그러니 서점 문만 열어 놓았으니 답답할 만도 하지 않을까. 내가 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걸 그때야 알겠더라.


음악을 이야기하며 나가는 손님에게 다시 미안한 생각이 들었어. 서점 안이 시원하길 기대했을 거잖아. 에어컨도 켜지 않아 안과 밖이 똑같음을 확인하며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때 나는 커피 타는 데만 집중을 해서 에어컨을 틀어드릴 생각을 하지 못했어. 정녕 이런 센스는 한 번에 하나씩밖에 못 배우는 걸까. 나는 손님에게 다음에 오실 땐 음악을 틀어놓고 있겠다고 말씀드렸어. 다음 기회가 있을진 모르지만 내 어설픈 마음이나마 전해 드리는 게 서점에 덜 누를 끼치는 거겠다 싶었거든. 손님이 가신 후 블루투스로 스피커를 연결시켜 봤어. 그리고 음악을 틀었지. 하나를 바꿨을 뿐인데 서점 공간이 더 그럴싸하게 느껴지더라고. 작은 변화가 반가워 나는 더욱 다음을 기약하고 싶었어.


듣다 보니 그 손님과는 달리 내 취향은 매미 소리에 더 가깝다는 걸 알겠더라. 그래서 음악을 중단했어. 대신 서점에 손님이 들어오면 에어컨을 켜고 음악을 틀어드려야겠다고 다짐했지. 나는 그렇게 조금씩 주인 역할을 배우고 있었어. 그래도 반만 주인이니까 혼자 있을 때는 손님으로 서점을 누려도 되지 않을까. 북스테이를 한 지 3주가 넘어가. 매일 아침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게 꿈만 같아. 나는 조용히 앉아 글도 쓰고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며 꿈속 같은 곳에서 아침을 보내. 가끔씩은 책상에 엎드려 매미 소리만 듣기도 하고 말이야. 오시는 다른 손님들도 내가 느끼는 서점의 매력을 쉽게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 그 과정에 내가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욱 기쁘겠고 말이야.


마침 서점 주인이 와서 오늘 온 손님 이야기를 했어. 나는 뿌듯했고 주인은 흐뭇했지. 한 명의 손님이 두 주인의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 준 셈이야. 똑같진 않겠지만 다들 작은 서점이 좋아서 마음을 쓰는 게 아닐까 싶어. 이쯤 되면 나도 반 주인으로서 잘 지내고 있는 거 맞겠지? 서점에 머무르는 것뿐인데 많은 것을 배워. 책뿐만 아니라 서점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이야. 아직 시간이 남아서 다행이야. 나는 에어컨 켜고 음악도 틀고 시럽도 예쁜 컵에 담을 준비 완료야. 이제 다시 손님만 기다려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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