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까지 비겁했다. 당신의 입술을 타고 나오는 기괴한 말들과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을 마주하면서도, 나는 그것이 지독한 '산후 우울증'의 일종일 것이라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세뇌했다. 조현병이라는 그 무시무시한 단어를 우리 집 거실에 들여놓기에는 내가 가진 용기가 너무나 빈약했기 때문이다.
"당신 너무 지쳐서 그래. 처가에 가서 장모님 도움 좀 받으면서 푹 쉬다 와. 그게 당신한테도, 아이한테도 좋을 거야."
그것이 당신을 위한 최선의 배려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익숙한 친정집의 공기를 마시고 엄마의 손길이 닿으면, 당신이 다시 예전처럼 맑게 웃으며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당신의 우주는 이미 자전축이 완전히 꺾여 있었다.
처가에서도 당신의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환경이 당신의 불안을 더욱 날카롭게 자극했는지, 장모님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속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다급해졌다. 결국 처가 근처의 병원을 찾았을 때, 의사는 당신과 몇 마디 나누지도 않은 채 심각한 표정으로 소견서를 써주었다.
"여기서 다룰 수준이 아닙니다. 지금 당장 대학병원으로 가보셔야 합니다."
그 길로 달려간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는 차갑고 거대했다.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은 당신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더니, 내게 '입원'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환자 본인과 가족의 안전을 위해 즉각적인 치료와 격리가 필요하다는 권고였다.
입원. 그 단어는 내게 '격리'이자 '수용'으로 들렸다. 우리가 쌓아온 그 포근한 둥지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그곳 병원조차 누군가의 음모가 도사리는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당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무거운 철문 안으로 당신을 보내는 것뿐이었다.
당신을 폐쇄 병동으로 들여보내던 날, 나는 차마 당신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당신은 나를 원망 섞인 눈으로 바라보며 "당신까지 나를 버리는 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금방 데리러 올게"라는 나의 약속은 이미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복도를 떠돌았다.
병동의 육중한 철문이 육중한 금속음을 내며 닫히고, 혼자 남겨진 복도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우울증이라는 가벼운 이름표 뒤로 숨으려 했던 나의 안일함이, 결국 당신을 이 차가운 병실에 홀로 가두게 만들었다는 자책감이 가슴을 후벼팠다.
우리 가족의 시계는 그날 그 병원 복도에서 멈춰버렸다. 아이는 엄마를 찾으며 울고, 나는 아내를 잃어버린 빈집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해 겨울. 우리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 철문이 다시 열리기까지 얼마나 긴 약의 미로를 헤매야 할지, 그리고 그 미로 끝에서 우리가 마주할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낯설고 시릴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