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적인 공간을 아무리 보강해도 당신의 세계는 점점 더 가파르게 무너져 내렸다. 하수구 장치나 방음 매트보다 더 무서운 것은, 당신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오는 '언어'의 붕괴였다.
언어란 본디 마음과 마음을 잇는 가장 따뜻한 다리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당신이 내뱉는 말들은 다리가 아니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되어갔다. 당신의 문장에는 여전히 주어와 목적어가 있었고, 사용하는 단어는 분명 내가 아는 한국어였다. 하지만 그 단어들이 조합되어 만들어내는 논리는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이 전선 속으로 들어왔어. 내 머릿속에 전선을 꽂고 자꾸 자기들 말을 주입해. 당신은 왜 이걸 몰라? 당신도 저 사람들이랑 한패지?"
어느 날 저녁, 식탁에 마주 앉은 당신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나는 당황하며 당신을 달래려 애썼다.
"여보, 전선이 어떻게 머릿속으로 들어와. 당신 요즘 너무 피곤해서 그래. 내일은 병원에 가보자, 응?"
하지만 나의 '상식적인' 대답은 당신에게 도리어 화가 되어 돌아왔다. 당신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쏘아보았다. 그 눈빛에는 예전의 다정함 대신, 적을 마주한 병사의 살기가 서려 있었다. 당신의 세계에서 전선은 이미 실재하는 위협이었고, 그것을 부정하는 나는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 방관자이거나, 혹은 당신을 해치려는 적들의 동조자였다.
당신은 이제 거실에 켜진 텔레비전 속 아나운서와 싸우기 시작했다. 뉴스 기사가 자신을 겨냥한 비밀 암호라고 믿었고, 길거리 전광판의 문구들이 당신을 감시하는 지령이라고 주장했다.
"저 여자 눈빛 봐. 방금 나 비웃었어. 내가 무슨 옷 입었는지 다 보고 기록하고 있어!"
길을 가다 마주친 평범한 행인을 가리키며 당신은 소리를 질렀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로 나를 바라보던 그 맑던 시선은 이제 타인을 향한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있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당신의 그 화살이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까지 향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옹알이를 하거나 장난감을 떨어뜨리면, 당신은 그것이 누군가에게 보내는 신호라며 아이를 붙잡고 다그쳤다.
당신은 누구와 싸우고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적들과,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과, 당신만의 행성에서 만들어낸 그 기괴한 논리들과 싸우느라 당신은 이미 탈진 상태였다.
예식장에서 수줍게 인사하던 그 맑은 눈의 아이, 내 나이 차이라는 벽을 단호한 문장 한 줄로 무너뜨렸던 그 영민한 여자는 어디로 간 것일까. 당신이 내뱉는 파편화된 말들은 이제 우리 가족이 공유하던 추억과 일상을 하나씩 난도질하고 있었다.
나는 무너지는 당신의 문장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아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당신은 더 깊은 혼란 속으로 숨어버렸다. 당신은 이제 나를 믿지 않았고, 세상 모두가 우리를 해치려 한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확신이 유모차 아래에 차가운 금속을 숨기게 할 만큼 당신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아직 알아채지 못했다. 우리가 알던 '말 통하는 관계'는 그렇게 조금씩, 하지만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