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by 고니크

릴스와 쇼츠에 중독된 나는 한번 인스타를 키면 두 시간 뒤쯤 정신이 차려지곤 한다.


쏟아지는 영상과 글귀들 속에서 내 의식은 저절로 퓨즈가 꺼지고 나는 무작정 밀고들어오는 자극들을 필터없이 받아들인다. 영상에서 나보고 '울어!'하면 넵! 하고 울고, '웃어!'하면 넵! 하고 웃는 꼭두각시가 된지 어언 한 시간 반째, 나는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보고 있었다.


"넌 김씨가 아니라 허씨란 말이야!"를 들으며 그렇구나, 지금 인스타가 나보고 울라고 하네. 그 명 받들겠습니다 같은 생각을 하며 순종적으로 오열을 하고 있던 나. 찢어진 가족이 노력 끝에 다시 만나는 모습을 보며 사랑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사랑은, 그러니까 TV가 알려줬던 사랑은, 상대를 향한 강한 끌림과 소유욕, 독점욕, 상대가 싫다고해도 벽에 밀쳐서 키스를 하거나, 상대는 몰라줘도 그를 위해 목숨을 희생하거나 뭐 그런 부류의 극적인 영역에 있는 것이었는데 내가 어른으로 커보니 사실 사랑은 밍숭맹숭한 것이었다.


나는 정기를 사랑했고 그래서 정기가 싫다고 하는 일련의 것들을 무소의 뿔처럼 강행해왔다. 이상하다. 드라마를 보면 벽치기를 당한 후 강제로 키스를 당한 여자는 좀만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자신의 팔을 남자의 허리에 감았는데 말이야. 분명 사랑은 그런 거였는데. 정기는 도무지 내 허리에 손을 감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뭔가를 강행할 수록 우리 관계는 가장자리부터 부서져갔다. 나는 정기가 싫다는 것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닌데 싶었다.


나는 정기가 나를 위해 목숨을 희생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것이 사랑이니까. 그러나 비가 아주 많이 오는 날 길을 걷던 중 저 앞에서 빠른 속도로 차가 왔고, 그 차가 물웅덩이를 강하게 밟고 지나갔으며, 물웅덩이가 파도와 같이 상승했고, 정기는 운동선수의 순발력으로 내 뒤로 숨었다. 모든 물은 내가 다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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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하냐, 너.


대신 차에 치어주지는 못할 망정, 나를 방패막이 삼아? 정기는 내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가 홀딱 젖은 날보고 끅끅 웃었다. 내 사랑의 정의가 또 다시 어긋나는 순간이었지만 이상했다. 난 그런 정기가 귀여웠다. 뭐지. 이거 사랑 아니랬는데. 귀여워. 나는 사실 저 멀리서 차가 오는 순간 알았다. 나도 정기를 위해 내 목숨을 희생할 그릇은 아니라는 걸. 나는 나 먼저 살고 싶었다. 내가 흠뻑 젖은 건 내가 정기보다 속도가 좀 느렸던 탓이다. 목숨을 희생할 순 없어도 나는 정기를 사랑한다. 사랑은 뜨겁게 끓어오르지 않아도, 격정의 마음을 품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sns 중독자인 나는 또 다시 릴스에 고개를 쳐박았다. 인스타는 나에게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여줬다. 어떤 사람의 고민글이다. [최근에 핸드폰 번호를 바꾸었는데 계속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요.] 전화를 받으면 어린 아이의 목소리가 '엄마!'하고 금방 끊는단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신종 보이스피싱...? 그러나 사건은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알고보니 이 번호는 전화를 건 아이의 사망한 엄마의 번호였고,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알지 못한 채 엄마가 보고 싶어 계속 전화를 걸고 있었다는 것. 글쓴이는 오랜 고민 끝에 아이에게 장문의 문자를 한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먼 곳에 와있어. 너를 잊지 않고 여전히 너무 사랑해. 엄마를 생각하면서 건강하게 자라줄래?] 그 문자를 받은 아이가 답장을 보냈다. [네. 알겠어요. 사랑해요. 엄마. 나 잊지 마.] 아 눈물나.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의 마음을 모를 내가 아니다. 그래서 더 눈물이 났지만 나는 엄마를 향한 사랑이 아닌, 글쓴이의 사랑에 더 마음이 동했다. 이것도 사랑이지. 무시할 수 있었잖아. 근데 문자를 함으로써 아이의 현재와 당분간의 미래를 지켜줬잖아. 이것도 사랑이다. 상대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마음, 이것이 사랑이구나.


