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첫 집은 C동의 한 빌라 꼭대기층이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정우가 얹혀 살았다. 구석 방에 하숙을 하는 대학생 언니까지 합치면 총 7명이 한 집에서 산 거다. 할머니는 나를 당신 무릎에 눕혀놓고 내가 입을 아 벌리면 딸기를 또 아 벌리면 군밤을 넣어주셨다. 하숙하는 언니는 어른들이 일 보러 나가면 나를 조용히 불러서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아침에 내가 먹기 싫다고 했던 팥, 콩, 김치, 멸치를 왜 먹어야 하는지 어디에 어떻게 좋은지를 한참 설명해줬다. 그래도 난 끝까지 안 먹었지만.
받아쓰기 한 번 틀릴 때마다 엄마아빠한테 사랑의 매로 종아리 한 대씩 맞았다. 이번에는 절대 안 맞겠다고 결심했던 초등학교 1학년 고재연. 컨닝을 했다. 그와중에도 머리를 굴려서, '너무 100점 맞아버리면 의심 받겠지 조금씩은 틀려놔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10문제 모든 문장을 조금씩 일부로 틀려놓은 나. 결과는 빵점. 종아리도 맞고 무릎도 꿇고 손도 들고 서 있었다. 억울하다. 나는 컨닝을 했는데! 심장이 쫄깃했는데! 양심도 찔렸는데! 그럼 결과라도 좋아야 했던 거 아니냐! C동에서의 시간을 무릎의 시간이라고 부르겠다.
그 다음은 D동의 신축 아파트였다. 지하주차장에서 바로 집으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 멋진 곳! 깨끗한 곳! 부자! 나는 부자다! 엄마, 아빠, 나 그리고 정우. 네 명이서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문 열고 들어오면 따듯한 바닥에 된장찌개 끓는 냄새가 맡아지는 그런 이상적인 공간이었다. 엄마와의 추억을 거기서 다 쌓았던 것 같아. 인생 최고의 평화와 행복을 누리고 있던 초등학교 4학년. 내일 입을 옷을 다리고 있는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들짐승이 내는 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소리 소리를 질렀다. 안 된다고 했다. 뭐가 안 된다는 거지. 뒤늦게 들어온 엄마가 나를 껴안고 엉엉 울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공포 영화를 봤나?
그러고 G지역으로 이사갔다. 공기 좋고 물 좋은 G지역... 이라며. 깔끔하고 멋드러진 D동 아파트가 그리웠다. 층고 낮고 낡고 어둡고 오래된 성냥갑 아파트들. 과연 이런 곳에서 엄마의 병이 나을 수 있을까 의심스러웠다. 나는 그 전에 한 반에 학생이 30명 내외인 단정하고 조용한 중학교를 다녔다. 그런데 G지역에 오니 내 번호는 47번. 한 반에 47명이나 우글우글 모여있다니. 으, 공학이라니. 남자애들 땀냄새. 윽. D동 내 친구들은 호호호나 하하하로 웃었는데 여기 여자애들은 풉 이나 킥으로 웃는다. 눈치가 너무 보이고 왜인지 주눅이 든다. 나보고 "너 놀았어? 노는 애야?" 물어보는 애. 놀았냐는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야? 당연히 놀지. 놀이터에서도 놀고, 문방구 가서도 놀고, 친구들끼리 가끔 명동도 가고... 왜 놀았냐고 물어보는 거지? 난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어. 나 완전 잘 놀았는데. 나 잘 노는 애야." 그날 일찐 친구에게 내 새 체육복을 빼앗겼다. 뭐야. 야 놀자매. 놀자매!
G지역이 아무리 공기 좋고 물이 좋아도 나는 그곳에서 엄마를 잃었다. 집에서는 귀신을 봤고 내 방에 누울 때마다 가위에 눌렸다. 같은 지역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갔다. 이제 아빠와 나, 정우 그리고 마시. 네 식구가 사는 곳. 꿈에 그리던 신축 아파트였지만 그곳에서의 기억은 왜인지 내게 하나도 안 남아있다. 그곳에서 4년 동안 뭘 하며 살았을까. 나는 고3이었고 재수를 했다.
재수를 하며 다시 C동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있을 법한 간의 침대 하나가 간신히 들어가는 좁은 방이 내 하숙방이 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하숙 할머니가 싸준 아침으로 점심 도시락을 싸고, 노량진으로 가 공부하다가 밤12시에 다시 돌아오는 생활. 반지하는 습했고 어두웠다. 작게 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불을 켜보면 항상 곱등이가 있었다. 침대 밑에 자리 잡은 곱등이. 에프킬라를 뿌렸더니 왜 자신에게 이런 수모를 주냐면서 화가 잔뜩 나 나에게 달려왔다. 침대 밑에서 나에게로 다가오는 그 짧은 시간. 침대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점프하는 툭. 툭. 툭. 소리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무서웠다. 내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곳에서 난 엄마가 졸업했던 대학교에 입학했다. 엄마 우리 동문이야.
취직을 해서는 방송국 바로 앞에 있는 오피스텔로 첫 독립을 했다. 오전 10시 출근 새벽 5시 퇴근. 매일 주말 없이. 막내 작가의 생활은 고되다. 브라끈까지 왔던 머리카락을 귀 밑으로 싹둑 잘랐다. 머리 감을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였다. 난방이 고장나 너무 추웠던 오피스텔. 난방을 올리고 올리고 올려서 60도까지 올렸는데도 집은 따듯해질 기미가 안 보였다. 이사 나오는 날 알았다. 내가 그동안 온수 온도만 주구장창 높이고 있었다는 걸.
