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하고 있는 것과 받아들인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

by 고니크

마시가 아프다. 몸에 마비가 와서 이제 움직이질 못한다. 마시에게 푹신하고 깊은 방석이 필요하다는 정우의 전화를 받고 방석을 챙겨 인천으로 달려가는 차 안. 나는 내내 청첩장을 어떻게 뽑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청첩장에는 으레 부 어쩌고와 모 저쩌꾸의 딸 누구누구라는 문장이 적힐 텐데, 나는 모 자리에 넣을 이름이 없다. 아니 있는데, 있는데 없다.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재혼을 했다. 청첩장에 돌아가신 어머니 이름을 넣겠다고 말하면 아빠는 노발대발 난리가 날 것이다. 그렇다고 아빠의 배우자, 새어머니의 이름을 넣기도 애매하다. 그분은 아빠의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계시지만 나와 정우의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새어머니는 내 결혼식에서 아빠의 옆자리에 앉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속상하다. 왜인지 엄마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보고 있을 거라는 마음이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엄마는 자기 자리 없이 서 있다가 가는 거야?


결혼식은 신부의 날이라고 한다. 한점 스트레스와 걱정 없이, 무조건 행복만 할 수 있도록 진행해야 한다고.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려면 [내 결혼식을 신나는 마음으로 축하하는 아빠+아빠 옆 빈자리] 조건이 성립해야 한다. 하지만 아빠 옆 빈자리 조건을 충족하면 아빠는 화가 날 것이고, 신나는 마음으로 축하하는 아빠 조건을 충족하면 아빠 옆엔 새어머니가 앉아야 한다. 내가 이 결혼식에서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 도무지 없다.


하나뿐인 결혼식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정작 나는 행복할 수 없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빠의 체면도 생각해야 하고, 새어머니를 무안하게 만들지 말아야 하고, 시부모님 댁에도 피해를 끼쳐드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머리가 바빠진다. 그래서 마음을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난 아주 오래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아빠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결국 용기 내지 못했다.


내가 이 고민을 말하면 아빠는...

상상1. 불같이 화를 낸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상상2. 죽은 사람을 아직도 못 잊는 미련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죽은 사람이 내려와서 결혼식을 본다고? 너 신점 같은 거 보러 다니더니 아주 미신에 꽂혔구나! 그것도 정신병이다!"


상상3. 도리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우리 모두가 널 위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니..."


아... 스트레스받는다. 난 그냥 내 결혼식의 행복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요. 아버지. 옆에 새어머니를 앉히세요. 제가 무너지지 않는 화장을 해드리고 어여쁜 혼주 한복도 입혀드릴게요. 생각해 보면 이제 '어머니'라고 부르기로 하기도 했고, 내 상견례 때 어머니 역할로 오셨으니(이때도 얘기하고 싶었지만 용기 내지 못하고 아빠가 하자는 대로 따랐다) 결혼식 그 자리에 앉는 게 영 이상할 것도 없지. 나만 그냥 우리 엄마 생각 그날만 안 하고 넘어가면 모두가 행복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운전을 하다가, 문득 내가 그냥 중요한 문제를 회피하고 있는 건가, 아님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게 된 건가 구분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마시는 이제 곧 죽을 것 같은데 난 그렇게 생각보다 슬프지도 않다. 나는 마시의 죽음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받아들인 걸까.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 생각을 하고 메모장을 켰다. 운전 중이었기 때문에 음성인식으로 말했다.


"회피하고 있는 것과 받아들인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 음성인식으로 내 목소리를 받아 적는 핸드폰이 메모장에 이런 문장을 썼다. [해피하고 있는 것과 받아들인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 풉. 해피라니. 해피. HAPPY요? 읽으면 읽을수록 묘하게 말이 되는 문장 같기도 한다. 행복한 것과 받아들인 것의 차이를 모르겠다 라니. 그래 모든 행복이 수용을 전제로 하는 건 아니니깐 말이지. 못 받아들였어도 행복할 수 있지.


