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미쳤지, 뭐하러 여행을 온다 했을꼬
여행을 결정한 3월에도 불안과 후회는 있었지만, 대체로 마음이 봄날처럼 들뜨고 두근거렸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여행 준비에 돌입하니, 먹구름이 떼거지로 몰려들고, 폭우와 천둥 번개가 치는 날이 점차 많아졌다. 비행기나 기차를 제때에 탈 수는 있을지, 숙소는 제대로 찾아나 갈지, 소매치기나 강도는 만나지 않을지, 해봤자 답도 없는 고민으로 내 기분은 ‘업’과 ‘다운’을 반복했다.
꿈속에서는 자주 길을 잃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낯선 거리에서 두리번거렸다. 여권과 돈도 잃어버리고 주저앉아 울기도 했다. 그런 나를 유체 이탈한 내 영혼이 빤히 위에서 내려다보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게 더 무섭고 싫었다. 성숙한 인간으로, 온전히 어떤 일을 책임지고 해낸 경험이 별로 없던 나의 취약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딸내미는 7월에 35박 유럽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듯하다. 기말고사 준비한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웬수 덩어리 수학과 이번에는 단판 승부를 짓고야 말겠다고 새벽까지 머리를 쥐어뜯고 책상에 앉아있었다. 그래도 여행 준비한다고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엄마를 옆에서 흘끗 쳐다보다가, 배가 산으로 가는 것 같으면 불안해서 이렇게 외쳤다.
“정신 차려. 엄마!”
정신을 차리기는커녕 여행이 코앞에 닥치자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돼라 하는 자포자기에 빠졌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겠지. 우리가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을 횡단하겠다는 것도, 칠레 파타고니아 원시림을 탐험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기껏 남들이 다 가는, 런던, 파리 여행 가는 건데 떨 거 없어. 없던 배짱까지 긁어모아 마음을 다잡는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시 원래 상태로 돌려놓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으니.
드디어 7월 9일, 딸내미와 35박 36일 유럽여행길에 올랐다. 18kg, 20kg 캐리어를 끌고.
오늘의 첫 미션은 지구를 반 바퀴 돌아 런던 숙소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이다. 인천공항까지 2시간 20분,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 12시간, 런던 지하철 타고 그린파크 역에서 갈아타고, 복스홀 역에서 400 발자국.
남편은 인천공항 가는 버스에 캐리어를 실어주며, 딸내미 손을 꼭 붙잡고 애절하게 말한다.
“딸내미. 엄마를 잘 부탁한다.”
농담 섞인 진담에 남편의 불안이 느껴진다. 철없고 겁 많은 마누라와 열세 살 딸내미를 패키지로 묶어 36일을 유럽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비행기 승객에는 딱 두 종류가 있다. 무서운 사람과 즐거운 사람. 전자는 나고 후자는 딸내미다. 무서운 사람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고 비행기가 떨면 같이 떤다. 이제까지 본 모든 비행기 납치와 폭발, 추락 장면을 모아 뇌가 돌리고 돌리며, 여기서 죽게 될까 무섭다. 비행의 두려움을 잊으라고 먹을 것을 자주 준다는데, 난 먹으면서도 떤다. 숟가락 입에 넣으려다 비행기 떨리면, 손가락 던져버리고 울고 싶다.
그런데 딸내미는 비행기만 타면 즐거운 사람이다. 비싼 비행기 티켓이 전혀 아깝지 않다. 뭘 주던 맛있게 싹싹 긁어먹고, 남은 시간 알뜰살뜰 계획 세워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한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가 나에겐 최악이다. 고도가 내려가는 것도 무섭지만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치이익 꽈당 비행기가 부서질 듯 덜덜거리면 죽을 것만 같다. 멋진 런던에 왔다고 내 감정이 나를 봐주진 않는다. 매번 똑같이 무섭다. 사색이 된 엄마 손을 딸내미가 꼬옥 잡아주며, “뭐가 무섭다고 그래?”하며 다독인다. 남편이 나를 딸내미에게 부탁할 만하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후기를 또 쓸데없이 많이 읽었다. 너무 많은 정보가 쓸데없는 불안을 야기한다. 영국에 눌러앉아 살 생각 없으니 걱정 말라는 증거로 바르셀로나 비행기 티켓을 준비하고 입국심사를 받았다.
“며칠 머무나요?”
별로 궁금해하지도 않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정말 궁금하지 않은 질문은 안 물어보고 그냥 보내주면 좋겠다.