거의 모든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니는 나로서 어느 순간 게슈탈트붕괴가 오는 것이다. 사랑이 극적인 마음이 아니라는 건 이제 알겠어. 사랑하니까 너희는 내 꺼였고, 나도 너희 꺼였는데 그래 그런 소유욕을 조금 놔야하는 거 이제 알겠단 말이야. 꽉 쥔 손을 조금 푸니 쓸쓸하고 허전하다. 우리 사이에 이렇게 빈 공간이 많아도 돼? 하지만 이런 게 사랑이라는 거지. 조금 놓아주는 거 말이야. 그래 알겠어. 여기까지 알겠다고.


근데 '상대의 행복과 평안을 위해 기꺼이 행동하는 마음' 이게 문제다. 아, 이걸 문제라고 하면 내가 너무 못난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말이야. 근데 진짜 문제야. 물론 누가 내 친구 뺨을 때리고 간다면 난 득달같이 달려가서 그 자식의 머리와 몸통을 분리해오겠지만! 친구가 갖고 싶은 게 있다면 어떻게든 마련해서 생일에 깜짝으로 대령하겠지만! 무서운 곳에 함께 가주고! 무한하게 안아주겠지만!


그런데 만약 내가 행복하고 기뻐하는 일이 상대한텐 힘들고 지루한 일이라면? 나는 기꺼이 하는 일이, 상대에겐 극렬 거부를 일으키는 일이라면? 그럼 나는 나의 행복과 상대의 행복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한단 말인가. 어떤 걸 선택하는 게 사랑이란 말이야. 상대의 행복을 위해 내 행복을 포기하는 것까지가 사랑인 건가. 나는 사랑이 너무 어렵다.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좋아했음 좋겠다. 내가 들떠하는 걸 상대도 들떠했음 좋겠다. 나와 상대 둘 중에 뭐 하나를 꼭 선택할 필요없는 상황만 펼쳐졌음 좋겠다. 꽉 쥔 손을 조금 풀었다고 생각했으면서 나는 여전히 사랑은 나와 한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려놓는 것까지 사랑이라면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하나. 내가 수위조절을 못해서 그냥 왕창 다 내려놓고 영원히 혼자가 될까 봐 무섭다.


결혼식에서 아빠와 동반 입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빠는 좋다 했다. 버진로드를 걸으며 아빠와 짧은 춤을 추고 싶다고 말했다. 잊지 못할 결혼식을 만들고 싶다고. 아빠는 싫다 했다. 왜 싫어? 그냥 싫단다. 하나 밖에 없는 순간인데? 하면 좋을 거야! 추억이 될 거라고. 그래도 싫단다. 체통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빠한테 체통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묻는 대신 나는 일주일만 더 생각해 보라고 말했다.


나에게 일주일의 시간이 있다. 나는 그동안 아빠가 그래도 싫다고 했을 때 그 마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한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 것을 강행하는 건 사랑이 아니니까. 아빠의 거절을 받아들여. 받아들이고... 받아들이면... 나는... 아... 이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한단 말이냐.


내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좋아했음 좋겠다. 내가 들떠하는 걸 상대도 들떠했음 좋겠다. 나와 상대 둘 중에 뭐 하나를 꼭 선택할 필요없는 상황만 펼쳐졌음 좋겠다. 나는 사랑이 너무나 어렵다. 아빠 나도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까. 그렇게 어려운 걸 내가 해내게 될까. 언젠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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