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신기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함께 했던 시간보다 내가 아빠랑 함께한 시간이 14년이나 훌쩍 더 많다. 이제 엄마보다 내가 더 아빠를 잘 안다.
엄마는 몰랐겠지만 아빠는 말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무뚝뚝해보이지만 자기 속얘기를 꺼내는 데에는 거침이 없다. 늙어가면서 더 개방적이 된 아빠.
아빠랑 산책하면서 엄마와의 연애 스토리를 풀로 들었다. 열정만 가득하고 정작 그걸 쓸 줄 모르는 순진보스들의 이야기였다.
엄마는 연애 내내 아빠랑 손도 안 잡았다고 했다. 외간남자랑 손 잡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댄다.
결혼만 하면 집이 생기는 줄 알고 어느날 그냥 바로 혼인신고부터 했다고. 이발소에서 무스 잔뜩바른 머리로 지하철을 타고 약혼식하러 갔던 그때, 아빠는 정말 창피했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이 사람들 무슨 약혼식까지 꼬박 다 챙겼어... 듣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다.
전화가 없던 시절 1시부터 엄마 집 앞 카페에 앉아 무작정 기다렸던 아빠. 그럼 8시쯤 엄마가 빼꼼 고개를 내민단다. 설마 아직도 있나? 하는 얼굴로.
엄마랑 너무 손을 잡고 있었던 아빠. 항상 긴소매를 손끝까지 빼놓고 절대 자신의 손을 허락하지 않았던 엄마를 아빠는 파주 출렁다리로 데리고 갔다. 출렁다리를 건너기 전 아빠는 엄마의 긴소매 안에서 손을 쑥 뽑아내 꽉 잡았다. 엄마는 놀라고 아빠는 빨개졌다. 심장이 튀어나오는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아빠. 아직도 그때가 선명히 기억난다고 말하는 아빠. 이 얘기는 내가 자라면서 백 번을 들었는데 백 번 내내 아빠의 광대엔 핑크빛이 돈다. 아빠의 웃고있는 입꼬리와 과거를 응시하는 눈빛이 내 마음에 닿았다.
이게 더 이상 이어 쓸 수 없는 이야기라는 게 조금 슬펐다. 고여서 썩지 않게 이 이야기를 남들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트북을 켰다.
제목 [아빠가 말하고 딸이 쓰는 엄마 이야기].
다섯 장을 겨우 넘겼을 때, 가슴이 꽉 막힌 듯 답답해져오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어지럽고 슬프고 눈물이 흐른다. 글을 한 자 한 자 쓸 수록 힘이 든다. 이 시간이 나에게 고문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있던 무언가를 활자화 시켜 나에게서 분리시키는 작업이다.
이런.
아빠는 말할 수 있지만 딸은 쓰지 못한다.
딸은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엄마를 분리시킬 수가 없다.
내 글은 여전히 마무리 되지 못 한채로 커서만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