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여름 3

by 키키 리리

1학기 종업식 날이 되었다. 단 3일을 쉬고 다시 학교에 나와야 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여름방학 보충 수업에 빠질 수는 없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혜나가 5반 뒷문에서 슬과 유리를 기다렸다.


“그냥 집에 가긴 아쉬운데 남포동에 갈래?” 혜나가 말했다.


“집에 가봐야 재미도 없고 오늘은 학원에 안 가니까. 어때?”


“좋아.”


유리는 대번에 동의했다. 슬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고모에게 미리 말하지 않아서 점심을 차려놓고 그를 기다리고 있을 게 뻔했다.


슬은 학교 매점 옆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걸었다. 고모는 저녁 먹기 전까지 들어오라고 말하며 허락했다.


“가자.”


셋은 장우동에 들러 비빔만두, 떡볶이, 쫄면 그리고 김밥 3줄을 주문했다. 체구가 작은 유리는 셋 중에서 먹성이 제일 좋았다. 혜나는 자신의 앞접시에 놓인 삶은 계란을 유리에게 양보했다.


“고마워.”


유리는 혜나를 보며 눈을 찡긋했다.


테이블 위에 남은 음식이 거의 없어지고 있었다.


“화장실에 다녀올게.”


혜나가 자리를 뜨자 유리는 하나 남은 떡볶이를 젓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


“혜나를 어떻게 구워삶았냐고.”


슬은 유리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혜나가 거북이야? 구워삶고 말고 하게.”


“내 말은 그게 아니잖아?”


“알아듣게 좀 말해.”


“우리 사이에 네가 끼어든 건 아니?”


“아니, 몰라.”


“눈치 더럽게 없네.”


슬은 대답하지 않았다.


관계란 뭘까?


사람 사이의 관계는 살아있는 언어와 같아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생겼다가 사라지고 뻗어나갔다가 잘리곤 한다.


지금은 뻗어나갈 차례일까? 잘라야 할 차례일까?


“자주 듣는 음악 있니?” 슬이 물었다.


“갑자기 그건 왜?”


“난 음악을 좋아해.”


“알아. 귀에서 안 빼잖아, 이어폰.”


잠시 침묵이 흘렀다.


“혜나가 말했어. 너 참 신기한 애라고.”


슬은 대꾸하지 않았다.


“같은 반이지만 대화 한 번 안 하다가 혜나 덕에 겨우 대화한 건 알지?”


“그래.”


“넌 왜 그렇게 벽을 둘러?”


“뭐가?”


“네 이야긴 도통 안 하잖아.”


“꼭 그럴 필요 있어? 상대방에 대해서 많은 걸 안다고 친구가 되는 건 아니야.”


“친구라면 속속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알아야 해. 그래야 친구지.”


“그래서 넌 혜나에 대해 얼마나 아는데?”


“네가 아는 것보다 내가 아는 게 더 많을걸?”



잠시 뒤 혜나가 돌아왔다.


“둘이 무슨 이야기했어?”


“별말 안 했어.”


“내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고 유리가 말하던데?”


유리가 당황했다.


“정말?” 혜나가 키득거렸다.


“유리 얘는 질투가 많아. 유리야, 네 맘 알지? 난 이슬도, 너도 똑같이 사랑해.”


혜나가 환히 웃으며 유리의 볼을 꼬집었다.


슬은 그 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혜나가 나타났고, 유리가 따라왔다. 그 둘을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가 유리에 대해 많은 것을 안다고 저절로 친구가 되는 건 아니다. 혜나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다고 친구가 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교 무렵이면 자신도 모르게 뒷문을 자꾸 바라본다는 것이다.


식당을 나온 셋은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한사코 가발을 쓰기 싫어하는 슬에게 혜나가 클레오파트라 가발을 씌운 뒤 팔짱을 꼈다. 슬은 꼼짝없이 붙잡힌 채로 사진을 찍었다. 유리는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뒤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으며 혜나는 환하게 웃었고, 맨 오른쪽에 선 슬은 난처한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가게를 나온 셋의 책가방엔 스티커 사진이 달린 열쇠고리가 달랑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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