다음 자취방은 당산. 4평에서 6평 원룸으로 업그레이드 됐다. 뒤로 한강이 흘러가고 앞으로는 온갖 술집들이 즐비해있는 이곳. 청춘을 즐기기 딱이다. 딱이야. 딱인데. 후루루루루룽 꾸루루르르릉 소리를 내는 내 머리 위 공간. 그곳은 화장실. 며칠 전부터 화장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퇴근해 오면 똥이 가득 차있는 변기. 내가 물을 안 내리고 갔던가? 아닌데. 내 똥의 모양새가 아닌데. 나는 고체인데 얘는 왜 액체... 새벽 3시 천둥치는 소리에 놀라 깼다. 천둥이 화장실에서 치고 있었다. 너무나 위험한 소리다. 저 변기 안에서 해그리드가 나오는 중이라면 인정. 호그와트에서 누락한 내 입학초대문을 이제라도 가져오는 거라면 인정이라고. 내 기대와는 다르게 변기에서는 똥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쓰레기와 똥과 오물과 먼지와 머리카락들이 마법사 모자 속 비둘기처럼 등장했다. 역류다. 집주인은 나를 탓했다. 똥 좀 덜 싸라고. 아니! 모욕하지 마세요! 저 똥이 뭔지 몰라요! 저 공주라고요. 뚫어서 고쳐놓으면 역류하고, 또 고쳐놓으면 역류하고를 2개월간 반복했다. 6평 방 안에 똥냄새가 가득 차고 나는 심신미약으로 실신 직전이었다. 위층에 올라가 제발 변기에 물티슈 좀 버리지 말라고 애걸복걸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더 오래 살아 청춘을 즐기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 나중에 듣고 보니 애초에 화장실 공사가 잘못돼 있었다고 했다. 내 잘못도 위층의 잘못도 아니었던 거야...
아빠와 정우 그리고 마시, 셋이 사는 S지역으로 내 몸을 의탁했다. 거기서 정기를 만났다. 찾았다, 내 사랑. 내가 찾던 사랑. 정기와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나는 결국 자취방 트라우마를 극복해내고 B동으로 다시 한번 독립을 꾀했다. 13평 투룸의 작은 집. 난 내가 인생의 성공을 이뤘다고 생각했다. (대출을 많이 꼈지만) 내 이름으로 된 전세다! 그것도 아파트! 나에겐 차도 있다고! 중고차지만, 스파크지만! 내 이름으로 된 내 차! 나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자도 있는 원숙한 30대 여성이다! 그곳에서 4년. 177cm 성인 남자와 148cm 성인 여성은 슈퍼싱글 매트리스에서 함께 잤다. 정기는 어깨를 접고 접고 또 접고, 나는 옆으로 누워자고. 정기는 만성 어깨 통증을 호소하고 나는 팔자주름이 왼쪽만 패였다. 그거 아니. 사랑은 희생이란다. 사랑은 아무리 구겨져도 그래도 붙어있는 거란다.
얼마나 구겨졌는지 이젠 슈퍼싱글 매트리스가 하나도 불편하지 않은 우리 두 사람. 4년이라는 시간은 그 작은 사각형 안에 서로의 몸을 테트리스처럼 잘 배치할 줄 알게 만들었다. 우리 이제 얼추 잘 맞는 것 같아.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시간이다.
신혼집은 공기 좋고 물 좋았던 G지역 근방으로 정했다. G지역에서 난 엄마를 잃었지만, 귀신을 보고 가위에 눌렸지만, 그러다 못해 기억을 지워버렸지만 그래도 나는 돌아왔다. 생각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았어.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엄마가 아파서 회사를 안 다니니 24시간 내내 붙어있을 수 있어 좋았어. 귀신이 무서울 때마다 더 엉겨붙어 아양부릴 수 있어 좋았어. 공기가 정말 좋았어. 물도 물론 좋았다. 여름이면 학교 뒷산에 가 물놀이를 했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기념일마다 사탕과 빼빼로와 초콜렛을 사다주는 이름 모를 남자애도 기억에 남고, 나에게 큰 수치를 줬던 점심시간의 공개고백도 돌이켜보면 귀여웠다. 여고 저녁 시간 운동장을 회전초밥 돌듯 돌았던 기억도, 어설픈 화장으로 번화가로 놀러나갔던 것도, 친구들끼리 매번 0교시를 띵까먹고 맥날에 모여 맥모닝을 먹었던 것도, 새벽 2시까지 공부하다 나오면 아빠가 매번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도 다 소중하다. 결정적으로 난 G지역에서 마시를 처음 만났다. 마시를 만나게 해준 곳. 마시와 내 10대의 절반을 보낸 곳. 그래서 나는 돌아왔나.
매트리스는 퀸 사이즈로 골랐다. 이제 정기도 나도 몸을 구겨넣지 않아도 된다. 어쩐지 조금 아쉬워지는 마음을 안고 뒤를 돌아본다. 내 등 뒤의 달팽이 껍데기. 내가 공간을 옮길 때마다 똑같이 커지고 단단해졌던 것.
안녕. 앞으로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