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자가 뒤집힐 것처럼 역한 피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사건이 마무리된 지 한참 뒤에 집에 들어온 딸내미도 코를 싸쥐며 눈살을 찌푸린다. 공기 속에 머물며 물러가지 않던 피비린내는 공기청정기까지 돌리고 나서야 조금 옅어진다.
우리 집에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믹스견 까뭉이가 있다. 4년 전에 가정집에서 책임비 5만 원에 분양을 받았는데, 두 달 넘은 쪼그만 강아지가 내 품에서 어찌나 벌벌 떠는지, 마음을 확 바꿀 뻔했다.
“딸냄~ 우리 이 시커먼 놈 말고, 저 하얀 놈으로 할까? 푸짐하고 성격도 좋게 생겼는데….”
딸내미가 내 말에 눈을 심하게 흘기고 까뭉이를 안고 나와,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다.
가정집에서 믹스견을 분양받아 키우겠다고 처음부터 마음은 먹었다. 그래도 까뭉이를 보고 무슨 종이냐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꼭 무슨 멋진 종의 이름을 대야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 그런데 예방주사를 맞히러 간 동물병원의 간호사가 말했다.
“이 강아지 보더콜리 같은데…. 보더콜리 맞죠?”
“아…. 네….”
요렇게 생긴 게 보더콜리다~ 우리 까뭉이 아니다
그날부터 우리 집 똥개는 ‘보더콜리 믹스견’으로 견종을 바꿨다. 세계에서 가장 머리 좋은 개이고, 명사와 동사의 차이까지 구분할 줄 안다는 보더콜리를 우리는 우연히 입양한 거다. 강아지를 그렇게 많이 본 동물병원 간호사가 한 말이니 맞을 거다 믿기로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까뭉이에게도 용맹하게 스코틀랜드 목초지를 가로지르며 양 떼를 모는 보더콜리 모습이 조금 있기는 하다. 사이즈는 아담하지만, 가슴에 멋진 흰털과 긴 꼬리, 우뚝 솟은 귀. 그런데 보더콜리라고 우기기엔 치명적인 차이가 있다. 까뭉이는 겁보쫄보다.지나가는 바람에도 떨어지는 낙엽에도 흠칫 놀란다. 인간으로 치면 ‘범불안 장애’가 분명하다.
“종이 뭐예요?” 누가 물어보면, 그래도 난 당당하게 ‘보더콜리 믹스견’이라 말한다. 한 번은 진짜 멋진 보더콜리를 산책하다 마주쳤는데, 하필 그놈이 까뭉이에게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주인에게 말할 기회를 주고 말았다. 우리 까뭉이를 보고 묻는다.
“종이 뭐예요?”
남의 강아지 종은 알아서 국을 끓여 먹으려는지 자꾸 사람들은 쓸데없는 질문을 한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갈기를 휘날리고 서있는 우람한 크기의 순종 보더콜리 앞에서, 남편은 보더콜리는 빼고 “믹스….”라 말하려는 걸, 내가 가로채 혈통을 당당하게 밝힌다.
“보더콜리 믹스예요.”
“네? 아….”
내 대답에 당황한 주인이 자기 개 목줄을 억지로 당겨 자리를 뜬다. 키우는 강아지가 주인의 지위와 명예를 결정하는 이상한 순간이다. 태어나서 사랑받고 크면 되지, 더 이상 뭐가 필요해?
요놈이 우리 까뭉이다
까뭉이는 외동인 딸내미에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싶었던 나의 숨은 의도에서 입양되었지만, 지금은 숨은 의도같은 건 없다. 그냥 사랑받는 우리 집 식구다.
끝없이 세고 앉아있다. 내가 봐도 지인보다 지견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도 되고 안심도 된다.
까뭉이는 남편이 소파에 앉으면 어디에 있더라도 바람같이 나타나, 옆에 착 달라붙어 남편 무릎을 베고 기대어 이런 눈빛을 남편에게 쏜다.
“자, 한 번 쓰다듬어봐.”
까뭉이에게 집에서 가장 어린 딸내미는 경쟁 상대다. 딸내미가 들어와 “오구구구. 내 새끼. 이쁜 내 새끼.” 하고 물고 빨려고 하면, 어느새 빠져나와 하루 종일 한 번도 안 가지고 놀던 빽빽이 오리 장난감을 입에 물고 어쩔 줄 몰라한다.
