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아내의 빈자리, 정적만이 가득한 집

by 자신을사랑하기

16화: 아내의 빈자리, 정적만이 가득한 집


당신을 다시 폐쇄 병동의 철문 너머로 들여보내고 돌아온 집은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거실을 가득 채웠던 당신의 비명과 의심 섞인 중얼거림, 그리고 그 기세에 눌린 아이의 울음소리가 거짓말처럼 증발해버렸다.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정적'이 찾아왔건만, 이 정적은 평화라기보다 모든 생명력이 빠져나간 뒤의 서늘한 잔해에 가까웠다.


신발장에 덩그러니 놓인 당신의 외출용 구두, 식탁 위에 반쯤 마시다 만 물컵, 그리고 당신이 도청기를 찾겠다며 손톱으로 긁어놓은 안방의 벽지 자국들. 집안 곳곳에 남겨진 당신의 흔적들은 이제 날카로운 파편이 되어 내 가슴을 찔러왔다. 당신이 없는 집은 단순히 한 사람이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지탱하던 중력 자체가 소멸한 무중력 상태와 같았다.


가장 마음 아픈 것은 딸아이의 변화였다.


엄마가 떠난 뒤, 아이는 울지도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저 내 옆에 꼭 붙어서 내가 움직이는 대로 그림자처럼 따라다닐 뿐이었다. 평소라면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만화 영화를 틀어달라고 했을 아이가, 이제는 그저 멍하니 거실 한복판에 앉아 당신이 뜯어놓은 벽지 틈을 바라보았다. 아이는 너무 일찍 '부재'의 의미를, 그리고 그 부재가 주는 기묘한 안도감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아빠, 엄마 이제 안 와?"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가 내 목덜미를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슬픔보다 옅은 안도감이 섞여 있는 것 같아 나는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당신이 무서워 멀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던 아이의 원망이 현실이 된 오늘, 아이는 비로소 깊은 잠에 들었지만 나는 아이의 고른 숨소리조차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빈자리는 정적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해야 할 무거운 책임감과 지독한 고독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퇴근 후 나를 반겨주던 당신의 웃음소리도, 저녁 식사 시간의 사소한 대화도 이제는 전설 속의 이야기처럼 아득해졌다. 나는 텅 빈 거실에 홀로 앉아, 우리가 어쩌다 이토록 시린 고립의 섬에 갇히게 되었는지 묻고 또 물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다른 집들의 불빛은 여전히 따스해 보였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된장찌개를 끓이며 평범한 저녁을 보내고 있겠지. 그 평범함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욕심이라던 나의 깨달음은 이제 확신이 되어 나를 짓눌렀다.


아내의 빈자리가 거대한 블랙홀이 되어 우리 부녀를 삼키고 있는 밤, 나는 비로소 우리가 완전히 혼자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나는 이 무중력의 공간에서 아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가 우리 집의 유일한 중력이 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다정한 남편의 가면 뒤에 숨겨진, 가장 고독한 파수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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