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
난 자전거를 못 탄다. 어렸을 때 세 발 자전거 타보고는, 바퀴 수를 줄이지 못하고 나이를 먹고 말았다. 남편과 딸내미와 여행을 가서 자전거 탈 일이 생겨도 나 때문에 모두 못 탄다. 둘만 타라고 등을 떠밀어도 결국 안 타고 만다.
그런 내가 자전거를 배워야지 ‘결심’하고 한 첫 번째 행동은, 자전거를 끌고 나가는 것이… 아니고, ‘아인슈타인과 자전거 타기의 행복’이라는 책을 구입한 것이었다.
그래서 난 아직도 자전거를 못 탄다.
“인생은 자전거와 같다. 균형을 잡으려면 움직여야 한다.”-알버트 아인슈타인
내가 자전거를 못 타는 이유는 간단하다. 균형은 잡고 싶은데, 움직이지 않아서다. 자전거란 놈은 일단 생긴 것부터 믿음이 안 간다. 두 바퀴로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믿음이 없으니, 변화의 파도를 타듯 움직이면서 균형을 계속 잡아줘야 하는 일은 나의 욕망과는 거리가 멀다. ‘어어어 어….’하면서 바닥에 넘어지는 것도 싫고, 다치는 것은 더욱 싫고, 누구와 충돌하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떨린다.
불안은 그런 변화와 위험, 불확실성을 피하고 싶은 사람에게 더 자주 찾아온다. 내가 아무리 이불속에서 ‘오늘은 금요일이야.’를 천 번 외쳐도 오늘은 월요일이고, 이불을 젖히고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기고, 똑같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를 가도, 같은 순간은 우리에겐 없다. 내가 내쉬는 호흡 하나도 같은 호흡이란 없다. 이불 밖에서 벌어지는 변화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내가 가진 자원을 잘 활용하고, 자신의 새로운 자원 생산 능력을 믿어야 한다.
불안이 쳐들어오면, 막아낼 나의 세 번째 응급처치 자원은
'나무를 껴안아.'이다.
일단 집에서 가까운 곳의 나무 하나를 ‘픽(pick)’ 한다. 아무리 좋아도 한 시간 차를 타고 가야 껴안을 수 있는 서울 선릉 숲의 나무여서는 안 된다. 한두 번은 미친 척하고 나무 껴안으러 갈 수도 있겠지만, 장거리 연애는 오래 못 간다.
내 양팔을 둘렀을 때,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야 한다. 포근하게 가슴에 쏙 들어와야 한다. 삐삐 마른 가지를 껴안고 있으면, 더 불안해진다. 껴안고 가끔 얼굴이라도 비비려면 너무 까칠한 놈은 피해야 한다. 잘못하면 벗겨진 나무껍질 얼굴에 붙이고 엘리베이터 타다, 무색해진 아파트 주민 얼굴 돌릴 일 생긴다.
산책길에 자주 껴안는 나의 나무가 있다. 가지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내 가슴에 폭 안긴다. 무릎 나온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입고, 중력을 무시한 머리를 하고, 눈을 꼭 감고 나무를 껴안고 얘기도 나눈다.
그 나무 앞에는 경비실도 있고 놀이터도 있다. 아파트 경비 아저씨는 낙엽을 쓸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다, 나무를 껴안고 있는 나를 가끔 힐끗 쳐다본다.
‘에구…. 저것이 뭐하는 짓이여? 쯧쯧 어쩌다가…. 얼마나 맘 풀 데가 없으면 나무에다 대고….’ 경비 아저씨가 뭔 생각을 하던 신경 끄기 기술을 구사하면 된다.
그래도 놀이터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의 시선은 좀 피하는 게 좋다. 나무를 꼭 껴안고 있는 동네 아주머니는 그들 눈에는 호기심 대상 1호다. 미끄럼틀에서 내리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와, 나를 빤히 쳐다보고 하고 싶은 질문을 모두 내뱉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는 왜 그러고 있어요?”
“어디 아파요?”
“나무가 안아 달래요?”
애들은 좀 피하고 싶다.
“나무 말고, 사람이랑 껴안으면 안 돼요?”
좋은 질문이다. 안 된다! 사람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하더라도, 서로에게 ‘바라는 게’ 항상 있기 때문에 껴안아도 그때 잠깐은 좋을지는 모르지만, 매일은 부담이다. 나무는 나에게 바라는 게 없다.
혹시 '이제 부담스러우니, 그만 좀 껴안으면 안 될까?’라는 바람을 나무가 가질지는 모르지만, 일단 나무는 내 말에 토를 안 단다. 비판, 충고, 조언, 경쟁, 비교도 안 한다. 그냥 들어준다. 매일 와서 뭐라 뭐라 자기에게 쫑알대니 사람 하나 살린다는 심정으로 듣고 있다.
“나무 말고, 아파트 기둥은 안돼요?”
창의적이긴 하지만 안 되는 거 너도 알잖아. 그냥 나무로 해. 나무, 살아있는 나무로~~~~~~.
나무를 두 팔 벌려 껴안기만 해도 불안은 옅어진다. 좋은 것은 하자마자 안다. 나무를 백 번 껴안아야 좋다면, 안 하는 게 낫다. 껴안자마자 좋다.
불안도 올 때마다 다른 놈이 온다. 그러니 한 가지 전략으로 다 틀어막으려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고, 나만의 무기를 개발하고 전략도 수시로 바꿔준다. ‘청양고추’로 막아보고, ‘미키 쓰레빠’로도 막아본다. 이도 저도 안 되면, 3단 콤보로 막으면 된다.
청양고추 입에 씹으면서, 미키 쓰레빠를 신고 숨이 차게 뛴 다음, 헥헥대며 나무를 껴안는다.
불안이 쳐들어오면 이불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도 힘들어, 무덤 밖으로 기어 나온 좀비의 의지가 부러울 지경인데, 뭐? 3단 콤보를 다 하라고? 움직여야 하는 ‘동사’가 세 개나 있는데? 그래도 불안이 내 안방까지 빼앗고, 날 노비 삼아 시중들게 하고, 마음에 안 들면 내 목을 뎅강 쳐버릴 그런 놈에게 날 맡길 순 없다.
자전거는 아인슈타인과 타면 행복할지 모르지만,
불안이 쳐들어오면,
아인슈타인 없어도 혼자라도,
씹고,
뛰고,
껴안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