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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나 Sep 28. 2022

이순신 따라 여행

울돌목 : 명량 해전의 열쇠

이순신 장군을 따라 명량 해협에 갔다. 물살이 세고 요란해 바닷목이 운다 하여 울돌목이라 불리는 곳. 13척의 배로 133척이 넘는 왜선과 싸워 이겼다던 명량 해전은 진짜일까. 역사적 사실인데 현실 같지 않아 기어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진도에 도착해서 본 울돌목은 내 의심을 읽었는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물살마다 각자의 길이 다른 듯 사방으로 파도가 움직였다. 이런 바다를 본 적이 없었다. 눈으로 보고 있어도 잘 믿기지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 대첩에 이용했던 울돌목의 물살>

1545년생인 이순신 장군은 2022년이 된 지금까지 많은 백성들의 삶을 어깨에 짊어지고 계셨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백성들은 이순신을 따라 피난을 갔다. 왜군들도 이순신을 무서워했으므로 백성들은 그의 곁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잤다. 몇 백 년이 지난 후 관관객인 나도 이순신의 발자취를 따라 진도로 들어갔다. 진도와 해남 사이에 있는 울돌목 위로 케이블카가 있었고 인근에는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공원과 관광지가 개발되어 있었다. 나는 근처 밥집에서 밥도 먹고 울돌목 구경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순신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장군이 23번 싸워 23번 이겼다고 했으니 울돌목과 같은 곳이 23곳이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밑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있을까.


울돌목을 다리 위에서 보았다. 물살이 서로 얽혀 움직이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울돌목을 이용할 생각을 하셨을까. 겨우 13척 밖에 없었지만 진짜 왜군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전쟁에 출전하신 것일까. 죽고자 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란 말씀을 하시며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계셨을까. 울돌목. 바닷목이 우는 듯한 소리를 내는 곳. 물살을 바라보니 장군이 나와 같이 서서 물살을 바라보고 계신 듯했다. 명량 해전을 계획하며 믿을 것은 배 13척과 울돌목의 물살뿐이었다. 그 작은 믿음에 장군의 상상력이 더해져 133척의 힘을 만들어냈다. 나는 사실을 알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을 장군은 상상하며 계획했다.


나도 잘 읽을 수 없는 울돌목은 적도 잘 읽을 수 없을 것이다.
나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적도 그럴 것이다.


장군은 스스로 느낀 두려움을  재해석하여 명량 해전을 낳았다. 두려움을 이용한 싸움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어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울돌목은 말하지 않았고 또 누구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그저 제각각의 물살을 만들어 내며 움직일 뿐이었다. 이순신은 두려움을 이용했고 적은 두려워 움츠렸다. 이 작은 차이 하나가 133척의 배를 1척으로 13척의 배를 133척으로 바꿔놓았다. 명량 해전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써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 되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믿을 수 없어 계속 울돌목을 보았다. 물살은 예나 지금이나 답해주지 않고 울 뿐이었다. 


나는 무엇을 확인하려고 두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진도를 찾아왔을까. 이순신 장군의 무엇이 좋아 김훈의 소설<<칼의 노래>>를 출발점으로 해서 영화<<명량>>으로, 영화에서 다시 진도로 움직이는 걸까. 백 원짜리 동전 속 이순신 장군을 내 옆에 모셨다. 알면 알수록 담백한 그분의 인생이 좋아 마음이 울돌목처럼 움직였기 때문이다. 난중일기에 나오는 그의 문체는 단순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선조가 이순신에게 보낸 글의 화려함과 이순신이 선조에게 보낸 글의 담백함이 대조되는 것은 두 분이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임진왜란 중 화려한 문체는 담백한 것보다 더 맛이 없었을 것이다.

<천관산 산능선과 들판>

해남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천관산이 보였다. 산능선이 울돌목의 물살처럼 제각각이었다. 상대적으로 가지런히 잘 정리된 논은 녹색에 노란색을 더해가고 있었다. 저 산은 이순신 장군을 다 지켜봤을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저 산을 이순신 장군도 봤을 것이다. 1545년에 태어난 한 아이가 2022년 현재까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가지런한 논을 보며 흐뭇해하실지도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었던 장군처럼 나도 보이지 않는 장군을 보며 진도를 여행했다. 그의 믿음이 천천히 내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백 원짜리 동전 하나를 손에 쥐고 괜히 긁어본다. 울돌목의 소리가 새삼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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