정우 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바닥에 누워 못 움직이는 마시가 목만 들어 나를 아는 척한다. 동물병원 의사 선생님이 우리 마시의 뇌가 다 망가졌다고 말했는데, 거짓말인 것 같아. 마시는 나를 알아보고 나를 반가워한다. 훌쩍 들어서 내 품에 안기니 눈을 들어 나를 본다. 지금 마시는 편안해한다. 내가 코에 뽀뽀뽀뽀뽀뽀하니 마시도 혀를 낼름낼름 내밀면서 맞뽀뽀를 해준다. 우리끼리의 사랑신호다. 역시 마시는 하나도 잊지 않고 있어.


아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우리 마시. 너무 너무 사랑해. 누나가 너무 너무 많이 사랑해. 도가 지나칠 정도로 사랑해. 우리 귀여운 마시. 불쌍한 우리 마시." 마시가 나를 본다. 나는 이제는 털이 하나도 없이 핏줄만 굵게 튀어나온 얇은 귀를 열어 구멍에 대고 속삭인다. 마시가 내가 우는 걸 알아차리면 안 되니까 성대에 힘을 깍 준다.


"마시야. 너무 힘들고 아프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무지개다리 건너도 돼. 하나도 무서운 거 아니야. 무지개다리 건너러 가면 아줌마 한 명이 너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절대 혼자가 되는 게 아니니까 무서워하지 마." 눈물이 똑똑 떨어진다. 마시한테 흘리지 않으려고 얼굴을 호잇 호잇하면서 웨이브를 췄다. 다행히 내 눈물은 정우의 소파에 떨어졌다. 정우야 그 소파 버려라. 내 눈물 때문만은 아니고 냄새나더라.


간헐적으로 에어컨 바람 소리만 들리는 작은 원룸. 내 가슴에 마시를 눕혀놓고 마시 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하구나 했다. 우리 마시는 이제 정말 얼마 못 살 건데, 그게 느껴지는데, 나는 그래도 이 순간 행복하구나. 마시가 죽으면 절대 안 되는데. 나는 버틸 수가 없을 텐데. 그래도 이 순간 나는 행복하다. 나는 마시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그래도 해피하다. 마시야 사랑해. 정말 너무 사랑해. 왜 사랑은 '사랑'에서 끝나는 걸까. 나는 '사랑'이라는 단어보다 훨씬 더 널 사랑하는데. '사랑'을 뛰어넘어서 널 사랑하는데. '사랑'의 최상급 표현은 한국말에 없는 걸까. 내가 지어내야겠다. 이제부터 '사랑'의 비교급은 [마시] '사랑'의 최상급은 [엄마]다. 마시야 널 너무 마시해. 널 진짜 엄마해.


아, 엄마. 정말 청첩장 엄마 자리에 누구 이름을 써야 한단 말인가. 이건 비단 내 마음의 문제만은 아니다. 내 모든 친구들과 지인들은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걸 알고 있기도 해. 그 자리에 새어머니 성함을 넣는 것도 웃긴 일인 거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 난 새어머니 성함을 모른다. 그만큼, 정말 그만큼 우리는 교류가 없다.


아빠를 설득할 수 있을까. 내가 새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친구 엄마들한테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그런 맥락에서였다는 것을. 가족이 되고 싶어서 지나온 내 과거 이야기, 최근의 내 고민 얘기를 우당탕탕 털어놓았더니 이후 아빠를 통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기분 상했다.'는 말을 전해받았을 때 내 마음이 조금 닫혔다는 것을? 어떻게든 비비적 대며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내 연락을 왜인지 귀찮아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 우리는 너무 다른 세계에서 살아온 사람. 하지만 그걸 맞춰갈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명절에 내 안부 인사를 받지 않고 아빠를 통해서 '이런 전화 안 해도 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각자의 자식들이 아이를 낳으면 절대 터치하지 말 것/주말에 당신이 가서 혼자 보는 것까지는 상관 안 하겠다는 둘만의 룰을 내가 알게 됐을 때, 그때의 내 기분을 어떻게 말을 해야 아빠는 이해할 수 있을까.


새어머니는 아빠의 배우자다. 어머니 역할은 나도 그녀도 모두 원하지 않고 있다. 그 역할을 원하는 건 오로지 아빠 한 명뿐인 것 같은 이 상황에서 내가 부딪혀야 할 사람은 결국 아빠다. 아빠를 사랑하는 마음과 나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 완전히 이해 충돌하고 있다.


어쩌면 좋을까. 이 문제에서도 난 언젠가 못 받아들이지만 해피할 수 있을 것인가.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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