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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람책 수업을 준비하다

사람을 읽을 준비

by 마나

10월 말부터 '다문화' 교육을 사람책 방식으로 할 예정이다. 좀 더 깊이 있는 '다문화' 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결혼 이민자들의 삶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면 다문화 교육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인근에 있는 다문화 센터를 통해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일본 출신의 선생님을 일주일에 한 분씩 모시기로 했다. 연락처를 받으니 세 분은 한국어 이름이었고 한 분은 본명을 사용하고 계셨다. 이름 하나에도 각자의 사연이 있을 것 같아 호기심이 생겼다. 나도 영어로 된 이름을 만들었다가 지금은 다시 본명을 사용 중이다. 네 분의 이름 속에는 어떤 시간이 들어 있을까.


문화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는 행동과 말이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모르는 사이 무례한 행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단일한', '동족의'라는 뜻을 가진 homogeneous라는 단어를 배운 적이 있다. 한참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라 배운 것을 밖에서 써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외국인과 만나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한국은 단일 민족 국가라는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다. 꽤 여러 번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단어를 듣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떤 것을 떠올릴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인종 간 갈등으로 한국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할 삶을 살았을 수도 있는 사람들이 내가 사용하는 저 단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단지 배운 단어를 써먹기 위함이었지만 나의 무지함은 그들의 상처를 건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 분씩 전화를 드렸다. 최대한 공손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수업의 취지를 말씀드렸다. 약간씩 모국어의 억양이 섞여 있는 한국어를 들으니 영어 교사 입장에서 호기심이 생겼다. 내 영어에 부산 사투리가 느껴진다는 말을 듣고 웃은 기억이 났다. 타국에서도 모국을 잊지 않고 살라는 뜻으로 외국어 속에 모국어가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선생님들과 통화를 하면서 괜히 직업병이 발동하여 혼자서 언어 타령을 속으로 불렀다.


전화 통화는 잘 됐다. 다들 기분 좋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적어도 문화적으로 무례한 말을 한 것 같진 않아 나도 만족스러웠다. 사람책 수업을 '다문화' 교육에 그것도 4주 동안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들에게 많은 요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야말로 다양한 문화를 다양한 방법으로 받으려면 내 생각이 최소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내를 하고 나서는 애써 걱정도 접었다.


며칠 후 우즈베키스탄 선생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료를 만드는 중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나도 교과 수업을 준비하라고 하면 쉽게 준비하지만 사람책 수업을 준비하라고 하면 내 인생 전체를 어떻게 이야기할지 막막할 것 같다. 출생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어느 부분을 잘라 수업 자료로 만들어야 하나. 그래서 여태껏 사람책 수업을 하셨던 선생님들이 자료를 준비하며 인생을 한 번 돌아볼 수 있어서 힘들었지만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셨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선생님에게 수업이라 생각하지 마시고 친구에게 인생 얘기하듯이 하면 된다고 말씀드렸다. 결혼 이민자들의 삶에 두 문화가 부딪히며 생기는 여러 가지 상황이 다 들어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문화를 몰라서 무례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의미로 봐도 된다고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우리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인생을 한 번 정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통화를 하며 마음이 조금 정리가 된 듯해 다행이라 생각했다.


'다문화' 교육을 사람책으로 하는 것은 처음이다. 깊이 있은 '다문화' 수업이 될 수 있을지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한다. 수업을 들으면 내가 무지해서 저질렀던 과거의 행동들이 분명 튀어나올 것이다.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기다려야겠다. 한국이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한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다른 나라 문화가 한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융합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준비하고 내일도 배운다.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나도 한몫하는 것 같아 오늘은 뭔가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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