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안녕. 김수정. 뭐 하고 사니. 하늘의 시간도 이승의 시간이랑 똑같이 흐르니? 엄마도 엄마 나름의 성장을 했을까?
나는 엄마가 없는 새 아주 많은 걸 겪고 아주 많은 상처를 받고 아주 많은 성장도 했어. 누군가 그러더라. 사람이 받을 사랑에는 총 양이 정해져 있대. 난 엄마한테 받지 못한 사랑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채워 받았어. 나 정말 어디를 가도 사랑받는 사람이다? 신기하지. 모두가 날 좋아하고 날 귀여워하고 날 존중해. 근데 그럼 뭐하니. 수백 명의 사랑을 받기 vs 엄마 한 명한테 사랑받기. 난 여전히 후자를 선택하는 타입인걸.
작년에 정기 조카가 태어났어. 난 원체 아기를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정기 조카가 정기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유독 더 마음이 가더라고. 그래서 맨날 조카 동영상 받아서 나한테도 보내라고 정기를 보챘는데, 어느 날 받은 동영상이 나를 무너뜨렸어. 별 내용은 없어. 그냥 그날도 조카가 꺄르르 꺄르르 웃고 있고 그걸 찍고 있는 정기 누나가 ‘OO아~ 여기 봐봐’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동영상이었어. 15초도 안 되는 짧은 영상이었는데, 울컥 눈물이 나는 거야. 조카가 너무 부러운 거야. 미치겠어. 너무 부러워. 조카한테는 있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우주 끝까지 자길 사랑해줄 존재가 있네. 나는 없는데. 나는 없잖아. 나보다 먼저 우주 끝으로 가버렸잖아, 엄마가. 그 이후부터 조카가 예전처럼 좋진 않아.
엄마, 나는 끝없이 외로워. 왜 이렇게 외로울까? 너무 너무 외로워. 옆구리가 시리다는 느낌의 외로움이 아니야. 나한테만 중력이 없는 것 같아. 발붙일 데도 없이 이 세상을 부유하며 사는 사람 같아. 그 누구도 나를 지면으로 끌어 당겨주지 못해. 엄마가 없어서 그래. 엄마 때문이야. 목숨 바쳐 나를 사랑해줄 존재가 없어서. 이 끝없는 외로움을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 외로움에 질식할 것 같아.
이번 겨울에 말이야. 너무 추워서 전기장판 온도를 끝까지 올렸어. 땀이 줄줄 나고 거의 화형 당하는 느낌이었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차갑더라. 이 차가움을 뎁히려고 그동안 부던히 노력해왔어. 엄마도 봤지. 나는 너무 많은 사랑을 했어. 남자를 사랑하고 동물을 사랑하고 식물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모든 불쌍한 것들을 사랑하고 결국엔 결국엔 결국엔, 아빠까지 사랑하게 되었다고. 그런데도 채워지지가 않아. 내 마음에는 구멍 뚫린 장독대가 있나 봐. 아쉽지만 나한텐 그걸 막아줄 두꺼비는 없어.
사실 엄마 탓이 아니라, 내가 애초부터 이 모양으로 태어난 걸 수도 있어. 아직도 생각나. 내가 하루종일 ‘엄마 나 사랑해?’를 남발했을 때. 진짜 말 그대로 수백 번 물어본 것 같은데, 엄마는 참을성을 가지고 끝까지 ‘사랑하지. 우리 딸 사랑하지’라고 말해줬잖아. 너무 좋았어. 그래서 계속 더 물어보게 되더라고. 엄마가 너무 속상해하면서 ‘우리 딸은 엄마의 사랑이 안 느껴지나’할 때까지. 몰라, 엄마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근데 그때의 기억이 문신처럼 남아서 아직도 나를 조종해.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과신하는 남자들에게 매번 테스트처럼 ‘나 사랑해?’를 연발해왔어. 그래 너가 날 언제까지 사랑하나 보자하는 마음으로. 정기도 여전히 그 테스트를 받고 있지. 이 마음은 절대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아. 엄마도 채워주지 못했는 걸.
엄마 암이 재발했을 때 새로운 이름을 받아왔잖아. 김수정이라는 이름에 액운이 끼어서 엄마가 아픈 거라고. 이제부터 김미지로 불러달라고 했었잖아. 내가 엄마를 미지라고 부르지 않아서 엄마가 죽은 걸까. 나는 수정이라는 이름이 더 좋았거든. 내가 밤에 손톱을 깎아서 엄마가 죽은 걸까. 내가 사랑을 갈구해서 엄마가 질려 떠나버린 걸까. 엄마처럼 착하고 순진한 사람이 왜 죽어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엄마가 없는 벌을 받아야 하는 걸까. 그 벌을 받으며 어떤 걸 깨달아야 하길래. 깨닫고 나면 엄마가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나는 무기징역이야. 그렇다면 아무것도 깨닫지 않을래.