공항 자판기에서 구입한 유심칩을 딸내미 핸드폰에 갈아 끼우고, 오이스터 교통카드도 무사히 구입하고, 런던 지하철을 탔다. 오래된 도시 철도답게 무릎이 닿을 정도로 좁고, 기차 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시끄럽다. 그린파크 역에서 무사히 갈아타고, 복스홀 역에 제대로 내렸다. 뭐, 지하철 갈아타는 것쯤이야.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
처음 보는 런던 거리를 감상할 틈도 없이, 거센 바람이 전후 사방에서 휘몰아쳤다. 영국 날씨가 변화롭다는 얘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오자마자 환영 인사치 고는 요란하다. 거리에 늘어선 가로수들은 겨우 뿌리를 붙잡고 서있고, 나무 이파리들은 쏴악 쏴악 서로 비비며 사나운 울음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소낙 구름이 몰려온다. 힘센 바람은 우리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공중에 쥐어뜯어놓고, 우리는 얼굴을 때리는 머리카락을 잡아 뒤로 넘기며, 자꾸 비틀거리며 뒤뚱거리는 캐리어 일으켜 세우느라, 400 걸음이 멀기만 하다.
단독으로 쓴다고 하룻밤에 10파운드를 더 지불한 첫 숙소 한인민박의 방은 좁은 복도 끝에 있었다. 방문을 여니 이층 침대 하나가 방 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이층침대가 놓인 방이 아니라 이층침대가 사는 방이다. 캐리어 한 개도 겨우 펼칠 수 있다. 침대 1층은 높이가 낮아 침대 위에 허리 펴고 앉지도 못한다. 눕기만 된다. 침대의 기능에 충실한 우직한 놈이다.
좁은 화장실에는 양 손만 겨우 들어가는 작은 세면대가 장난감처럼 벽에 박혀있고,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수도꼭지가 달려있다. 샤워는 저녁에만 할 수 있고, 세수도 줄 서서 해야 한다니...... 내가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는 ‘여행’이라는 걸 왔다는 실감이 이제야 난다.
시차 적응 당연히 못했다. 뒤척이다 새벽에 부엌에 들어가 불을 켜니, 부엌과 연결된 주인 방에서 아기 깬다고 주인이 눈치를 준다. 머나먼 타국에서 아장아장 걷는 어린아이 키우며, 민박집 운영하느라 탈진되고 정신없는 것은 알겠는데...... 비싼 런던에서 이 정도 숙소 가격이면 감지덕지해야지, 불편하면 네 집에 있지 뭐 하러 여행은 왔냐? 딱 그 정도의 대우에, 긴 여행 첫발 떼는 나는 몸도 마음도 쪼그라든다.
숙소 보고 실망한 엄마와는 반대로 신분 급상승한 딸내미는 행복하기만 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기말고사 본다고, 교과서에 코 박고 잠도 줄여가며 스트레스 잔뜩 받고 앉아있던 대한민국 중학생에서 해리포터와 셜록홈즈를 만나러 런던에 온 여행자가 되었으니...... 우와! 거기에 꿈에 그리던 이층침대다! 이층에 올라가 좋다고 뒹굴며, 핸드폰 손에 들고 마트에서 사 온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있다.
숙소의 불편함을 공공의 적으로 삼아 위안을 얻고 나도 좀 행복해 볼까 싶어 딸내미에게 말을 건넨다.
“딸냄! 방이 너무 좁지 않니?”
“아니. 난 괜찮은데.”
“침대는 어때?”
“이층침대잖아. 너무 좋지.”
“......”
딸내미는 나를 자주 할 말 없게 만든다. 엄마는, 참! 이렇게 아늑한 방을 좁다 하고, 누워 자는 침대에 앉아있지 못한다 불평하고, 수학여행 온 것처럼 칫솔 물고 수건 들고 줄 서서 세수하면 얼마나 재미있는데, 그걸 불편하다 하다니.
‘현재 진행형’ 딸내미는 ‘지금, 여기’ 현재를 살며 시간을 모은다. 나는 정확하지도 않은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가늠하고 비교, 판단해서, 그것으로 미래를 염려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분명 그 시간을 살았는데, 그 시간이 나에겐 없다.
‘숙소는 지붕 있어 하늘 가리고, 벽 있으면 된 거지.’ 남편 말을 기억하며 어둠 속에서 눈을 감는다. 밖에는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불어대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때린다. 숙소 못 찾아 딸내미와 비바람 부는 런던 밤거리에 서있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내가 미쳤지, 뭐 하러 35박이나 되는 유럽여행을 온다 했을꼬 후회가 몰려왔다. 긴 여행의 첫날밤을 그렇게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지나 보면 그때는 몰랐는데, 참 그래서 다행인 일이 있다. 작고 불편한 첫 숙소의 기억이 그랬다. 런던의 쪽방 숙소가 비교 기준이 되니, 이후의 숙소는 불평 한 마디 없이 감사하며 지냈다. 우와~ 침대에 앉을 수 있다니, 우와~ 캐리어를 두 개나 동시에 바닥에 펼칠 수 있다니, 우와~ 샤워도 줄 서지 않고 할 수 있다니, 우와~ 새벽에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다니......
역시 비교 기준점을 잘 잡는 것은 이후의 ‘만족’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