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면 잊고 있었던 옛이야기를 종종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읽었던 이야기와 느낌이 너무 달라 놀랄 때가 있다. 백희나 작가의 <연이와 버들 도령>을 읽었을 때에도 그랬다. 어린 시절 읽었던 <연이와 버들 도령>에서의 나의 관심사는 버들 도령이 사는 신기한 세계와 연이의 행복이었다.
다시 만난 <연이와 버들 도령>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죽은 버들 도령을 발견한 연이의 행동이었다. 연이는 놀라거나 슬퍼서 울지 않고 담담하게 행동했다. "연이에겐 그동안 좋은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그래서 이런 기막힌 일이 닥쳐도 그래, 그러려니 싶은 거야"라고 생각하는 연이의 모습에서 어른에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아온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른과 학대당한 아이, 나이 든 여인(옛이야기에선 계모로 표현된)과 연이의 모습이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옛이야기처럼 연이와 버들 도령은 결혼을 하거나 행복하게 살았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지 않는다. "아마 그곳에서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지?"라는 추측만을 남긴다. 나이 든 여인도 권선징악의 교훈에 그다지 적용되는 것 같지 않다. 그냥 나이 들어 혼자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을 뿐.
연이와 버들 도령의 세계는 나이 든 여인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여인은 변하지 않았다. 이야기에서조차 반성이나 벌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연이와 버들 도령>은 판타지적인 이야기이지만, 더 현실적이고 무섭게 다가왔다. 아직 수많은 연이의 현실은 안전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이 든 여인에게 학대당한 연이와 죽임을 당한 버들 도령은 같은 얼굴이었다. 연이가 안전하게 잘 성장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다가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이 이야기를 과도하게 해석하고 읽는 것일까. 다시 만난 연이가 너무 아프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