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2. 17 율이 생후 197일의 기록
동네 문구점에 잠시 들렀다. 육아 휴직 후 복직을 앞둔 아는 동생에게 그간 고마웠던 마음을 전하고자 선물을 온라인으로 주문했는데 내 손으로 포장을 해서 전해주고 싶었다. 포장지를 고르고 장식으로 달만한 것은 없는지 살펴보고 있는데 ‘소고’가 눈에 들어왔다. ‘소고’라니! 초등학교 저학년 때 준비물로 챙겨갔던 기억이 났다. 운동회 때 사용했던 건가, 위아래로 하얀 체육복을 입고 있던 모습도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예상치도 못했던 추억에 미소가 띤 채 통로를 걷는데 또 하나의 장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내가 이모 손을 이끌고 들어갔던 문구점 내부의 모습. 그날은 내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생일선물을 사달라고 이모를 데리고 문구점에 간 것이었다. 문구점 통로를 누비며 행복했고 무얼 고를지 행복했던 기억. 여러 가지를 골랐던 것 같은데 그중 하나는 조립식 색연필. 기억은 딱 여기까지.
율이를 만난 후 기억의 회로가 순식간에 나의 어린 시절로 이동할 때가 있다. 그 장면들은 명확하진 않지만 기억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놀랍게도 아늑함이었고, 따뜻함이었다.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보냈다는 것이 율이를 만나고 여러 번 증명되고 있다. 내 마음 저장소엔 기분 좋았던 일들이 이리도 많다. 아주 잘 알고 있다. 마음 저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많은 행복들이 나의 엄마 아빠가 만들어주었다는 것을 말이다.
글로 기록을 남기는 이유가 있다면 나중에, 아주 나중에, 율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율이를 만나고 내가, 나의 남편이, 우리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행복 속에 얼마나 많이 웃으며 지냈는지를 말이다. 율이를 둘러싼 따뜻한 사랑의 온도는 계절과 관계없이 웃음이란 꽃을 피우고 있다.
시간이 흘러 율이가 사춘기가 왔을 때 우리들의 사랑을 의심하는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사랑을 의심하며 자신의 뿌리가 흔들리는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지나 더 단단해진 어른 율이가 이 기록들을 본다면 꼭 말해주고 싶다.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늘 웃음을 안겨주어 ‘커서 개그맨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율이를 낳고 키우면서는 이 행복을 담을 단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귀여운 모습에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자기 전엔 율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웃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고. 잠들기 전엔 내일이 어서 와서 율이랑 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율이를 키우며 정말 행복했다고. 내 생애 가장 큰 ‘사랑’을 느낀 하루하루였다고.
"율아, 네 안에 마음 저장소는 아주아주 진한 사랑이 든든히 자리 잡고 있단다.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이 든든한 사랑이 너를 다시 일으켜 줄 거야. 네 안의 사랑을 믿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