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드라마와 시트콤 그 어느 사이

2024. 10. 26 율이 생후 145일 기록

by 곰곰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씬'

가족드라마였다가 시트콤이었다가 잊지 못할 장면들이 많아서 하루가 3일 같은 그런 하루. 자 그럼 첫 번째 씬부터.


#1. 대기번호 16번


지난 10월 3일 저녁, 소변에서 요로감염의 증상인 약품냄새가 나서 응급실에 갔다가 소변이 깨끗하다며 집으로 왔던 에피소드가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지난번과는 또 다른 냄새가 났다. 기존에 맡았던 농도보다 훨씬 진한 냄새였다. 색상도 더 진한 것 같았다. 지나치기엔 왠지 간이검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지베서’라는 간이 소변 검사 키트를 꺼내 기저귀에 꾹 찍었는데, 색상이 초록색으로 변한 부분이 보였다. ‘잠혈’이라는 파트였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초록색 점이나 초록색 계열이 보이면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해야 한다고 쓰여 있었다. ‘반드시? 네? 반드시요?’


부랴부랴 율이 옷을 입히고 내 옷도 갈아입고 빠르게 소아과에 갔다. 대기실엔 중앙 의자는 물론 사이드 의자까지 빼곡하게 사람들로 가득한 상황이었다. 대기번호 16번이 되어 기다렸다.


진료실에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니 소변검사를 해보자고 하셔서 소변패치를 붙였다. 검사를 기다리면서 해프닝일 거라고 믿었다. 10월 3일에 그랬듯이. 소아과에 와서 검사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편해진 기분이었다. 오늘 점심은 시댁에서 오셔서 같이 먹기로 했던 날이라, 검사를 끝내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모임을 갖자는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마음 편히 있다가 진료실에 들어갔는데 "어머니, 요로감염 재발 같은데요? 또 재발한 거면 구조적인 문제일 수도 있어요. 일단 의뢰서 써드릴게요. 바로 가보세요."

#2. 아들아, 단풍이 들었다


인하대병원 응급실을 가는 길은 아라뱃길 드라이브 길이다. 율아, 우리 아들아. 날이 좋다. 미세먼지 없이 공기도 좋다. 단풍이 들었다. 처음에 인하대 병원에 갔을 땐 여름날이었지. 햇살이 들었던 한 여름의 특실. 그 햇살로 더워진 공간. 그 빛을 피해 소파가 있는 곳으로 우리 율이를 옮겼더랬다. 병원 침대가 아닌 소파에 누운 율이가 좋았더랬다. 여름날의 햇살을 기억한 잎사귀들이 단풍이 되었고, 그 길을 따라 가을날 다시 간다. 아니지. 다시에 또다시. (생후 58일에 1차 급성신우신염으로 입원했었고, 생후 99일에 요로감염이 재발해서 입원했었다,) 며칠 전 반갑지만 번거로웠던 생리가 끝났고, 어제부로 참으로 귀찮았던 다래끼 안약 투여가 끝났다. 그래, 내가 율이를 그래도 수월하게 케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예상되는 이번 입원생활을 앞두고 필수품으로 종합비타민을 넣었다. 가장 잘 꺼낼 수 있는 위치에 말이다.


#3. 내 기분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인하대병원에 와서 다시 소변검사를 했다. 기저귀를 열었는데 쉬 발사! 발사되는 쉬를 눌러 덮듯이 소변패치를 붙였다. 이렇게나 빨리 소변검사를 할 수 있다니! 의료진들은 바로 쉬를 한 것을 칭찬하고 본인들끼리 또 얘기를 했다. 남편은 율이를 안고 소아대기실로 갔고 나는 호명할 때 바로 들을 수 있도록 기존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이것은 발생한 일. 내가 운다고, 속상해한다고, 기분이 처진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 기분을 선택할 수 있다고’

#4. 아빠가 울었다. 율 아빠가


우리 집엔 똥강아지 율이가 있고, 어미견이 있고 아빠견이 있다. 아빠견은 날름날름 율 똥강아지를 정성스레 핥아주고 물가에 있으면 목덜미를 물어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곤 했다. 아빠견이 울었고 어미견이 울었다. 우는 게 웃겨서, 울면서 웃었다. 서로를 보고 웃다가 또 울고 그렇게 원팀이라는 것을 진하게 느꼈다.

