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이 길어질 때가 있다.
처음엔 오기로, 일부는 장난으로, 한편으론 정기의 새로운 얼굴을 보고 싶은 위험한 호기심으로 시작한다.
그러다 싸움이 어떤 선을 넘어 '진짜로' 기분이 상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그럼 정기는 숨소리를 크게 낸다.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보일 정도로, 무슨 숨 쉬기 대회에 나간 것처럼.
정기는 머릿속에 할 말이 가득 차면 입을 굳게 다물고 숨을 크게 쉰다. 한숨 한숨에 할 말을 풀어내고 있는 건가. 나는 정기의 그 말을 알아듣질 못한다.
나는 화가 잔뜩 났다는 표시로 입을 한 일자로 만들고, 눈의 레이저로 정기의 인중을 뚫고 있다.
명심. 절대 눈을 마주치지 않을 것.
그러고 좀만 있으면, 정기 얼굴의 '작은 농담만 던져주면 난 곧바로 깔깔 웃을 거고 그럼 이 싸움은 끝나는 거야' 그런 기대로 미리 짓고 있던 어설픈 웃음기가 삭 빠진다. 눈가가 빨개지고, 평소보다 빠르게 눈을 끔뻑거린다.
정기야, 너는 숨을 너무 크게 쉬어. 시끄러워.
먹을 때 쩝쩝거리는 소리, 시끄러워.
네 눈에서 너무 많은 목소리가 들린다. 시끄러워.
정기가 너무 시끄러워서 나는 침묵을 유지한다.
얼른 장난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혼나는 어린애의 억지 미소가 완전히 사라진 정기 표정. 그래, 이 싸움의 시작에서 내가 보고 싶었던 게 저 얼굴이구나. 내가 모르는 정기의 얼굴. 정기는 화가 나면 그 얼굴을 하고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저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앉는다. 그리고 뭐든 주워 먹는다.
나는 모로 누워서 귀를 기울인다. 나는 음식 먹는 소리에 예민하다. 정기도 그걸 알고 있다. 이 와중에 왜 뭘 먹는 거야? 난 벌써부터 예민해진다. 정기가 음식을 입으로 가져간다. 입에 넣는다. 아주 느리게 녹여먹는다.
여전히 숨을 크게 쉬면서도 음식을 녹여먹는 그 모습에 이미 내 화는 절반정도 풀린다. 마시가 부스럭거리면 정기는 일어나서 마시를 다독인다. 나는 여전히 누워있다.
슬쩍 보이는 정기의 모르는 얼굴. 화난 정기. 볼 때마다 처음 보는 느낌이다. 그 얼굴에 대뜸 뽀뽀하고 싶다. 화난 정기의 얼굴도 나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서. 내가 뽀뽀하면 저 얼굴은 바로 무너지고 다시 내가 아는 표정으로 돌아올까? 궁금하지만 시도하지 않는다. 서로 크게 미워하고 있는 와중에 기행을 벌일 순 없지. 내가 뽀뽀하고 났는데도 여전히 모르는 얼굴이면 어떡해. 그럼 이 싸움은 영원히 끝나지 못할 거니까. 암, 일단 난 내 자존심을 지켜야지! 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