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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omgom Jun 24. 2017

친애하는 어른에게

평생을 살 것을 앞두는 테이프커팅식 전에

어른이 되면, 이를 잘 닦을 줄 알았다.


돌아오면 씻으며

빨래가 있으면 바로 해치우고

집청소도 잘 할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것 같은데,

그런 일을 쓱싹 해치우는 어른을 만난 것은 같다.


삼십일여 남짓 남은 식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예비남편은

그런 사람이다.


자다가도 불쑥 일어나 치카치카를 하고 잔다.

씻고 자는 것은 힘들어 다음날 아침 씻는 것으로 늘 미뤄뒀던 내겐 마냥 모범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무엇이 결혼을 앞두고 가장 두려우냐고 묻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내 것에게 앞으로 여러 해를 거듭할 동안

'사랑'에 대한 서로의 확신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면 좋겠고


지금처럼 좋은 냄새를 맡으며 킁킁대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맛나게 만드는 장모님표 김치를 이용한 참치김치찌개를

내가 끓이더라도 지금처럼 둘이 얼굴 맞대고 한그릇 비우며 행복해했으면

고단한 운전의 끝에 노곤하게 잠에 떨어진 그가

무의식 중에라도 나를 찾으며 도닥도닥해주는 것이 계속 되었으면



지금의 꿀같은 순간이 낡고 바래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고 똑같이 해도 똑같은 감흥을 받지 못하더라도


우리의 인생은 늘 서로의 감각으로 채워져 있고

안부를 궁금해하며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어른에게 배워

서른 하나의 내가 점차 어른이 되고

오빠가 다시 아이가 된다고 해도


우리의 삶은 코고는 소리에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주말 저녁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김수환 추기경님의 묘 앞에서

잠시 우리 교구에 찾아오셔서  긴 줄을 만든 인파를 뚫고 남동생의 어깨를 내밀었던 어린 날의 나를 떠올렸다.


어린 시절 내 마음 그대로

남동생이 안수를 받아도 내가 받지 못해 서운하지 않았던 것처럼.


남편에게 모든 걸 주어도

이제 나는 내것이 아니라 아쉬워 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보고자 한다.


작은 말에 상처받지 않고

어른의 말에 이해를 담고

일희일비하지않는 어른이 될 때까지



.



결혼,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지만

내 옆의 어른과 함께라면 열심히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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