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공여사 Nov 07. 2019

[불안 응급처치1] 불안이
쳐들어오면, 이걸로 막아!

내 불안은 목을 타고 온다

불안의 진짜 이유를 설명하는 앞 페이지를 모두 건너뛰고 여기를 읽고 있다면, 십중팔구 당신은 지금 혹은 요즘 불안하다. 불안을 쫓아낼 응급처치 방법을 알고 싶은 게다.  요리조리 설명 붙이고 글자 수 많아지면, 읽는 당신 더 불안해서 내 책 찢어버릴지도 모르니, 그냥 내 답부터 말해야겠다. 내 글의 목적은 불안을 덜어주는 것이지, 불안에 불안을 더하는 것은 아니니까. 


한밤중에 아이 열이 40도를 넘어가는데, 항온 동물의 체온부터 설명하고 있으면 욕먹는다. 해열제 먼저 먹이고, 응급실로 업고 뛰어야 한다. 불안이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오면, 이 방법을 일단 먼저 써본다. 


꼬추를 물어라.”


딸내미가 서너 살 때쯤, 내가 도마에 고추를 썰고 있는데 이렇게 물었다. 

“엄마! 뭐 해?” 

“꼬추 썬다.”

“형준이 꼬추?”

“?!?!?!”


딸내미 남자 친구 이름이 거기서 튀어나오니 엄마인 나도 조금 당황했다. 그래도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칼질을 계속하며 말했다. 

“아니, 그 꼬추 말고.”

     

 맞다그 꼬추 말고청양고추다


삶의 대한 불안, 긴장이 심한 사람은 자기 몸의 감각을 잘 못 느낀다. 긴장해야 할 대상에 신경 쓰느라, 내 몸의 변화를 느끼기는커녕 숨도 제대로 안 쉬고 있다. 숨은 쉬는데도 숨을 쉬고 있는 사실을 알아차리진 못한다. 그런데 우리 몸은 불안이라는 감정보다 먼저 반응한다. 감정보다 감각이 먼저라는 얘기다. 


몇 년 전, 자주 목에 뭐가 걸려 넘어가지 않는 느낌 때문에 내과, 이비인후과를 찾아다녔다. 

“식도의 괄약근이 약해져서 그래요.”

“나이 먹으면 식도 운동이 잘 안돼서 그래요.”

의사들은 뻔한 얘기를 전문적 진단이라도 내리듯 말했다. 


식도가 운동이 필요하다니? 덤벨이나 바벨로 운동을 시킬 수도 없고, 침을 자주 삼키면 되려나? 손으로 식도 마사지라도 해줘야 하나? 반복된 증상에 한동안 진지한 고민을 했다.


그런데 목에 걸려 넘어가지 않는 그 느낌은 나에게 ‘신경 쓰이는 일’이 생길 때마다 계속되었다. 내 불안은 목을 타고 오는 거였다

     

불안하면 심장이 빠르게 뛰고 호흡이 가쁘고, 손이 떨리고 땀이 난다. 소화도 안 되고 근육도 긴장한다. 난 목구멍이 콱 막힌다. 침을 삼키려면 노력이 필요할 만큼 목구멍이 죄어온다. 그러면 이제 불안이라는 손님이 찾아오겠구나 알아차리게 된다.


불안은 내버려 두면 미친 듯이 경우의 수를 확장해 나가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불안을 멈출 강한 외부의 물리적 자극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때 청양고추를 입에 물면 된다

청양고추 부대 진격 준비~~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 3단계가 있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다.

3. 냉장고 문을 닫는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3단계 중 가장 중요하고 실행하기 어려운 단계는 두 번째가 아니고 첫 번째다. 일단 냉장고 문을 열기가 가장 힘들다. 청양고추 물기도 마찬가지다. 마음에 불안이라는 손님이 오면 다음 3단계를 따르면 된다.

1. 냉장고 문을 연다. 

2. 청양고추를 꺼낸다. 

3. 한 입 물고 잘 씹어 삼킨다.


불안한 마음이 들면, 냉장고 문을 열어야 하는 적극적인 행동 단계가 제일 어렵다. 냉장고 문을 힘들게 연 다음, ‘내가 왜 냉장고 문을 열었더라….’하고 문을 하염없이 붙잡고 서있으면 안 된다. 그때는 불안이 문제가 아니고, MRI 자기 공명 영상 장치로 뇌 촬영하러 가야 한다.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렇게 되면 불안은 이제 손님이 아니라나의 에고가 되고자아가 되고급기야 내가 되고 만다.


진짜 매워야 한다. 어설프면 안 한만 못하고, 응급처치 방법이라고 가르쳐 준 나만 사이비 된다. 평소에 이놈저놈 돌아가면서 시도해보고, 첫 입에 눈 찔끔 감기고, 입에서는 압력밥솥 김 뽑아내는 소리 연속 날 정도는 되어야 한다. 고추 재배 농부님에게 감사의 전화라도 보내고 싶을 마음이 들 정도로 매운 놈이어야 한다. 냉장고에 우황청심환 쟁여두듯 항시 채워놓아야 한다.

청양고추 부대 앞으로 진격~~

꺼냈으면, 한 입 크게 물고 잘 씹어 목구멍으로 삼킨다. 이제 책임감을 가지고 내가 저지른 일의 뒷감당을 한다. 

미친 듯이 방방 뛰며 물을 1리터쯤 목구멍에 들이붓고, 밥솥 열고 뜨거운 흰밥도 욱여넣는다. 맵다고 눈물 질질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이방저방 헤맨다. 가급적 이때 욕은 내뱉지 않도록 주의한다. 나중에 주워 담으려면 힘들 뿐 아니라, 내가 뱉은 욕 때문에 자아성찰 들어가면 또 불안해진다.


한바탕 난리를 치르고 나면, 불안은 이런 나를 어이없이 지켜보다, 하늘의 먹구름 흩어지듯 서서히 힘을 잃는다. 청양고추가 입에 불을 지르는데, 진지하게 불안하기는 조금 어렵다.


물파스를 코밑에 바르거나 와사비를 입에 무는 방법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물파스는 싸하기만 하고 금방 날아가 버려 코 밑만 시큰하고, 와사비는 꽤 많은 양을 입에 물고, 코가 찡해지며 매운맛이 퍼질 때까지 인내심도 필요하다.


그래서 난 청양고추가 젤 좋다. 


지금, 불안한 당신, 

꼬추를 입에 물어라.


작가의 이전글 [불안의 진짜 이유] 집 안에   피비린내가 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