까뭉이의 최대 장점은 ‘염치를 아는 놈’이라는 거다. 사람도 모르는 염치를 개가 알고 행하기는 정말 힘든데, 까뭉이는 그렇게 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리하다는 보더콜리 품종이 섞기긴 했는지, 뭘 요구할 때도 품위를 지킨다. 원하는 게 있으면 앉아서 빤히 우리를 쳐다본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도 인간처럼 실망하거나 분노하지도 않고 다음 액션을 취한다. 그 자리에 그냥 드러누워 퍼질러 한 숨 더 잔다.
유일하게 사소한 단점은 ‘먹보’라는 거다. 염치없이 식탁 위의 음식을 탐하지는 않지만, 쓰레기 쳐 먹다 위장 출혈로 작년엔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고3이던 딸내미가 야자를 빼고 택시 타고 달려와, 링거 꽂은 까뭉이를 보고 철창 부여잡고 울었다.
너무 행복한데…. 까뭉이와 지내는 이 시간들이 너무 행복한데…. 그래서 가끔 ‘그분이 오신다.’
‘불안하다.’
왜?
‘불안하다. 지금 까뭉이와 너무 행복해서.’
행복한데 왜? 세 번째 문장, 불안의 진짜 이유를 말해봐.
‘불안하다. 지금 까뭉이와 너무 행복해서. 이 시간에 끝이 있을까 봐.’
사랑하는 존재를 가지게 되면, 겪게 되는 상실에 대한 불안, 두려움이다. 인생이 좋아하는 것을 쫓아다니고, 싫어하는 것으로부터 도망 다니는 끊임없는 전쟁인 걸 안다. 원하는 것을 결코 얻지 못할 수도, 막상 얻어 보니 진정 원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어느 순간에 내가 이미 가진 소중한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할 때도 여전히 불안하다.
까뭉이 똥이 안 잡힌다. 뭘 먹여야 하나 끙끙대며 공부를 했다. 유튜브 보고 외국 사이트 뒤져가며 읽어보고 나름 답을 찾은 게 ‘생식‘이다. 우리 식구 뭐 먹고살까 신경 쓰는 것도 버거운데, 개 먹일 생식을 공부까지 해야 하다니….
그래도 자기가 영양 부족하다고 산과 들을 쏘다니며, 꿩이나 멧돼지를 잡아먹을 수는 없으니, 쇼핑 카트엔 닭과 오리, 소와 돼지, 칠면조, 캥거루 온갖 고기가 다 등장하고, 콩팥, 비장, 간, 염통, 허파, 울대까지 내부 장기 이름이 가득이다.
한 달에 한번 60회 분량의 생식을 한꺼번에 준비한다. 앞치마를 정갈하게 차려입고, 피나 내장이 튈 수 있는 주위의 주방기기들을 모두 종이로 덮고, 비닐장갑을 양손에 끼고 칼을 간다.
살코기는 그래도 괜찮은데, 간이나 콩팥, 비장을 손으로 잡고 칼로 썰면…. 뭉클거리는 느낌과 속 뒤집어지는 냄새에 미친다. 온 집안에 선풍기, 환풍기, 공기청정기를 다 돌려도 공기에 떠도는 냄새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60개를 한꺼번에 만든다
60개의 용기에 살코기와 뼈와 내장과 야채 비율을 생각하며 하나하나 썰고 자르고 담는다. 까뭉이는 나를 따라다니며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고기 냄새에 흥분한다. 사랑이 아니면 못한다. 내 식구라 생각 안 하면 못한다.
까뭉이는 생식을 아주 잘 먹는다. 그런데 지글지글 냄새 풍기는 삼겹살도 나 몰래 식탁의자 밑에서 얻어먹고 다니고, 산책만 다녀오면 사료를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다.
사료는 이제 그만 먹여야 하지 않을까 딸내미에게 물으니, 눈물까지 글썽이며 나에게 막 대든다.
“엄마는 배고프면 좋겠어? 배고프면 먹을 사료라도 항상 밥그릇에 가득 있어야지. 사료 안 사주면 내 용돈으로라도 사줄 거야.”
까뭉이에 대한 사랑이 너무 과해, 까뭉이는 생식도 화식도 사료도 다 먹는 잡식 강아지가 되고 만다. 요즘 며칠 갈비뼈 안 잡힌다고 식구들 번갈아가며 산책을 부지런히 시킨다.
벌써 까뭉이 생식 밥그릇이 냉동고에서 바닥을 보인다. 또 집에 피비린내가 일 날이 다가온다. 정말 사랑이 아니라면 못할 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