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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Sep 21. 2022

콩을 키우며 드는 생각

가을이 주는 선물

<하얀 콩꽃 예쁘죠?^^>

콩을 키우는 중이다. 계절이 바뀐다고 알려주는 건지 하얀 꽃을 피우더니 곧 콩꼬투리가 달리기 시작했다. 얇은 줄기에 콩이 이렇게 많이 달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2년 전 처음 키웠을 때보다 올해 수확량이 훨씬 많을 것 같아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가짜 농부 입장에서는 무엇 때문에 수확량이 차이가 나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콩꽃은 작고 하얗다. 손톱보다 더 작은 봉우리에서 콩꼬투리가 나올 때까지 피어 있는 시기는 일주일도 채 안 되는 듯하다. 너무 작아 카메라에도 잘 안 잡히지만 저 안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콩꼬투리를 통해 말해준다. 화분 옆에 앉아 꽃을 보고 또 본다. 하루만 더 피어 있으라고 혼잣말을 하는 내가 가증스럽다. 콩을 수확하고 싶은 욕심에 꽃의 개수를 센 것이 일 분 전이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래도 콩꽃의 아름다움만 보는 순수함은 잊어버린 듯하다. 꽃을 다시 보려다 내 욕심을 꽃이 부담스러워할까봐 다른 콩꼬투리로 눈을 돌렸다.

<콩꽃에서 콩꼬투리가 나오는 중^^>

이 세상 모든 새끼는 솜털을 가지고 있는 걸까. 매력적인 솜털을 자랑하며 콩꼬투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살짝 만져보면 나뭇잎 같이 얇은데 보기에는 꽤나 통통해 안에 콩이 다 자란 듯하다. 생명은 정말로 신비롭다. 어떻게 콩이 자랄까. 내가 한 거라고는 물을 준 것밖에 없는데 콩이 발아하여 잎을 만들고 꽃을 피워 콩꼬투리를 낳았다. 꽃이 지면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무리 봐도 꽃이 콩꼬투리를 낳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님 생각이 난다. 자신의 몸을 기꺼이 희생하는 콩꽃을 느끼고 싶어 꽃잎을 살짝 만져본다. 싱싱했던 꽃잎이 조금씩 딱딱해지며 말라가고 있다. 괜히 미안해 꽃에 입을 맞췄다. 

<솜털이 뽀송뽀송한 콩꼬투리>

콩은 아직 콩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인데 콩꼬투리는 미리 넉넉하게 자리를 만들어놓고 품어주고 있는 중이다. 꽃이 콩꼬투리를 품고 콩꼬투리가 다시 콩을 품는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콩이 세상에 나온다. 내가 먹는 점심밥 속 콩은 골라내야 할 숙제가 아니라 꼭꼭 씹어 삼키며 감사해야 할 존재라는 뜻이다. 모든 것이 돌고 돈다. 작은 콩 하나에서 시작된 생각의 꼬리가 생명의 신비로움에서 부모님의 건강으로 이어진다. 내 앞에 있는 콩은 새벽 내내 조용한데 그것을 보는 내 눈만 바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콩꼬투리의 솜털이 삐죽 섰다. 추운가. 새벽 공기가 콩에 좋을 듯해서 창문을 열어놨는데 이건 좋아하는 건지 싫어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답답하다. 내 팔에 소름이 돋는 건 나는 새벽바람이 살짝 춥게 느껴진다는 거다. 이제 긴 옷을 입고 다녀야겠다. 콩도 이런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나 혼자 중얼거리는 사이 밖이 밝아진다. 다시 하루가 시작되나 보다. 소리 없이 강한 콩은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오늘 하루 잘 살 거란 듬직함이 느껴진다. 나만 잘하면 되겠네. 어쩌면 내가 콩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콩이 나를 키우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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