더 고차원적인 어떤 존재가 나의 성장을 위해 이런 시련을 준 거라면, 정말 날 간과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저기요, 저는 평생이 사춘기에요. 날 가르치려고 나에게 벌을 내리다니. 전 그 벌을 맞고 차라리 죽겠어요. 절대 당신이 원하는 성장따위 하지 않아. 아주 날 단단히 잘못 봤어. 나는 채찍보다 당근에 효과가 있는 타입이라고. 당신 실수했어.
엄마, 진짜 신기하지 않아? 엄마가 아빠랑 보낸 시간보다 이제 내가 아빠랑 보낸 시간이 더 길다. 나는 이제 엄마보다 아빠를 더 잘 알아. 너무 신기하지. 엄마 대신 죽어야 할 건 아빠라고 굳게 믿었는데, 이제는 아빠가 최대한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나를 막무가내로 패던 아빠는 그때의 기억을 깨끗이 잊은 채, 나를 되게 자랑스러워해. 정말 시간의 힘은 엄청나다.
엄마는 어때. 엄마가 생각한 33살의 고재연은 어떤 모습이었어? 이런 모습을 기대했었어? 나 엄마한테 자랑스러운 딸이야? 그때가 생각나. 엄마가 엄마 병동에 내 자랑을 그렇게 그렇게 해놓고 내가 병문안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을 때. 나는 귀에 오만가지 피어싱을 하고 머리도 샤기컷을 하고 살도 퉁퉁 불어서 돼지처럼... 누가 봐도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었잖아. 날 보고 실망하던 엄마의 표정 난 당장이라도 그릴 수 있어. 나는 센 척을 하고 싶었어. 엄마가 아프지만 난 그런 것 따위에 주눅 드는 애가 아니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싶었단 말이야. 엄마가 없어서 내가 이렇게 망가졌으니 빨리 집에 돌아와서 나를 돌보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엄마와 엄마 병동 친구들이 날 보고 실망하니까 그제야 아 실수했구나 싶긴 하더라.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 엄마랑 대화도 안 하고 폰만 봤어. 그때가 정말 아쉽고 후회 돼.
이런 식으로 엄마를 놓쳤던 여러 순간들이 날 옭아매. 난 정말 왜 이렇게 어리고 철이 없었을까. 왜 나는 이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 걸까. 도대체 왜! 왜! 불쌍한 엄마. 자기가 낳은 딸이 천재인 줄만 알았던 순진한 우리 엄마. 엄마, 나는 사실 멍청이야. 겁쟁이라고. 나도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머저리란 말이야.
요새 상담을 받고 있어. 분명 정기와의 문제로 시작한 상담이었는데, 어라라 점점 더 ‘나’에게 집중하게 되더라고. 괴로워. 내가 정말 정상이 아닌 것 같아. 뭐... 정상이 아니니까 상담을 받겠지. 상담하면서 내 과거에 상처받았던 이야기를 계속하게 돼. 힘들어. 나는 매번 상처받았던 그 순간, 그 상황에 다시 고등학생이 된 채로 서 있게 된단 말이야. 그럼 뭐해. 난 이제 그 순간을 바꿀 수가 없는데. 정말 다들 이런 과정을 겪는 걸까. 어떻게 이걸 겪고 극복하는 걸까. 다들 정말 강하구나. 나만 나약하구나 싶어.
난 엄마가 살아있었을 때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죄로, 엄마가 죽었을 때 그 순간에 이입하지 않고 도망친 죄로 벌을 받고 있어. 내가 저지른 일이니 마땅히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야. 하지만 쪽팔리긴 하지. 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엄마, 엄마하고 있나. 나약한 나. 내가 쓰는 모든 글에 엄마가 등장해. 내 모든 눈물의 버튼은 엄마가 눌러. 엄마한테 용서를 받아야 이게 끝날 것 같은데, 날 용서해줄 엄마는 이제 없어. 정말 큰 일이다. 정말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잖아.
상담을 하면서 엄마는 미성숙한 인간이었고, 엄마도 잘못했고, 모든 게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걸 점점 알게 돼. 듣기 싫다. 내가 그런 말에 ‘휘유유 다행이다’하면서 안도할 줄 알고? 아니. 아니야. 그건 날 더 괴롭게 해. 엄마가 미성숙한 사람이었다는 걸 인정하는 건, 나한텐 또 다른 회피 통로가 된다고. 난 더 이상 도망가고 싶지 않아. 이미 난 가장자리인걸. 그리고 사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김수정은 부족한 인간이었고 부족한 엄마였다는 거. 내가 기억하는 엄마는 내 입맛대로 조악하게 만든 이미지 조각일 수도 있다는 걸 말이야. 무서워. 그걸 알았는데도 난 달라진 게 없거든. 정말 무서워. 내가 정답을 아는데도 오답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게. 난 구제불능 문제아야. 아무도 날 선도할 수 없을 것 같아.
