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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서가 Jun 27. 2024

미리 보는 새로운 가족 드라마

『가녀장의 시대』(이슬아, 이야기장수)

“너는 커서 뭐가 될 거니?”     

  슬아의 할아버지는 슬아에게 묻는다. 슬아는 고생하는 여자 어른을 생각하며, 가진 것도 많고 모두 그를 따르며 자신감도 넘치는 할아버지를 보았다. 그리고 사장님이 되고 싶다 말한다. 이 책의 도입부, 태초의 가부장 할아버지와의 에피소드이다.


가부장. 공기처럼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살았던 시간 속에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가족을 대표하는 남자 어른으로 가족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는 남자 어른. 집에서는 엄마가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집안의 돈을 벌어오는 아빠는 항상 집에서 대접을 받는 것은 아빠였다. 아빠는 바깥일,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 안사람으로 구분하고 의식주 모든 것을 책임지며 아이 셋을 키우며 항상 분주했던 엄마. 항상 분주했지만, 누군가 직업을 물을 때 “집에서 논다.”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알게 되었다. 음식을 만들고, 아이를 키우고 집안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고 손이 많이 가는지.


소설이 배경이 ‘헤엄출판사’에서 ‘낮잠출판사’로 변해도, 이슬아의 에세이를 읽어 보았다면 등장했던 에피소드들이 소설 속에 그대로 등장하면서 소설이 다시 현실로 변해버리는 신기한 읽기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 같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인 딸 슬아, 엄마 복희, 아빠 웅이의 이야기를 더 몰입하면서 읽게 된다.


 소설 속 가녀자인 슬아와 가부자인 할아버지의 차이는 ‘돌봄’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그 타인을 존중하는지에 대한 부분이다. 매일 11명의 식사를 준비했던 복희의 일은 할아버지에게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슬아는 모부를 출판사에 취직하게 하고 음식과 청소 일에 대한 월급을 주고 고용한다. 부모와 자식 간이지만, 서로를 존중하고 선을 지킨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생각하다가도 이슬아 작가라면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했다.


 이 소설이 에세이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생각해 읽어 보려 하지 않았었다. 회사 동료가 빌려줘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 출퇴근길이 즐거웠다.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는 이야기의 거리감인 것 같다. 작가와 너무 가까운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의 내면과 만나게 되는 기분이 된다. ‘나’에게서 멀어져 3인칭 관찰자의 시점에서 서술되는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나’뿐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이 목소리를 가지게 되어서 본격적인 이야기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어버렸다.


  이 소설을 읽고 나를 흔드는 문장이 있었다. 이야기 중간중간, 스치듯 등장하는 ‘주인의식’이 있는 삶이다. 단 한 번뿐인 삶에서 누구나 자신의 속도와 색깔에 맞춰 주인인 삶을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자유가 있다. 자신을 책임지고 감당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관리하기도 하며. 가녀장 슬아의 주변 인물을 이야기가 유쾌하고 감동적이다. 새로운 가족드라마를 미리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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