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돈을 너무 많이 쓰지 말자는 결론에 다다랐다. 차라리 그 돈을 신혼여행이랑 신혼집에 투자하는 거야. 그래 결혼? 가성비로 가겠어.
나는 스드메 중에 과감히 스를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 나 방송작가 10년 한 사람이야. 주변 흘깃하면 사진깨나 찍는 사람들 널렸다고! 어? 그치, 정기야? 우리 그냥 사진 잘 찍는 사람한테 스냅식으로 한두 장만 딱 찍ㅈ...
“(단호) 싫어.”
... 아 왜...
정기가 말했다.
“결혼식 준비하느라 돈 쓰는 모든 것 중에 유일하게 남는 게 스튜디오 사진 하나뿐인데 그걸 왜 포기해.”
... 맞는 말이네?
정기의 주장... 참나, 그럴싸하잖아? 그래 맞아. 스드메 중에 유일하게 오랫동안 남는 건 스지. 그러면 대충 찍으면 안 되겠다. 진짜 잘 찍는 곳에서 찍어야겠잖아! 나는 플래너님이 추천한 헤이허니 스튜디오와 박개인주의 두 곳을 최종 후보에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러블리냐 유니크빈티지냐, 그것이 문제로다.
결국 어떻게 정했는지 아세요? 1,2편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희 커플은 고민을 오래 하는 편이 아니랍니다. 네이버 돌림판으로 정했다. 하하하.
나는 사실 내가 연예인이 아닌데 왜 화보류의 사진을 찍어야 하는지 회의적인 입장이긴 하다. 고고한 손짓과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저 멀리 어딘가를 봐야 하는 그런 포즈나, 헤헷- 하는 찡긋 웃음으로 쑥스러운 듯 발등 언저리를 보며 고개 숙이고 있는 포즈 같은 거... 연예인들이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일반인으로 태어나서 일반인으로 죽을 건데, 왜 화보를 찍어야 하느냔 말이야? 내가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단 말인가? 상상만 해도 인위적이고 오그라든다. 하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해내야지. 그래야겠지... 후... 여튼 가성비 결혼식을 하려던 나의 계획은 초장부터 무너졌다.
그러면 메인가? 나는 스드메 중에서 메를 줄여야 하나?
메를 줄이기 위해서 플래너님이 추천해주신 업체뿐만 아니라 그 외의 업체들을 수소문해서 서칭하기 시작했다. 메이크업도 드라마나 소설, 운동처럼 어떤 정형화된 틀 안에서 하는 예술이니까, 가격이 저렴하고 실력은 좋은 사람이 분명히 있을 거야. 근데 그러다가... 제가 뭘 찾았는지 아세요? 플래너님이 추천한 업체 분명히 4시간에 38만 원이라고 했는데, 네이버 블로그 찾아보니까 35만 원인 겁니다! 불과 한 달 전 블로그 글이었다! 와... 플래너님, 저 배신하신 거예요? 아니 3만 원 더 받아 가서 뭐하게? 난 당신을 믿었는데! 철썩같이 믿었다고!
나는 마치 웨딩 업계의 비리와 탈세의 현장을 포착이라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 내가 지금까지 인간을 너무 믿었어. 안온한 삶을 살아왔지. 하지만 이제 달라질 때도 된 거야. 인간? 이제부터 믿지 않겠어. 내가 서 있는 이 세계는 차.갑.고. 계.산.적.인. 곳.이.다. 스타킹 대신 히트택을 입고 멋진 척한다고 나를 호락호락하게 보셨나 본데, 저 쉬운 사람 아닙니다? 라고 사실 생각만 했고...
나는 ‘구냥,,, 3만 원 더 낼랭,,, 갈등 싫엉,,, 얼굴 붉히는 거 띠로띠로,,,,’인 상태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이 사람은 앞으로 근 1년간 내 결혼을 담당해줄 거고, 얼굴도 몇 번 볼 거고, 난 이 플래너 계약을 물릴 수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갈등이 싫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도 들게 하는 것도 싫다고. 내가 제일 잘하는 건... 참는 거다...! 하하핳하하핳 3만 원? 그까이꺼 낼 수 있어!