가끔 점을 보러 가는데, 무당들이 입을 모아 엄마가 천국을 못 올라갔다는 말을 해. 엄마가 나를 너무 걱정해서 여전히 내 주변을 떠돌고 있다는 거야. 하마터면 천만 원 넘게 주고 천도제를 지낼 뻔했어. 그거 다 상술인 거 아는데, 아는데도 마음이 불편해. 정말로 엄마가 하늘로 못 올라간 거면 어쩌지. 엄마 안 돼. 올라가야 돼. 못 올라갔으면 꿈에라도 나오던가. 이 나쁜 엄마.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데.
엄마 아직도 나를 사랑해? 얼마나 사랑해? 나 이제 쌍수도 하고 늙어서 엄마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어. 그래도 나를 사랑해? 엄마 나 이상한 남자도 만나고, 찌질한 짓도 하고, 성격도 포악한데 나를 사랑해? 얼마나 사랑하는데. 얼마나 사랑하냐고.
내가 상담을 받고 더 나은 내가 돼서 엄마를 잊어버리게 되면 어쩌지. 엄마를 지나간 과거로 치부하고, 난 가뿐하게 새 삶을 향해 한 발자국 내딛게 되면 어쩌지. 그럼 엄마를 누가 기억해준단 말이야.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엄마 나 방금 아주 무서운 생각이 들었어. 사실은 엄마가 나를 못 놔서 하늘에 못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엄마를 못 놔서 엄마가 하늘에 못 올라가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어떡해. 난 엄마를 놓을 수가 없는데. 미안해. 놓을 수가 없어. 그럼 이건 엄마가 받는 벌이라고 생각해. 날 두고 먼저 간 벌. 더 참을 수 있었잖아. 더 버틸 수 있었으면서 그냥 놓은 거잖아. 나라면 안 그랬을 거야. 내가 엄마라면 절대 안 그랬을 거라고. 엄마도 벌 받는 거야. 나랑 이렇게 이따가 하늘 같이 올라가자.
나는 모든 악인에게서도 약한 지점을 발견해. 그럼 참을 수 없이 안쓰러워지고 더 이상 그 사람이 미워지지 않아. 반대로 모든 선인에게도 악한 지점을 발견해.
쟤한테 이런 면이 있구나 싶으면, 그 사람이 온전히 좋아지지 않아. 나는 그 누구도 완전히 싫어할 수 없고, 완전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됐어. 탓 좀 해도 될까.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는 귀엽고 순진했지만 어리숙하고 자기중심적이었잖아. 나는 엄마를 닮았어. 그래서 나는 나를 완전히 싫어할 수도 없고, 완전히 사랑할 수도 없어. 그게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 같아. 나조차도 완전한 내 편이 못 되는데, 누가 내 편을 해줄까. 또다시 끝없이 외로워지는 밤이야.
엄마 사랑해. 너무 너무 사랑해. 보고싶어. 안고싶어. 엄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고, 나한테 왜 그랬냐고 칭얼거리고 싶어. 엄마 안아줘. 꿈에 나와줘. 나를 용서한다고 말해. 사실은 한 번도 화난 적 없고 실망한 적도 없다고 말해. 나를 사랑했다고.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우주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해. 그리고 영원히 나를 떠나지 마. 다시는 떠나지 않는 거야.
난 분리불안이야. 34살이 다 됐는데 엄마 없으면 안 돼. 참나. 나도 이런 내가 웃기다. 난 이제 엄마 얼굴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데. 엄마는 아직도 44살에 멈춰있을 텐데. 이제 나랑 10살밖에 차이 안 나. 언니라고 불러야 할 정도라고.
나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엄마를 사랑할까. 내가 사랑하는 건 엄마가 맞을까. 내 끝없는 불안을 종식 시켜줄 해결책을 엄마로 두고 있는 걸까. 몰라. 영원히 그 답을 모를 거니까. 그냥 엄마 탓할래. 엄마 탓이야. 엄마가 누군지 모르지만 엄마를 사랑해. 엄마가 누군지 모르지만 난 엄마가 필요해. 엄마,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제발 알려줘.
엄마, 지금 날 보고 있니. 엄마는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고 있어? 난 모르는 길을 걸어도 엄마만 있으면 하나도 무섭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정말 정기도 없어도 되고, 아빠도 없어도 되고, 정우도 없어도 되는데. 엄마 하나만 있으면 정말 잘 살 수 있을 텐데.
아니야. 엄마,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 다 잊어 줘. 엄마, 제발 편안하게 하늘로 올라 가. 내 옆에 붙어있지 마. 엄마, 나에게서 해방돼. 새로운 삶을 살아. 절대 나 때문에 뒤돌아 보지 마. 엄마 미안해. 이게 내 진심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