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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공여사 Nov 04. 2019

[불안의 진짜 이유] 이쁘게
똑 부러졌네요

나의 불안에도 끝은 있다

난 8년 동안 영어학원 원장이자 대표강사였다. 학원 강사의 1년은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눠지는 게 아니고, 네 번의 중간, 기말고사 일정으로 나뉜다. 중고등 여섯 학년을 학교마다 다른 시험을 준비하고, 수업하고, 예상문제를 만들며 보낸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시험을 준비시켜 보내도 내 마음은 항상 같다. 수영도 못하는 애를 바다에 혼자 나가 힘차게 수영하고 돌아오라고 등 떠미는 심정이 된다. 


오늘은 A여고 2학년 영어시험을 보는 날이다. 몇 년을 줄기차게 다니는 아이부터 1주일 전에 시험 성적 올려보겠다고 몰려든 아이들까지 7명이다.


아침부터 불안하다. 최선을 다했다. 아무리 뒤져도 없는 부교재 문제를, 며칠을 끙끙대며 한 문제씩 기출문제 분석해가며 만들었다. 산고의 고통 끝에 낳은 소중한 문제들을 나눠주며, 시험 전에 꼭 풀어보라 신신당부를 했다.  


그런데도 불안하다. 3교시라 했던가? 그럼 시험이 끝나는 시간이…. 적어도 점심시간이면 누군가 한 놈에게는 문자가 와야 한다.

“선생님, 저 아깝게 한 문제 틀린 것 같아요….”

“선생님, 저 망했어요. 죄송해요….”와 같은.

힘들게 공부하는 아이들 학원 책상


그런데, 아무 연락이 없다. 시험이 어려웠나? 잘 못 봤나? 머릿속에는 별 생각이 다 드는데도, 음식물 쓰레기도 갖다 버리고 빨래도 넌다. 그 사이 핸드폰을 들었다 놨다 화면을 열었다 닫았다 오지도 않은 문자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문자 대신 불안이란 손님이 오셨다.


불안하다.”

뭐가 불안한데?

불안하다애들 시험 잘 못 봤을까 봐.”

시험이야 잘 볼 수도 못 볼 수도 있지. 세 번째 문장, 불안의 진짜 이유를 말해봐.

불안하다애들 시험 잘 못 봤을까 봐. 그러다 학원 망할까 봐.”

결국 또 내 얘기다. 시험 못 본 애들 걱정이 아니고, 내 학원 망하고 굶어 죽을까 불안하다. 


‘시험 잘 봤니?’라고 내가 먼저 문자 보낼 용기도 없다. 그러다 시험 망쳤다는 문자라도 받으면, 다음 수업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으로 주말을 망칠까 두렵다. 불안 터트리기를 일단 유예하고 본다불안에 대처하는 나는 이렇게 소심하고 겁이 많다


아이들의 시험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백 가지도 넘는데,  난 잘 나가는 영어강사니까, ‘내가 가르치면 성적은 반드시 오른다.’는 오만함에 내가 빠져 허우적댄다.


A여고 시험이 끝나고 학원에서 시작하는 첫 수업. 드디어 심판의 날이다. 몇 명이나 얼굴을 드러낼지 걱정이다. 앞 타임 수업을 마치고, 1층 맘스터치에서 버거를 하나 픽업해서 대강 씹어 삼킨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고 드디어 판도라의 상자 뚜껑을 열 듯 강의실 문을 연다. 


25명이 수업하는 그 넓은 강의실에 달랑 한 명이 앉아있다. 시험 막판에 친구 따라 강남 온 친구들이 몇 있었지만 이렇게 까지 처참한 결과는 학원 오픈하고 처음이다. 대표강사 자존심이 확 구겨진다. 그래도 나의 지난 며칠간의 불안을 대면하니 차라리 홀가분하다. 어쨌든 나의 불안에는 끝이 있다.

     

숨을 크게 한 번 몰아쉬고 칠판 앞에 선다.

“저 밖에 안 온 거예요?”

