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의 온기는 태도에서

2024. 09. 12 율이 생후 101일의 기록

by 곰곰

이곳은 인하대병원 2인실, 율이와 내가 머무는 이 공간의 온기가 따뜻하다. 감사할 따름이다. 친정 엄마아빠, 언니가 율이를 보러 왔다. 오늘 결혼기념일이라고 하니 남편이랑 식당에 가서 밥이라도 먹고 오라고 하셨다. 병원 내 푸드 코너에서 먹기로 하고 갔는데 문을 연 곳이 치킨집 밖에 없어서 치킨을 먹기로 했다. 한참 먹고 있는데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율이가 갑자기 운다고 말이다. 일단 쪽쪽이 위치 알려주고 물리라고 한 후 후다닥 먹고 돌아왔다.


도착하니 예상하지 못한 그림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옆 침대 천사 엄마가 율이를 안고 있었고 율이는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뒤로 친정 엄마 아빠, 언니가 서있었다. “엄마가 안아주는 것도 안 통했어?” 하니 그랬다며... 천사 엄마 품에 있는 율이와 그 주위로 쪼르륵 서있는 가족들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천사 엄마, 진짜 고맙지!’ 하며 가족들과 수다를 떨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입원 후 가족들에게 천사 엄마 덕분에 수월하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씀드렸었는데, 그 상황이 공유되었기에!


천사 엄마께서는 쪽쪽이를 그냥 물리는 게 아니라 수유를 하듯이 윗부분을 톡톡톡톡 쳐주면 더 잘 잔다고 알려주셨다. 아예 능숙하게 침대로 율이를 눕히고 한참을 토닥인 후 쿠션으로 팔 부분을 눌러주고 자리로 이동하셨다.


낮에는 열어둔 커튼 사이로 율이를 보시더니 터미타임은 안 하냐고 하셔서 “발에 링게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하니 손이 아니라 발에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 하시며 도와주셨다. 터미타임을 시켜보니 잘했다. 그새 율이가 큰 게 느껴졌다.


누워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율이는 침대에서 뒤집기 연습을 계속한다. 따로 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특별히 볼 게 없어서 그런 건지 계속한다. 에너지를 많이 썼는지 오늘 총 975cc나 먹었다.


듣지 않으려고 해도 옆 침대의 소리가 들리는 2인실. 천사 엄마와 천사 아들은 대화 중에 웃음이 참 많다. 그들을 통해 율이와 나의 관계를 오늘도 생각하게 된다.


여기 분명 병원인데, 이 방을 나서면 병원인 것을 완전히 인지하게 되는데, 적어도 이 방에서는 웃음이 넘친다. 천사 엄마와 천사 아들은 대화를 하다 많이 웃고 나도 율이를 보며 많이 웃으니까.


정말 ‘태도’가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긍정적인 태도. 온 김에 좋게 생각하자! 율이는 건강을 빠르게 회복해가고 있다. 새벽 소변검사에서 균이 나오지 않았다! 수유량도 975cc이나 되는 걸 보면 아주 잘 먹고 오늘은 응가를 2번이나 했다. 날 보고 잘 웃어주고 에너지도 많아서 뒤집기 연습도 알아서 잘해주고 터미타임도 잘한다. 나로 말하자면 밥을 차려줘서 좋다. 밥을 먹고 설거지를 안 해도 돼서 좋다. 남편이 퇴근 후 젖병을 세척해 주어서 좋다. 쉬어가는 시간으로 생각하련다.


율아 오늘도 많은 분들의 보살핌 속에서, 사랑 속에서 하루를 보냈단다. 율이를 보려고 퇴근 후에 부리나케 달려온 아빠도 함께 했지. 율이를 보려고 멀리서 빗길을 뚫고 달려온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도 함께 했어. 율이가 귀엽다고 살뜰히 살펴주는 옆 침대 천사 이모, 천사 형아도 함께했단다. 다들 우리 율이가 귀엽대.


율아, 우리 율이 덕에 엄마는 오늘도 큰 배움이 있네. 율이를 만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엄마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경험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란다. 율아, 엄마가 율이 덕에 변해가네. 율아. 세상엔 참 따뜻한 일들이 많아. 우리 율이도 하나씩 하나씩 함께 경험해 가자. 건강히 잘 자라주어 고마워. 사랑해 율아!



옆침대 천사 엄마께


언젠가 우연히 이 글을 보시게 된다면. 정말 감사했다는 말을 다시금 전하고 싶어요. 어머님이 아드님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서 크나큰 배움이 있었어요. 저도 우리 아들이랑 대화도 많이 하고 많이 웃고 큰 힘을 주는 엄마가 되고 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님의 박장대소 웃음소리가 참 좋아요. 저도 그렇게 밝게 살아야겠단 생각도 들었답니다.

짐을 옮기던 날,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는데 먼저 손 내밀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아기를 안고 있을 테니 편히 정리하라고 해주시고 수유도 대신해주셨죠. 아드님이 그 장면을 보게 해주고 싶으셔서 커튼도 열고 계셨죠. 그 모습에서 또 배웠답니다. 다음날은 분유도 타주시고 식판도 대신 치워주시고 터미타임도 도와주시고 우는 율이를 대신 재워주시고, 감사한 게 참 많네요.

정말 손 편지라도 쓰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그러면 함께하는 방에 온기가 뜨거워져서 마주치면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아 차마 쓰진 못했어요. 먼 훗날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추억을 되돌리듯 이날들을 떠올려주시기 바래요.


이 글을 보는 시점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추석 전 주, 인하대 2인실에서 만났던 우당탕탕 초보엄마가 율이와 어떻게 교감하고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흐뭇하게 글을 봐주시면 좋겠네요! 저 역시 시간이 흘러 더 단단하고 더 많은 육아 노하우가 쌓였을 때 우당탕탕하는 초보엄마를 만난다면 꼭 그분에게 필요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어머님께서 저를 도와주신 것처럼요.

병원에서 이토록 웃을 수 있다는 것. 방의 온기는 어떤 공간에 있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일 퇴원하신다고 얼핏 들었는데 병원에서 만난 인연이니 빠른 헤어짐이 좋은 것이겠지만 소중한 인연이 여기서 끝난다니 정말 아쉬워요. 마음만큼은 앞으로 계속 연락하며 지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굿나잇이에요!


20240912(1).jpg 율이는 뒤집기 연습, 옹알이, 터미타임을 하며 에너지 넘치게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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