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정우는 어린 시절 내내 강아지 키우고 싶다고 노래를 노래를 불렀지만, 애기금환은 엄마가 돌아가고 나서야 간신히 허락했다. 동물병원으로 가는 내내(*그때는 유기견 입양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없었다) 아빠는 침묵했지만, 우린 아빠 기분 따윈 신경쓸 겨를이 없었지. 철없던 나. 아빠는 엄마의 부재를 강아지로 손쉽게 대체하려는 스스로에 대해 복잡한 맘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긴 하다.
여튼! 동물병원에 갔더니 태어난지 2개월 된 쌍둥이 푸들이 있었다. 한 마리는 축 쳐져서 땅만 보고, 다른 한 마리는 내 무릎까지 점프를 점프를... 우린 당연히 발랄 강쥐를 데려와서 마시라고 이름 붙였고, 이틀 뒤 마시의 형제인 우울 강쥐도 좋은 주인을 만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그와 함께 마시의 쌍둥이 형제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음!
난 놀랐다.
그 강쥐는 태어난지 2개월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내면에 깊은 사유의 시스템이 자리잡혔던 거야? 엄마와 떨어지고 유리창에 갇힌 자신을 인식할 수 있었어? 우울은 지성의 산물이니, 그 강아지가 그렇게까지 똑똑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근데 더 신기한 건 우리 발랄 강쥐, 마시다. 한 배에서 나왔는데, 형이 똑똑하게 자랄 때 넌 뭐했니. 그저 멍청한 채로 귀여움 부분만 집중 발달시킨 거냐고. 나는 혼자 생각했다. 뭔가 그냥 자기 합리화처럼, 그래... 강아지는 멍청한 게 좋지... 멍청해야 귀엽지... 멍청하고 귀여운 고마시... 사랑해...
그랬던 고마시가 노견이 되었다.
멍청함이 귀여움을 상징할 나이는 강아지한테도 지났다. 노견의 멍청함은 더이상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인간을 괴롭게 할 뿐. 새벽 4시, 자기가 싼 오줌구덩이에서 허우적대며 꺼내달라고 낑낑 거리는 마시를 건져내면서, 영문 몰라하는 마시를 빨래하듯 박박 씻기면서, 화난 마시에게 손가락 손등 팔뚝 이리 저리 물려가면서,
야 너 이제 멍청해도 안 귀여워. 안 귀엽다고. 뽀뽀 쪽.
안 귀엽고 넌 날 화만 나게 해. 뽀뽀 쪽.
불쌍한 우리 마시. 못생기고 냄새 나고. 뽀뽀 쪽.
너때매 잠도 못 자. 스트레스 받아. 뽀뽀 쪽.
진짜 너가 너무 싫어. 너무너무 싫어. 뽀뽀 쪽.
바보같은 마시, 널 껴안고 죽으면 안 된다고 엉엉 우는 누나를 더운데 귀찮게하는 사람 취급하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으르렁으로 응수하는 진짜 멍청이...
마시야 이왕 멍청하게 태어나고 멍청하게 자라고 멍청하게 늙었으니까 죽을 때도 멍청한 채로 떠나라. 고통이 뭔지, 두려움이 뭔지, 보고싶은 게 뭔지, 미련이 뭔지 그런 거 하나도 모르는 채로 그냥 계속 영문만 모르다가 떠나라. 귀엽고 멍청한 우리 마시. 불쌍한 마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