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09. 15 율이 생후 104일의 기록
어제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는데 율이 삼촌이 율이 선물을 준비했다며 쇼핑백을 들어 올렸고 임금님 옷이 보였다. 다른 옷가지들도 보였고 금반지로 추측되는 작은 쇼핑백도 보였다. 순간 "율이 아예 백일 촬영할까?"라고 말을 했다.
율이가 입원 기간 중 백일을 보냈고 대여한 백일상은 한참 뒤로 연기해 두었다. 옷도 옷이겠다, 날짜가 더 지나기 전에 촬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엄마랑 율이 삼촌이 일찍 집에 왔는데 먹을거리랑 선물이 손에 가득했다. 동생은 3주 전부터 준비를 했다고 했다. 금반지도 직접 금 거래소에 가서 골랐다며 말속에 율이를 향한 사랑이 듬뿍 담겨있었다. (꺼내보니 링 위에 숟가락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었다. 그야말로 ‘사랑 금수저, 러브골드스푼!’. 센스만점이다 정말.)
친정 엄마는 내가 백일 때 끼웠던 금반지를 가져오셨다. 함께 살았을 때 안 입는 옷과 안 쓰는 물건은 칼같이 처분하는 모습을 많이 봤었다.
임신했을 때 88년도에 내가 입었던 배냇저고리를 꺼내 오셨었던 게 참 인상 깊었었다. 무려 36여 년을 보관하고 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끼웠던 백일 반지도 간직하고 계셨다니!
시간의 때가 묻어있는 촌스러운 반지케이스. 케이스를 열어보니 금반지가 찌그러져 있었다. 36년이라는 말도 안 되게 긴 시간, 오랜 세월이 묻어있었다. 이젠 작아지고 작아져 손톱까지도 들어가기가 어려워 힘을 주어 반지를 벌렸다. 이 금반지를 보고 직접 끼워보는데 상상도 못 했던 상황이라 가슴이 뭉클했다.
이 반지를 나를 닮은 손자, 율이가 물려받는 상황 된 것이다. 오늘 우리 엄마의 기분은 어떠셨을까. 율이에게 내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그만큼 나도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율이를 향한 나의 무한 사랑, 그 시작은 나의 부모님.
부모님 중에서도 나의 엄마. 나도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왔으니까. 율이와 나의 관계처럼 나도 엄마 뱃속에 한 몸으로 있었고 탯줄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태동으로 엄마와 교감했던 존재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은 나도 20살 때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에 참 많은 방황을 했는데 우리 율이도 삶에 대한 탐색을 하며 철학적인 질문도 던지고 탐구하는 때가 오겠지. 나의 분명한 믿음은 어릴 적 탄탄하게 뿌리 깊은 사랑을 받으면 그 방황은 갈대처럼 흔들려도 결코 꺾이지 않고 다시 중심을 잡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이 율이에게 깊고 넓은 사랑을 주고 싶다. 복덩이 율이 덕에 한량없이 깊고 깊은 부모님의 사랑을 다각도로, 입체적으로 알게 된다.
그래서 율이에게 또 고맙다. 사실 율이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전에 고마움을 표현할 사람은 남편이다. 이 고마움은 쌍방향의 화살표로 표현하기엔 아쉽다. 고마움이 네트워크 점 조직처럼 무수하게 퍼져있고 또 그 안에서 연결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가족, 가족을 넘은 사회까지도. 인간은 사회 환경의 영향도 상당히 크니까.
미치게 행복한데 그렇다고 행복했다가 그 행복이 훅 떨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한데 편안하다. 율이, 남편, 그리고 가족들 덕분이다. 그야말로 행복의 파도가 넘실댄다. 출렁출렁, 마음 언저리에 파도치듯 철썩철썩 행복이 무한 리셋되고 유지된다. 신기한 마법이다.
아까는 내가 참 좋아하는 우리 집 장면이 떠올랐다. 남편과 율이가 안방 침대에 누워있는데 반쯤 열린 창문 사이로 햇살이 들어오고 방이 더 아늑해지는 장면. 나는 그 장면 속에 함께하기도 하지만 남편과 아가를 바라보는 관찰자이다. 관찰자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구성원으로 누가 이 행복한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침대 곳곳에 묻어있는 따뜻한 햇살. 미치게 귀여운 율이. 그리고 율이 옆에 거인처럼 보이는 남편. 그리고 그들을 사랑 넘치게 바라보는 나. 나 왜 이렇게 행복하지.
백일이 넘은 율이와 서로 교감하는 느낌이 상당히 많이 든다. 행복해. 얼마 전엔 기뻐서 눈물이 살짝 고였는데 율이가 볼까 싶어 빠르게 처신했다.
율이를 만나고 내가 많이 변한 것 같다. 율이가 웃음이 많이 늘었는데 웃는 모습이 예뻐서 율이를 웃겨주고 싶다. ‘옴뇸뇸뇸뇸뇸’ 소리를 내며 콧잔등을 찌푸렸다 폈다 하면 웃는데 ‘이러다 내 콧잔등에 주름이 잡히겠다.’ 하면서도 멈출 수 없다. ‘아 몰라 율이 웃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