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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Mar 18. 2020

넷플릭스 추천, 나 자신 안에
작은 주방이 있어

넷플릭스 다큐 추천 -Chef's Table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 편>


"나, 오늘부터 이미 한 요리는 절대 안 할 거야. 알겠지? 한 것 또 하고 한 것 또 하고. 내가 요리하는 기곈가?"

뭔, 바람이 불어 새로운 요리만 하겠다고 이루지도 못할 공약을 내거는지…. 

남편과 딸내미는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별 신경도 안 쓴다. 


"무슨 요리를 새롭게 해 볼까? 냉장고에 뭐가 있나?"

재료를 살피고, 머리를 뒤적이고, 친하지도 않는 창의성도 불러와 앉혀놓고 본다. 


한 시간 후,  식구들을 식탁에 불러 모은다. 

"밥 먹자. "

무슨 새로운 요리가 올라왔나 딸내미와 남편은 호기심에 식탁을 살핀다. 콩나물국, 돼지고기볶음, 달걀말이.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NEW 요리는 없다. 난 내 공약에 대해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고, 그들도 묻지 않는다.

 

'우리 집 밥상은 셰프의 테이블(Chef's table) 아니고,  Mother's table, 혹은 Wife's table이다. 그러니 그냥 조용히 밥 먹자!'

셰프의 테이블에는 이런 요리가 올라온다



넷플릭스에서 셰프의 테이블 <프랑스 편> 봤다. 네 명의 프랑스 셰프 얘기다. 요리 다큐에서 선보이는 영상미는 기본이고, 표현이 아름답다. 한마디도 알아듣는 못하는 프랑스 말속에 한글 자막이 아름답게 뜬다.


오븐의 휘파람 소리, 불의 노랫소리, 손을 대는 순간 펼쳐지는 마법, 영혼의 아름다움….


이 멋진 다큐는 '요리'하는 '셰프' 얘기가 아니다. 인생 얘기다. 1,2,3편의 얘기가 특히 좋다. 다큐를 보고 내 인생도 그랬음면 좋겠다 싶은 네 가지를 추려본다. 


1. 재밌어야 한다.

내가 식당을 한다면 잘 팔릴 것 같은 대표 음식을 정하겠지. 물론 새로운 요리를 선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에 남은 시간 쪼개어 새로운 시도를 조금은 하겠지만, 주구장창 똑같은 재료와 과정을 거친 똑같은 음식을 천 번쯤 만들고 나가떨어지지 않았을까? 왜냐고? 지루하잖아. 


다큐 속의 셰프들은 지루하지 않다. 그들에겐 정해진 조리법이 없고 기록하지도 않는다. 즉흥적이다. 메뉴가 매일 바뀌고 본능에 따라 일과 중에 바뀌기도 한다. 


"올해 만든 요리를 내년에 하고 싶지 않다. 복잡하고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얼마나 재밌는데요. "

-1화 알랭 파사르

'얼마나 재밌는데요.'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을 봐야 한다. 난 그가 진심으로 부럽다. 

1화 알랭 파사르 

2.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재밌다는 건 경계가 없는 실험을 한다는 거다. 그들도 조리법을 찾지 못할까, 손님들에게 요리를 내놓지 못할까 겁 내면서도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용기 내어 누구도 시도해본 적 없는 요리를 만든다. 닭과 오리를 반반씩 붙여 꿰매고, 사과를 종이장처럼 얇게 깎아 파이를 만든다. 그래서 재밌는 거다. 


3. 사랑에 빠진다.

매일 자신 앞에 놓인 음식 재료를 보고 뭘 만들지 고민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자의 표정이다. 


"제 유일한 욕심은 이 일을 매일 조금 더 사랑하는 겁니다. 다른 일이나 꿈도 필요 없이 그냥 이것만 잘하고 싶어요." -1화 알랭 파사르

2화 알렉상드르 쿠용

"1년 내내 가게를 열었어요. 항상요. 매일 문을 열고 불을 켰어요. 우리 존재를 알리려고요. 우리 일을 스스로 존중하기 위한 방안이었어요."-2화 알렉상드르 쿠용


피서철에만 관광객이 오는 섬에서 6년을 손님 없이 버틴다는 건, '사랑에 빠졌다.'라는 말 이외에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4. 내 인생이다. 

누군가의 평가에 목매지 않는다. 미슐랭 스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길을 간다. 고기를 다루는 게 고통스러워 미슐랭 별을 받은 고기 요리를 중단하고 채식 요리로 전환한다. 미슐랭 담당자를 찾아가, 나는 마음을 정했으니 당신도 마음을 정하라 말하는 용기를 낸다. 아버지가 받은 미슐랭 스타의 요리를 포기하고 자신만의 요리를 찾아가기도 한다. 자기 인생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귀중한 사람이죠."

-3화 아들린 그라타르에 대한 어느 음식평론가의 말


내 음식을 먹고 누군가의 눈물을 훔치게 해도 좋겠지만 결국 내 인생이다. 나의 소중한 시간을 쓰는 거다. 재밌고 도전적이며 사랑에 빠질 만큼, 내가 즐거운 일을 해야 한다. 




3화 아들린 그라타르

"나 자신 안에 작은 주방이 있어서 거기서부터 우리의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

-3화 아들린 그라타르


새로운 요리를 내놓겠다는 시도는 한 번에 쪼그라든 걸 보니, 나 자신 안에 작은 주방은 없는 게 분명하다. 작은 주방은 없어도, 작은 서재는 있지 않을까? 지금 내가 하얀 바탕에 까만 잉크로 글자를 만들고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걸 보니 ….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사는 귀중한 사람이고자 한다면, 자신 안에 작은 주방이든 서재든 뜰이든 화장실이든 가져보자.


이 글에는 스포가 없다. 스포가 불가능한 영상이다. 요리에 대한 즐거움과 열정을 드러내는 그들의 표정을, 셰프의 테이블에 놓인 그 요리를 내가 글로 썼다고? NONONO!!! 나 자신 안에 책 몇 권 꽂힌 서재가 아니라, 도서관이 통째로 들어앉아있다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넷플릭스 연결되어있다면, 챙겨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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