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었지만 뿌듯한 미친 기분

by 고니크

우리 집에는 징크스가 있다.

바로... 체중계를 사면 무조건 고장이 난다는 것. 요즘 체중게들은 빠져가지고 좀만 무거우면 아 나 못 들어하면서 쉽게 포기해버리는 게 문제다. 나때는 안 그랬는데 말이야. 역시 바늘만 슥 움직여서 숫자 지시해주는 식의 아날로그 때가 제일 성실했던 것 같다.


전자 체중계가 들어서고 나서부턴 걔에 대한 신뢰가 안 간다. 분명히 공복 몸무게인데 뭘 먹고 나서 잰 것같은 몸무게를 표시해주질 않나. 방금 똥싸고 나왔는데 몸무게가 안 빠져있질 않나. 부엌에서 쟀을 때랑 안방에서 쟀을 때랑 무게가 다를 때도 있다. 발로 몇 번 차주면 그제야 겁을 좀 먹었는지 납득 가능한 몸무게를 보여주는데... 현타온다. 나,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진 않았는데... 평화롭게 살고 싶었던 나를 체중계가 다 망쳐놨다.


이렇게 나와 밀고 당기는 관계를 맺고 있는 체중계가 얼마 전 비상사태 선언을 했다. 결혼을 두 달 남긴 시점이었다. 체중계는 나에게 이 몸무게로 식장에 들어갈 생각이냐며, 너는 수치심이라는 게 있기는 한 거냐고 모진 소리를 했고 나는 털썩 무릎을 꿇...지 못하고 덜렁거리며 무릎을 꿇었다. 내 뱃살이 낸 소리였다.


5월의 웨딩촬영을 위해 1월부터 시작했던 다이어트, 나는 4개월 간 고작 3kg를 뺐었다. 나 정말 열심히 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헬스장에 가서 유산소 40분, 그리고 저녁에는 필라테스. 여기다 일주일에 두 번은 클라이밍까지. 내 기초대사량이 1060이니까 식단은 1200 칼로리에 맞춰서! 단백질 양도 하루 최저 60g! 세상에서 하라는 건강한 방식대로 했는데 3kg 빠진 거다. 어이가 없었다. 120일을 하루 두 번씩 운동하면서 어? 원랜 내가 하루에 2천 칼로리씩 먹었었다고. 얼마나 배가 고팠는데 어? 3키로? 3키로요? 3키로는 정기(남편)가 저녁 굶고 다음 날 아침에 쟀을 때 빠져있는 체중이다.


나는 건강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루 섭취량을 700칼로리로 줄였다. 단백질? 많이 먹으면 좋은 거 알죠. 아는데. 많이 먹으면 살이 쪄요. 탄수화물? 꼭 먹어야 하는 거 알죠. 아는데. 많이 먹으면 살이 쪄요. 나는 건강 그런 거 모르겠고, 요요 그런 것도 모르겠어. 일단! 일단 살을 빼야 한다. 무조건 빼야 한다.


그렇게 3주만에 3kg를 뺐다. 성인이 되고 나서 이런 몸무게를 가지는 건 처음이다. 아! 가벼워! 아침 햇살~ 반짝여! 지저귀는 새소리~ 듣기 좋아! 신선한 공기 냄새~ 음~ 프레쉬! 가벼운 몸으로 하루를 시작해볼까. 나는 침대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 휘청, 쿵. 내 머리와 바닥이 만나는 소리다.


어지럽다. 아 어지러워. 너무 안 먹은 탓인가. 앉았다 일어설 때면 눈이 반짝하는 어지러움을 느끼게 됐다. 내 몸이 이상해진 건 이뿐만이 아니다. 귀가 이상하다. 귀에 물이 들어간 것처럼 멍멍해지는 느낌이 간헐적으로 반복됐다. 아무리 억지 하품을 해도, 침을 꼴깍 삼켜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귀가 멍멍해지면 내 목소리가 내 귀 안에서 너무 크게 들렸고, 나는 내 목소리를 이기려고 더 큰 목소리를 냈다. 그럼 내 귀는 지지 않고 더 큰 목소리를 내게 돌려줬으며, 남들 눈에 내 모습은 그냥 미친듯이 소리 지르는 사람이었다.


병명은 이관개방증이었다. 그게 뭐냐면 우리 몸에는 귀와 코를 연결하는 이관이라는 기관이 있... 아 됐고. 간단히 설명하면 살이 빠지면서 귀 안의 살도 빠져서 애가 정신을 못 차린다는 거다. 내가 살을 빼다 못해 몸 안 쪽 살까지 빼버린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 귀가 멍멍한 증상은 나에게 어떤 전리품 같은 기능을 하게 되었다. 쿸... 풉... 힛... 나... 살을 뺐어... 하핫! 얼마냐 뺐냐고? 몸.안.쪽.내.장.까.지.빼.버.렸.다. 으하하하하하하하! ...뭐 이런 기능?


나는 지금 뿌듯함에 심취해있다. 그러니까 아무도 내게 진실을 말해주지 마세요.


가령

"너 지금 고작 3kg 뺀 거야."라거나

"3kg 가지고 이관개방증 온 거면 몸이 나약한 것."이라거나

"그정도 나약함인데 얼른 건강하게 안 돌리고 뭐해? 결혼식이 뭐라고?"라거나

"그런 식으로 하다간 몸 다 망가져"같은 말도 싫고요.

"백퍼 요요 온다"도 금지할게요.


대신 이런 말을 해주세요.

예를 들어

"이관개방증? 대박! 다이버들한테는 축복의 재능이야!"라거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독하게 빼보겠어!"라거나

"살 빠지니까 예쁘다~"같은 말들 말이에요.

내가 어지러워서 쓰러지면 날 안아서 일으켜주면 되잖아요. 귀가 이상하면 카톡으로 대화해요, 우리.


나는 지금을 즐기고 싶다. 허리띠가 없으면 이젠 못 입는 바지, 오랜만에 본 친구가 우와 놀라는 표정, 똥 닦을 때 보이는 허벅지 사이 간격 뭐 그런 것들. 약지에 꼈던 프러포즈링을 이제 검지에 끼고 있다. 거북목 방지 운동을 아무리 해도 이제 두턱이 안 생겨. 나 45kg야. 나 이제 발라아사나 자세가 제대로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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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발라아사나를 하려고 해도 엉덩이가 발끝에 닿질 않았다. 근데 이제 닿는다! 으하하하하하! 발라아사나는 편하게 쉬라고 만들어진 자센데 지금까지 제대로 편하게 쉬질 못했었단 말이야. 이젠! 푹 쉴 수 있어!


기분이 좋다. 나는 더 뺄 거다. 딱 1키로만 더. 아니 2키로. 몰라. 빠지면 빠지는 대로.


결혼식까지 남은 시간은 약 한 달. 딱 그 시간동안만 덜 건강하면 된다고 마음을 다 잡는다. 사실 내가 잃은 건강은 정신 건강 쪽인 것 같다는 사실을 의식의 뒷편으로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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