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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서가 Jul 20. 2024

우산

2024.07.17.


일이 있어 회사에 반가를 냈다가 일이 취소되어 반나절의 시간이 비게 되었다. 아들과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평소 아이가 좋아하는 종로서적에 가기로 했다. 비가 많이 와 걱정은 되었지만 평일 낮이고 10분 정도 걸어가면  계속 지하철을 타고 실내에 있으면 되니깐, 가기로 결정. 우산을 들고 조금 잦아든 빗속을 걸으니 시원하고 신이 난다. 낡은 우산이 흔들 거리지만 다행히 망가지지 않고 지하철역까지 도착해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종로서적에 도착해 각자 사고 싶은 거 하나씩 골라 사기로 했다. 서점을 어슬렁 거리며 평소 사고 싶었던 책을 발견해 조금 읽어 보기도 하고, 너무 예쁜 표지의 책을 보면서 감탄하기도 하며 책구경을 했다. 아들은 피규어 코너를 진중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살피더니 맘에 드는 피규어를 골랐다. 난 기다렸던 책 <동경일일 > 3권을 손에 들었다. 퇴근 시간을 피해 지하철을 타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 구입한 책을 읽었다.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작년 <동경일일> 1 , 2권을 읽었다. 자신이 만든 잡지가 폐간을 하자 잡지사를 나와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으로 새로운 잡지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오자와와 만화가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양길로 접어든 출판시장과 잡지 만화,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각자의 사정으로 만화의 세계와 자연스럽게 멀어져야 했던 만화가들.


이 책의 완결편인 3권에서 초사쿠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 연재했던 만화를 끝내고, 시오자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콘티 작업을 하는 초사쿠. 초사쿠는 콘티 작업에 난항을 겪다 비 오는 거리를 걷는다. 사나운 바람 속에서도 우산을 놓지 않고 따라가다 망가져버린 우산을 내려놓는다. 초사쿠 눈에 들어온 것은  거리와 사람, 아름다운 빗방울의 모습이다. 망가진 우산을 들고 정신없이 뛰어간 초사쿠는 새로운 콘티를 시작한다.


우산이 망가져도 놓쳐버려도 삶은 계속되고 비는 언젠가 그친다. 예전과는 다르지만, 달라진 그 자리에서 나름의 선택을 하고 다시 만화를 그리는, 잡지를 엮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성과나 성공이 아니라도 이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저녁 7시 반, 우산을 들고 집으로 갈 준비를 했다. 아이는 무려 그림을 여섯 장이나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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