나를 보면 어색하게 웃는 학생에게 나는 말을 얼버무린다.

“좀 늦는 거 아닐까?”

한 명의 수강생을 앞에 두고 두 시간 수업을 했다. 그 사이사이 마음에 허전한 바람이 여러 번 지나갔다.


진짜 차가운 공기가 필요했다. 폐를 깊숙이 훑고 지나가는 차가움이라도 있다면 이 심란한 마음이 덜 할 것 같았다. 다음 날 까뭉이를 데리고 산에 오른다. 엊그제 내린 눈에 길은 빙판인데, 동네 산책으로는 답답한 마음이 뚫릴 것 같지 않았다. 이런 영하의 날씨에 산에 오르는 미친 사람은 나, 미친 개는 까뭉이 밖에 없다. 


산 중턱까지 오르니 숨이 차다. 정상은 아니어도 산에 올랐으니 뭐라도 외치고 싶다. 산에 올라오면서 내 마음에 차오른 단어가 입에서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괜~찮~다~.” 

내 목소리가 차가운 산 공기를 뚫고 멀어져 간다. 


“나는 괜~~찮~~다~~.”

“한 놈도 안 와도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처음에는 목소리를 긁어서 내더니, 이제는 뱃속 깊은 곳의 호흡까지 다 모아 크게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는 겨울 산속에서 ‘괜찮다.’고 나를 위로하는 말을 나에게 건네고 있으려니 눈물이 났다. 난 안 괜찮은데….


누군가 나에게 힘들 때, ‘Everything will be ok.’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같은 위로를 건네면 난 싫었다. 지금 당장 힘들고 괴로운데, 괜찮아지고 지나가고 좋아질 거라니…. 차라리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을 고민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나에게 ‘괜찮다.’라고 여러 번 외치고 있었다.


까뭉이는 내가 내질러대는 큰소리에 처음엔 몸을 움찔하더니, 어느새 코를 나뭇잎 더미에 묻고 킁킁댄다. 

부스럭 잎을 헤치는 발자국 소리에 눈물을 장갑으로 얼른 훔친다. 벌써 주위에 어스름하게 어둠이 깃들 준비를 하고 있다. 내 앞에 뒤늦게 비탈길을 오르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보였다. 목줄을 풀어놓았던 까뭉이를 아주머니가 무서워할까 봐 목줄을 매야지 마음이 급했다. 

까~~~~뭉!

 “까~~~~뭉”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다, 팔다리를 허공에 휘저으며 얼음바닥에 미끄러졌다. 온몸이 충격을 받아 엉덩이와 팔다리가 분리된 것 같았다. 어둑해지는 산속에서 얼음바닥을 등에 대고 누워있으려니 이게 불안의 끝인 듯 마음이 오히려 편안했다.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아주머니가 대자로 뻗어 누워있는 나를 내려다보고 걱정스레 물었다.

“괜찮아요?”


일어나려고 몸을 꼼지락거리는데 왼쪽 손목에 통증이 왔다. 손목을 부여잡고 한 손으로 까뭉이 줄을 잡고 산을 내려왔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한발 한발 힘을 주면서. 

     

난 안 괜찮았다.’

엑스레이 사진을 보던 의사가 내 왼쪽 손목 라인을 펜으로 따라가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이쁘게 똑 부러져서 수술은 안 해도 되겠어요. 깁스하러 가시면 됩니다.”

지금 내 왼쪽 손목뼈가 동강 절단 나서 덜렁거리는데 참, 긍정적으로 말씀하신다. 


반깁스 1주, 통깁스 4주 그 이후에도 완전히 낫질 않아 3개월 동안 왼팔을 긴 휴가 보내고, 오른팔이 열심히 대타를 뛰었다.  난 괜찮다.’고 산속에 가서 소리 질러도손목 동강 부러져보면 안 괜찮아진다괜찮다 위로가 필요할 땐, 겨울 산보다 안전한 이불속에서 외치는 게 더 괜찮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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