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한달살이 : 현지식 도장 깨기
내 입맛은 죽이기가 힘들지 일부러 돋울 필요는 없는 대상이었어. 그나마 싫은 음식이 기름이 둥둥 뜬 국물이라 말하곤 했는데 그것마저도 보이면 또 맛있게 먹곤 했거든. 해외여행을 가서도 여전했었어. 현지에만 있는 음식을 보면 호기심이 올라와 지금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냐며 맛이라도 보려고 했지. 지조 없는 입맛 덕분에 나는 어딜 가나 굶진 않았어. 그래서 식도락 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 땐 뒤처지지 않고 열심히 따라갈 수 있는 정도의 실력은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었지.
나이가 들면서 유연했던 내 입도 조금씩 딱딱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 아니면 내가 나를 모르고 살았는지도 모르고. 한달살이를 하며 예기치 않게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든 경우가 생겼어. 처음엔 단순히 음식이 맛없는 탓이려니 했는데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고 나니 이제야 내 입맛이 생각보다 까다롭다는 걸 알겠더라고. 특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잘 알려진 일본과 대만에서 뭘 먹을지 몰라 거리를 서성이는 나를 보며 스스로 무난한 입맛이라 오해하며 살았던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했어.
우육면은 대만에 오기 전부터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음식이야. 대만 음식을 소개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라 외워두고 있었거든.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도 괜찮아서 호기심은 생기는데 사진으로 본 우육면의 기름 둥둥 뜬 갈색 국물이 내 입맛을 돋우진 않더라고. '오늘은 우육면을 먹어야지' 생각하며 나갔다가 다른 음식을 먹는 시간이 반복됐어. 어제도 우육면을 먹으러 숙소를 나왔다가 우연히 본 베트남 쌀국숫집에 들어갔었지. 매일 호기심과 입맛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어.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며 슬며시 우육면은 내게 오래된 숙제가 되었던 것 같아. 당기진 않아도 대만까지 왔으니 떠나기 전까지 한 번은 먹자고 생각했어.
오늘은 숙제하기 딱 좋은 날 같았어.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뻐근했거든. 덥기도 하고 매일 요가를 해서 피로가 쌓였었나 봐. 고기를 먹어야겠단 생각이 듦과 동시에 바로 우육면이 떠오르는 거 있지. 국물에서 살짝 한약 맛도 난다는 후기가 생각나서 더 그랬을 수도 있어. 나는 입맛도 호기심도 아닌 건강을 목표로 작정을 하고 길거리에 있는 다른 식당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 우육면을 파는 식당으로 바로 들어갔어. 그리고 후기에서 본 대로 우육면에 소면을 넣은 메뉴를 주문했지. 실제로 본 우육면은 사진에서 본 것과 거의 비슷했어. 기름기 있는 국물이 느끼하게 여겨지지가 않아 다행이다 싶었어.
바로 두툼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었어. 푹 익혀서 그런지 씹자마자 바로 부서지더라. 나는 면과 국물은 보지도 않고 그릇에 든 고기들을 약이다 생각하며 하나씩 집어 먹었어. 그리고 목구멍으로 고기가 들어갈 때마다 이제 곧 기운이 날 거란 생각을 했지. 집 나와 살면서 제일 서러울 때는 배고프거나 아플 때잖아. 특히 말이 잘 안 통하는 외국에서 아프면 병원을 가는 것도 의사와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거든. 다행히 나는 부족한 영양소가 있을 땐 바로 관련된 음식이 떠오르고 동시에 침이 나오더라고. 참 신기한 일이었지. 확실히 내 몸은 나보다 더 똑똑한 게 맞는구나 싶었어.
고기는 맛있게, 면은 열심히, 국물은 회피하며 우육면을 먹었어. 선해 보이는 식당 주인에게 잘 먹었다며 여러 번 인사도 했지. 배에 기름기가 도니 다시 더운 거리로 나와도 제법 힘이 나더라. 숙제를 끝내서 마음도 홀가분하고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우육면을 다시 먹으러 갈 것 같진 않아. 그래도 힘이 없을 때 도와준 오늘 인연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기회가 생기면 내가 너를 안다며 반갑게 먹긴 할 듯해. 오늘의 숙제는 굳어가는 내 입맛을 다시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기름칠한다는 의미도 있었어. 나는 지조 없는 입맛을 계속 유지하고 싶거든. 몸도 마음도 딱딱하지 않았던 오늘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 거지. 기름칠 좀 했으니 적어도 내일까진 뻑뻑하진 않을 거라 믿어. 고기 먹었으니 일단 기운 좀 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