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부서진 약속의 대가, 다시 닫힌 철문

by 자신을사랑하기

15화: 부서진 약속의 대가, 다시 닫힌 철문


"믿어달라"던 당신의 호소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왔다. 약을 끊은 지 불과 열흘 만에, 당신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던 그 위태로운 자신감은 망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제 당신의 눈에 비친 딸아이는 사랑하는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고 아빠에게 고발하는 '작은 밀고자'에 불과했다.


결정적인 사건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저녁 식사 시간에 일어났다.


그날따라 집안은 기이할 정도로 조용했다. 당신은 식탁 앞에 앉아 밥알을 세듯 깨작거리고 있었고,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느라 숟가락질조차 서툴게 하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손을 삐끗하며 숟가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챙그랑, 하고 정적을 깨는 날카로운 금속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순간, 당신은 마치 발작하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신호 보낸 거지? 아랫집 사람들이랑 짜고 지금 내 위치 알려준 거잖아!"


당신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고,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린 아이의 가녀린 어깨를 꽉 쥐고 흔들었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비명 소리에도 당신의 귀에는 오직 환청의 속삭임만이 들리는 듯했다. 내가 달려들어 당신을 떼어놓으려 하자, 당신은 나를 향해서도 증오 섞인 절규를 퍼부었다.


"당신도 한패야! 다들 나를 미친 사람으로 몰아서 죽이려고 작정했어!"


그 순간, 나는 차갑게 깨달았다. 내가 당신을 믿어주었던 그 선의가, 사실은 우리 아이를 가장 위험한 지옥으로 밀어 넣는 방관이었다는 것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아프다는 이유로 당신을 이 집에 계속 두는 것은 이제 '인내'가 아니라 '방치'였다. 아이의 눈에 서린, 평생 씻기지 않을 것 같은 그 원초적인 공포를 본 순간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병원 연락처를 눌렀다.


다시 찾은 병원 복도는 처음보다 더 춥고 길게 느껴졌다. 당신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나를 배신자라 부르며, 다시는 나를 보지 않겠다고 저주를 퍼부었다. 강제로 병실로 끌려 들어가는 당신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복도 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묻었다. 폐쇄 병동의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그 뒤로 당신의 비명이 멀어져 갈 때, 내 마음의 문도 함께 닫히는 기분이었다.


부서진 약속의 대가는 참혹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당신이 뜯어놓은 거실의 벽지 자국과, 식탁 밑에 덩그러니 놓인 아이의 작은 숟가락을 보며 소리 없이 오열했다. 아이는 거실 구석에서 숨죽여 떨고 있었고, 나는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조차 건넬 염치가 없었다.


당신을 믿었던 나의 욕심이 우리 가족의 평범함을 영영 앗아갔다는 사실이, 차가운 병원 문보다 더 단단하게 내 심장을 가로막고 있었다. 우리의 은하수는 그렇게 다시 한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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