마음속에 상대에 대한 불신이 가득 찬 채로 나는 정신승리를 하기 시작했다. ... 에휴 결혼 준비가 점점 더 싫어진다... 그냥 넘어갈까 말까 백 번 고민하다가 결국 용기를 내서 플래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가격 다시 한번만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네이버 글에는 35만 원이라고 나와서여”
두근두근두근 1이 바로 지워졌다. 뭐라고 답장이 올 것이냐. 그래 할 말이 없겠지. 뭐라고 하겠어. 하... 나 일 저질렀다. 이렇게 얼굴 붉히게 되는 건가. 괜히 말했다. 걍 낼 걸. 걍 낼 걸!!!!
띠링. 답장이 왔다. 뭐라 왔을까. 그때 난 팀원들과 식사를 하는 중이어서 폰을 바로 확인하지 못했다. 눈이 계속 폰으로 갔다. 이 식사 자리에서 무슨 대화가 오고 가는지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우짜지? 뭐라고 왔을까? 내가 제일 두려워하는 상황은 [거짓말인 게 너무 티가 나는 허술한 변명꺼리가 온다 > 난 거짓말인 걸 알지만, 미용실에서 ‘예뻐요...’하고 나와서 우는 사람처럼 넘어간다]였다.
불안과 긴장에 가득 차서 단톡방을 연 나.
답장의 내용은 [아~ 그분은 작년에 예약하신 분인가 봐요! 이 업체는 올해부터 38만 원이에요!ㅎㅎ]였다.
털썩 > 무릎 꿇는 소리.
플래너님 죄송합니다.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플래너님은 정직하고 투명하게 자신의 업무를 했을 뿐인데, 이 악마같은 고재연! 감히 내가 충실히 임하는 진실된 사람을...!ㅠ 왜 나는 인간을 이렇게 쉽게 의심하게 되었나? 웨딩업계에 속지 않겠다,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겠다고 너무 결심한 나머지 멀쩡한 사람을 세모눈으로 보고 있었잖아? 부끄러워졌다. 나는 반성의 의미로... 그냥 메도 플래너님이 추천해주는 곳에서 하기로 함ㅎ... 하핳! 그래요! 이게 저예요! 자! 다들 손 벌려 봐라! 내가 그 위에 돈 얹어준다! 하하하하하!
쉬운 나. 어쩔티비!
... 내가 그나마라도 가성비 결혼식을 하려면 이제 줄일 곳은 하나뿐이다. 드. 나는 드레스를 줄여야 한다.
많은 분들이 신부는 무조건 자기가 입고 싶은 드레스를 입어야 후회가 남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허황되고 허례허식이 가득 찬, 낭비와 사치의 전당, 결혼식에 정말로 돈을 쓰고 싶지가 않다. (이미 많이 쓴 것 같지만...) ‘평생에 한 번 밖에 없는 날’이라는 말에 휘둘려 결정해 버리는 모든 것들을 나중의 나는 무조건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미 후회할 일 많이 만든 것 같지만...)
그래서 나는 드를 과감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예쁘지만 저렴한 곳에서 해야지. 거기에도 내가 원하는 드레스가 있을 거야, 분명. 후유...
모든 걸 착착착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난 여전히 확신이 안 선다.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질문을 해본다.
결혼식 정말 꼭 해야 하는 걸까?
왜 온갖 사람들을 다 불러다놓고 가슴골이 훤히 보이거나 팔뚝을 헤벌레 내놓으며, 혼자 걷지도 못하는 펑퍼짐한 옷을 입고, 발목과 발가락에 무리를 주는 킬힐을 신고서, 남들의 돈을 뜯어내는 행사를 진행해야 하는 걸까.
미치겠다. 왜 나는 결혼식이 안 설레는 거지? 기다려지지가 않는다. 불안하고 무섭기만 해... 제일 싫은 건 그날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만 쳐다볼 거라는 거다. 신부를 안 쳐다보는 결혼식은 없는 걸까. 흑흐흑흑 I들은 도대체 결혼식 어떻게 하는 거야. 진짜 그냥 하면 어떻게든 되는 거야? 그게 맞아?
정차해야 할 역이 하나도 없이 종착역만 있는 기차처럼, 나도 그냥 선로를 따라서 쭉 달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내가 도착하는 곳은 도대체 어디야? 모르겠다. 모르겠어! 흑흐그흑 ... 웨딩플래너 이야기 이렇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