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소중한 시간에 글을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엄마의 손가락에 은빛 젤네일을 해드리고 아빠와 행진 연습을 했다.
잘 살라고 접어주신 1,009마리의 학을 신혼집에 데려왔다. 엄마를 안을 때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아빠도 엄마도 나이듦이 고스란히 앉은 어깨와 가냘픈 체격이 되어버렸다. 그저 내일을 위해 분주하디 분주하게 우리 모두 준비를 했다.
요상하게도 나는 큰일만 앞두면 잘 자지 못하는 상습범이 되어버린다. 수능날부터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도 그랬다. 결혼 전전날부터 오늘밤까지 서성인다. 고요하고 간간이 선풍기 바람이 느껴질 뿐이지만 이런 밤일수록 생각은 밀어닥치는 법이다.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나 떨림은 사실 크지 않다. 우리 둘은 서로를 믿으면 잘 헤쳐나갈거란 믿음 하에 결혼을 한다.
글을 쓰는 내가 그림그리는 남자를 만나 평생을 약속했다. 이 모든일이 단지 작년 7월 24일 ppt발표 자리에서 기자로서 만난 순간 다음부터 이뤄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결혼을 향해 바로 돌진했다. 나는 이따금 이것이 과연 올바름을 따질 수 있는 문제인가 하면서도 이 사람 아니면 아무도 만날 수 없다는 늘 똑같은 결론을 내리며 안심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내 옆에 누워있는 남자를 그만큼이나 사랑할 용기가 있다. 앞으로도 나를 위해 하듯이 남편을 위해 할 것이고, 그의 손이 그려내는 작품에 감탄할 것이고, 그의 세계에서 흠뻑 취해있을 것이다.
존경의 의미를 담아.
물론 어려운 일이다. 한결같기란 어려울테다. 그러나 늘 오빠를 위해, 내 반쪽을 위해 살 결심만큼은 매일 갱신하여도 같은 결론이 났기에
1년만에 나의 인생 큰 갈림길에서 한 발 내딛는다.
버진로드를 향해.
내일 12시. 먼 옛날 초등학교 3학년이 결혼에 대한 꿈을 부풀어 반죽하기 시작했던 그곳, 명동대성당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