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하려면 나 같은 딸을 사랑하래요

by 고니크

요새 내 키워드는 '나를 사랑하기'다.

누가 나한테 얘기해 줬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 그 사람은 나한테 이런 상상을 해보라고 했다. 내가 딸을 낳는다. 그 딸은 나와 성향이며, 성미며, 성격이며, 성질이며 모든 면이 100% 똑같다. 그렇다면 그 아이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 어떤 말을 해주고, 어떤 사랑을 줄 것인가?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상상해 봤다.


딸: 엄마 있잖아. 오늘 유치원에서...

나: (더 듣지도 않고) 그 새끼 미친 새끼 아니야?


... 내 딸은 오늘 유치원에서 맛있는 사과를 먹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무작정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에게 화를 내버렸다. 잠깐, 이런 상상이 아닌가? 다른 상상을 해보자.


딸: 엄마 나 미성년자지만 타투도 하고 피어싱도 했다!

나: (정기에게 한쪽 손을 내밀며) 채찍.

딸: (두려운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나: (채찍을 휘두르며) 이것이 미쳤나! 촥! 촥!


... 좋은 엄마가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온몸에 작게 작게 많은 타투를 가지고 있는 나에겐 딸을 정당하게 혼낼 명분이 없다. 나라는 엄마, 너무나 통제욕이 높은 엄마다. 미안해, 딸아. 이런 엄마라서... 이 방법이 진짜 맞는 걸까?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나는 일단 나랑 대화를 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말들이 아직도 생각난다.


"엄마 내가 과외 선생님한테 나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아요! 했더니 과외선생님이 비웃으면서 '니가?'했다? 기분이 나빴어. 그래서 다음 시간에 교복 입고 갔거든. 나는 교복 입었을 때의 내가 귀엽다고 생각해. 그랬더니 '오 재연아 너 너무 귀엽다~' 하는 거야. 좀 우쭐해졌는데 근데 그것도 결국엔 짜증 났어."


"오늘 3학년 전교생이 공연을 보러 갔거든? 삼각 벨트 같은 걸 팬티처럼 차고 놀이기구 타듯이 빙빙 도는 걸 할 사람을 구한다는 거야. 누가 하려나 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기 직원을 나를 무대로 억지로 끌고 올라갔어. 나보고 그 삼각 벨트를 차라는 거야. 치마에 속바지도 안 입었는데 빙빙 돌면 팬티 다 보일 거 아니야. 어정쩡하게 입다가 도저히 못 입겠어서 포기했는데 그 직원이 애들한테 '뚱뚱해서 안 들어가' 이러는 거야. 애들 다 보고 있는데! 너무 창피했어. 다 끝나고 집 가는 길에 용범이가 와서 나보고 '장애인'이랬어."


"엄마 나 학원에서 7만 원 잃어버렸어. 화장실에 두고 나왔는데 감쪽같이 사라진 거야. 이 반 저 반 다 돌아다니면서 친구랑 같이 찾았는데 결국 못 찾았어. 근데 엄마... 나랑 같이 찾으러 다녔던 그 친구가 범인 같애... 근데 말을 못 하겠어..."


내가 엄마한테 듣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그래... "그 새끼 미친 새끼 아니야?"다. 나는 그걸 원하는 것 같다. 나한테 상처 준 사람이 있다면 더도 들어보지 말고 비난부터 나가는 것. 내가 느꼈던 무안함, 창피함, 분노, 배신감은 너무나 당연한 감정이라고 말해주는 것. 나 대신 그 새끼들을 찾아가서 푸닥꺼리라도 한 판할 기세로 분노해 주는 것 말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엄만 마음속에 분노가 없는 사람이었고, 유약했고 무엇보다 입원해 있느라 내내 내 곁에 없었다. 나는 삐뚤어졌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귀를 뚫기 시작했는데 그 구멍 개수가 10개가 넘었다. 나는 귀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배꼽도 뚫고 싶었고, 눈썹도 뚫고 싶었고, 입술도 뚫고 싶었고, 손가락도 뚫고 싶었다. 천만다행으로 아무도 내 배꼽과 눈썹과 입술과 손가락을 뚫어준다는 곳은 없었다. 님들 좋은 어른들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엄마의 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보란 듯이 내 귀에 뚫린 10개의 구멍에 갖가지 피어싱을 달고 갔다. 어떤 건 체인이 죽 늘어졌고, 어떤 것 빨간 꽃이 달렸고, 어떤 것 뾰족한 뿔처럼 생겼다. 엄마가 이걸 보면 등짝을 날리겠지. 그럼 나도 화를 내야지, 무슨 상관이냐고. 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왜 때리냐고 소리 질러야지. 나는 전투를 앞둔 전사의 마음으로 엄마한테 갔다. 엄마가 나를 봤다.


내 귀를 찬찬히 뜯어봤고, 내 샤기컷을 봤고, 내가 줄인 치마의 길이를 봤는데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한숨만 쉬었다. 엄마, 미워. 왜 아무 말도 안 해. 나는 준비해 간 말이 많은데 이러면 할 수가 없잖아. 정말 미워. 왜 나 책임 안 져줘. 왜 내 옆에 없는 거야. 내가 이런 모습인데 왜 화를 안 내. 엄마는 왜 나한테 아무런 말도 안 하고... 왜 한숨만 쉬는 거야... 왜.


내 딸을 사랑할 방식으로 나를 사랑하라니. 나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화를 내고, 내로남불로 나를 통제하는 식의 사랑을 원한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이거 너무 나쁜 사랑 같잖아. 정정할게요. 나는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랑,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뭐든 하는 사랑, 나를 위해 나에게 정제되지 못한 감정을 퍼부어주는 사랑을 원한다. 그게 내가 바라는 사랑이야.


그럼 이제 숙제는 이걸 내가 나한테 해야 된다는 건데... 어렵다. 나는 그 누구보다 나를 의심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나 : 있잖아, 오늘 요가원에서...

지금의 나: (더 듣지도 않고) 너가 틀렸어!

나 : 어? 나 오늘 물구나무 성공했다고;

지금의 나: 모르겠고. 너가 틀렸어! 너가 잘못한 거고, 니 생각은 항상 자의식 과잉이야!


... 미안하다, 고재연. 이런 내가 나라서. 너는 참 나를 견디기 힘들겠다. 나아가야 하는 방향과 내가 나아가고 있던 방향이 너무 정 반대에 있잖아?


우선 내 자신을 나의 딸이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나는 나를 아주 버릇없는 아이로 키울 거야. 사랑만 받고 자라서 누구나 당연히 나를 사랑해 줄 거라고 생각하는 그런 아이로 성장시킬 거야. 나만 아는 자기중심적인 아이로 키울 거다. 내가 하는 생각, 내가 느낀 감정이 마땅히 정답이라고 당당하게 생각하는 아이. 자기 자신을 절대 의심하지 않는 아이. 절대 주눅 들지 않고 눈치 보지 않는 아이로 말이야. 카디비 딸처럼!


















고재연아, 지금까지 불안과 회의감 속에서 자라게 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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