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이었다.
“잠깐 볼 수 있을까?”
“어디서?” 혜나가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늘 가던 까페에서 보자.”
“알았어.”
슬은 흰색 폴로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거리를 나섰다. 모자를 써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바쁘게 길을 걸었다.
일요일 오후 4시였다.
먼저 도착한 혜나가 손을 흔들었다. 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슬.” 먼저 입을 연 것은 혜나였다.
“잠깐 모자 벗어줄래?”
“아, 머리 안 감았는데.”
“상관없어.”
슬은 혜나의 요청에 모자를 벗고 손가락으로 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
“네 얼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혜나는 고개를 들어 슬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침묵이 흘렀다.
“있잖아.”
“내가 먼저 말해도 돼?” 혜나가 슬의 말을 가로막았다.
“이번에 윤상 새 앨범이 나왔어. 클리셰.”
“어, 알고 있어.”
“아직 안 샀지?”
혜나는 가방에서 윤상의 얼굴이 제법 크게 나온 CD를 꺼냈다.
“선물이야.”
“갑자기 왜?”
“며칠 전에 과외비를 받았어. 동보서적에 갔다가 2층에 들러서 사 왔지. 음악 들을 때마다 내 생각해. 넌 항상 음악을 들으니까.” 혜나가 농담처럼 말했다.
“이슬.”
슬은 혜나가 자신을 항상 ‘이슬’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응?”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갑자기 그걸 왜 물어?”
“얼른 답해.”
슬은 혜나의 물음에 고요히 온 마음을 집중했다. 정답은 없지만 슬은 혜나의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을 하고 싶었다.
“글쎄……. 너무 흔한 단어긴 한데 막상 입에 올리려니 쑥스럽고 낯 간지러워.”
“난 매일매일 네 이름을 부르고 싶어. 네 얼굴을 보면서 ‘이슬’ 이렇게 부르고 싶어. 이게 사랑이 아닐까?”
“있잖아, 혜나야.”
“아직 할 말이 남았어. 여전히 네가 좋아.”
혜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는데 이걸 감추기 위해 그는 말이 끝나자마자 키득거리며 웃었다. 진지해야 할 상황이었지만 슬은 어쩐지 자신도 웃고 싶어져 혜나를 바라보며 커다랗게 미소를 지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혜나에게 위로가 되는 듯 하였다.
혜나는 슬의 손등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슬은 고민과 번민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