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는데 정우한테 전화가 왔다.
이 글을 처음 읽는 사람을 위해서 설명하자면 정우는 내 남동생이고, 아빠와 정우와 나는 각자 따로 살고 있으며, 정우는 우리 모두가 함께 키웠던 강아지 마시(18살)를 키우고 있다. 마시는 극심한 치매에 걸렸고 움직이지 못 한다. 동물병원에서 마시의 안락사를 권유한지 4개월이 지났다. 마시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오늘따라 눈 뜨자마자 상쾌하더라니. 왜인지 기분이 좋더라니. 인생은 드라마다. 주인공을 바닥 치게 만들고 싶으면 그 직전에 하늘로 띄워놓으면 된다. 휴대폰 너머로 정우가 말했다. "나 이제 자신이 없어. 나는 버틸 수 있는데까지 버틴 것 같아. 마시가 죽는다고 해도 이제 후회하지 않아. 난 마음의 준비가 끝났어."
마시에겐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지옥에서 사는 것과 안락사. 안락사만큼은 절대 안 된다며 마시를 데리고 갔던 정우가 3개월 만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3개월 동안 정우는 제대로 된 잠을 자지 못했다. 밤이면 불안과 고통이 더욱 심해지는 마시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기 때문이다. 물론 정우의 이웃들도 잠을 자지 못했겠지.
정우가 이어서 말한다. "누나가 데려가. 마시랑 마지막으로 시간 보내. 그러고 마시 보내주자." 나한테 너무 가혹한 말이다. 마시를 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마시와 함께 있으라니. 그 말은 곧 내가 버틸 수 있는 만큼이 마시의 남은 수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내가 못 버티면 마시는 죽는 거야. 어느날 내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마시를 보낼 결정을 내리고 나면, 난 얼마나 나를 자책하게 될까. 물에 적셔져버린 솜사탕 같은 나의 인내심을 탓하며 나는 한층 더 못나질 거다.
정우의 전화를 받은 날,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무슨 말을 하며 하루를 보냈는지 기억 나지 않는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건 "방금 뭐라고 하셨었죠?", "다시 한번만 말씀해주세요."라는 말을 했다는 것. 상대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으면서 알아들은 척 희미한 미소를 띄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 정도.
마시를 데리러 가면서 '정우가 과장해서 얘기한 거겠지', '마시가 나한테 오면 좀 다를 거야' 위안을 삼았던 마음이 마시를 보자마자 무너졌다. 마시는 눈만 뜨고 있다. 이제 마시 몸에 영혼은 없다. 눈을 뜨고 숨만 쉬고 있는 몸뚱이. 내가 알던 마시는 이제 없어. 마시는 먼저 떠나버린 거야. 내 인내심을 시험하기도 전에.
마시를 태우고 집으로 오는 내내 마시의 찢어질 듯한 비명을 뒤통수로 들었다. 정우한테 전화했다. "도대체 나한테 마시랑 무슨 시간을 가지라는 거야?" 정우는 계속 했던 이야기를 반복한다. 마시랑 같이 있으면서 마시를 떠나보낼 준비를 하라고. "내가 무슨 준비를 해야 되는 건데? 고문 당하면서 죽어가는 생명체를 들여다보면서 내가 어떤 준비를 해?" 정우는 말한다. 누나가 마시와의 마지막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다고. 엄마때 우리는 경험했다고. 준비하지 않은 영원한 이별이 인간의 영혼에 어떤 문신을 남기는지. 정우는 아무것도 모른다. 준비한 이별도 우리에게 문신을 남길 거라는 사실을. 이렇든 저렇든 나는 후회를 할 것이다.
고통에 빠진 마시를 억지로 살려놓고 쓸어주고 울어주고 뽀뽀해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일일까. 마시는 어쩌고 싶을까. 살고 싶을까. 살고 싶다면 언제까지 살고 싶을까. 죽고 싶을까? 마시가 죽는다는 게 뭔지 알고나 있을까. 죽어본 사람만 아는 감정이다. 엄마가 내려와서 알려줬으면 좋겠다.
정우가 하라는 준비, 마시가 살아있을 때는 못 할 것 같다. 내가 이별을 후불제로 감당하는 타입이라는 걸 이렇게 알게 된다.
늙어가는 마시를 돌보며 지난 몇 년간 많은 눈물을 흘렸다. 버티고 버티고 버티다 간 동물병원에서 안락사 권고를 받았을 때 난 흠뻑 적셔졌다. 안락사 이야기를 듣고 정우에게 마시를 보내기 전 그 한 달, 그때부터 나는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다. 이미 너무 축축한 나다.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이미 젖었지만 또 젖을 수 있는 거였다. 나는 그게 정말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