#5. 링게 없는 발을 만지작만지작 아니 주물럭주물럭


소변 검사 결과, 요로감염이 맞았다. 염증은 있지만 세균은 나오지 않았고 균 배양 검사가 3일 정도 걸린다고 하셨다. 입원을 원하면 입원, 경구약을 원하면 경구약. 선택은 우리 부부의 몫이었다. 담당 교수님께서 다시 재발하면 역류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셔서 무조건 입원할 줄 알았는데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주말이라 역류검사는 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세균은 나오지 않은 상태, 약을 복용하면 화요일에 균 배양 검사 결과를 들으러 외래를 보러 와야 한다는 말씀에 우리는 통원치료를 하기로 했다.


율이가 5시간째 공복 상태라 부랴부랴 모유수유실로 가서 수유를 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들께 상황을 전달드렸다. 사실 오늘 어머님, 아버님과의 식사자리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칠순을 챙겨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점심 예약을 한 식당은 포장으로 변경해서 우리가 병원에 간 사이 집에서 드시라고 챙겨드리고 나온 상태였다. 오신 김에 주무시고 가시라고 말씀드렸는데 내일 또 볼일이 있다고 하셔서 차가 막히지 않는 저녁 시간에 남편이 댁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율이는 저녁까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놀다가, 수유 후 처방받은 약을 먹었다. 남편은 어머님, 아버님을 모셔다 드리러 수원으로 출발했다.


오늘 총수유량이 평소보다 너무 적었고 수유가 한 번 더 남은 상황이었는데 잠에서 안 깨네? 밤 10시가 돼도 깨지 않길 래거의 두 달 반 만에 꿈수를 했다. 처음부터 자면서 먹었다. ‘와, 진짜 많이 컸네!’ 자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러웠다. 자장가로 율이 지정 가요인 ‘어떻게 너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노래를 부르며 통통한 발등을 만졌다. 오늘 입원해서 링게를 꽂았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링게 없는 발을 만지작만지작 거리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발가락 하나하나를 다 만져보고 발을 아주 주물럭주물럭. 또 주물럭주물럭. 꿈수를 200cc나 해서 소화를 시켜야 할 것 같았다. 그대로 눕히면 안 될 것 같아 안고 있는다는 게 1시간이 흘렀다. ‘아프긴 아픈 건가...’ 안 깨는 것 보니 율이 몸에서 회복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


#6. 아빠견이 왔다. 우리 원팀이네. 진하다. 이 사랑이


밤 11시, 현관문이 열렸다. 마침 율이도 깼다. 남편이 율이를 재운다며 서로 율이를 안아보겠다고 밤에 난리가 났다. 더 깊어졌다. 사랑이 말이다. "율아, 아빠가 울었어." 평생 놀려야지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율 아빠도 성장의 시간이었구나. 율이의 요로감염 재재발 소식은 우리 세 식구를 둘러싼 원가족들의 사랑 또한 더 깊게 했다. 걱정하는 마음이, 입원이 아니라는 안도하는 마음이, 잘 웃는 율이를 보며 애정을 느끼는 그 마음들이, 그 마음들이 빚어내는 사랑의 에너지가 이토록 크다.


율이는 화요일 오전에 외래를 간다. 입원하지 않고 통원치료를 해도 될 만큼 율이가 컸고 경미할 때 발견했다는 것이 감사하다. 오늘 에피소드를 통해 또 성장했다. 8.2kg 오통통 율아가. 부쩍부쩍 쑥쑥 잘도 커주는 율이. 그런 율이와 함께하며 나도 남편도 부쩍부쩍 쑥쑥 성장해가고 있다.


혹시 남편이 수원 집에서 자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남동생에게 내일 율이를 보러 올 수 있냐고 연락했는데 감기에 걸렸다고 했다. 율이 상태를 묻더니 동생은 아기 키우기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아니야.”

카카오톡 메시지로 가타부타 얘기하고 싶지 않아 고맙다고 마무리 지었지만.

우리 부부는 게임처럼 이번 판을 어떻게 레벨 업 할지 고민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율이 요로감염 에피소드는 정말로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나를 겸손하게 하고 풍요롭게 한다. '율이가 건강한 것'. 그거면 된다. 다른 욕심을 내다가도 '율이의 건강' 이거면 된다.



20241026.jpg 생후 145일, 율이는 세 번째 요로감염으로 인하대 응급실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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