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난 여름 5

by 키키 리리

둘은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제일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슬은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한쪽을 혜나에게 건넸다. 노댄스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슬은 오랫동안 품어온 궁금증을 혜나에게 말했다.


“왜 하필 나야?”


“무슨 소리야?”


“한신 아파트에 사는 애들은 많잖아. 학교에서 집으로 향하는 그 많은 애들 가운데 왜 나에게 말을 걸었냐고.”


“그날 기억해? 내가 처음으로 너를 불렀던 날 말이야.”


“응.”


“사실 학교 화장실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쓰는 널 봤어. 속으로 생각했지. 그냥 울지, 그게 뭐라고 입술을 물어뜯으며 참을까……. 그때 넌 무척 외로워 보였어.” 혜나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게 다가가 괜찮냐고 묻고 싶었어. 이슬, 괜찮아? 아니, 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몰라.”


슬은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과학 선생님에게 뺨을 맞고 화장실에 갔다. 눈물이 차올랐지만 울지 않았다.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바라보며 속으로 괜찮다고, 괜찮다고 끝도 없이 외쳤다. 그런데 이런 내 마음을 혜나가 알아봐 줬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혜나가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혜나의 머리칼은 매끄럽고 윤이 났다. 잘 먹고 잘 자고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의 머리카락이었다. 슬은 혜나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어루만지고 싶었다.


이어폰에선 달리기가 흘러나왔다.


“난 이 노래가 좋더라.” 혜나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너도 윤상 좋아하니? "


"응. 다 끝난 뒤에 들으면 참 좋을 것 같아.”


슬은 무엇이 끝난 뒤에 들으면 좋은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혜나는 슬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혜나의 손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네가 내게 괜찮냐고 물어봐 주길 바랐어. 그런 날이 오길 바랐어. 근데 넌 항상 말이 없더라. 묻는 사람은 항상 나였고,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도 항상 나였지.”


혜나가 귀에 낀 이어폰을 빼서 슬에게 돌려주었다.


“난 네가 좋아.” 혜나가 울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말했다.


대화가 끊겼다.


슬은 혜나가 무심코 뱉은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여고에서 친구에게 이성의 감정을 느끼는 경우는 많았으나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 이야기였다. 그 대상이 자신이 되자 어쩔 줄 몰랐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슬의 침묵이 길어지자 혜나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너에게 부담을 줬구나. 이러면 안 되는데.”


슬은 혜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 네 대답을 알 것 같아.” 혜나가 애써 웃으며 말했다.


“있잖아….” 슬은 미간을 찡그렸다.


“너, 괜찮은 거지?”


“……그래.”


사실 괜찮을 리가 없다는 사실을 둘은 알고 있었다.


이후 혜나는 슬은 피하지는 않았으나 그 특유의 쾌활함을 잊은 채 학교에 나왔다. 유리는 그런 혜나의 모습을 걱정 어린 시선으로 보았고 슬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채 시간만 보냈다.


해가 바뀌자 혜나는 예전처럼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돌아왔다. 그는 여전히 슬과 유리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했으며 둘과 어울리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슬은 혜나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보려고 애썼으나 곧 그만둬 버렸다. 그리고 수능 공부에 밀려 까마득히 잊고 말았다.

이전 14화 우리가 만난 여름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