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마 7

by 키키 리리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이사를 하느라 윤희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헤어졌는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래서 윤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녀가 내게 보인 반응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강의실에 들어온 윤희는 나를 외면했다. 보란 듯이 내 앞자리에 앉은 그녀는 수업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녀는 하얀 목덜미와 작은 귀가 훤히 드러나게 머리카락을 자른 상태였다. 나는 여자들이 심경의 변화를 머리카락이나 옷 따위로 종종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수업이 끝난 뒤 윤희에게 말을 건넬까 망설이다가 결국 그녀를 놓치고 말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 때 윤희가 내 팔을 붙잡았다. 그녀는 먼저 강의실을 빠져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 좀 해.”


윤희는 차분하게 말을 건넸다. 그런 다음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갔다. 흰 바지에 푸른 남방을 입은 윤희는 여전히 생기발랄하게 보였지만 왠지 거리감이 느껴져서 가까이 다가가기 힘들었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천천히 따라갔다.


우리는 인문관 앞에 있는 등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박아놓은 나무 기둥을 휘감고 하늘에 그늘을 드리운 등나무 밑은 몹시 시원했고 연보라색 꽃들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고개를 돌려 윤희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지만 그녀가 입을 꾹 다문 채 앞만 응시하고 있어서 난감했다.


“저기, 윤희야.”


내가 떠듬떠듬 입을 열자, 윤희가 고개를 획 돌려서 나를 쳐다보았다. 눈빛은 “이 자식아, 왜 이제야 말을 하는 거야, 그동안 뭐 하고 있었어? 내가 잔뜩 화난 거 몰라?”라고 쏘아대고 있었으나 정작 그녀 입에서 나온 말은 “왜?”였다.


“집에 일이 좀 있었어.” 나는 변명하듯 주절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동안 학교에 코빼기도 안 보여? 최소한 나한테 먼저 연락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휴대폰 번호를 모른다고 변명하지 마. 우리 집 알잖아. 114에 물어보면 알려줘, 민박집 전화번호!”


“걱정 많이 했구나. 정말 미안해.”


“나한테 잔뜩 쏘아붙이고 헤어졌는데…….”


윤희는 속상한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우리가 어느 정도 친밀한 사이라고 느끼긴 했으나 엄마의 죽음을 언급하며 내 잘못을 상쇄시키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화난 윤희의 마음을 달래주고 윤희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 역시 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상반된 생각이 충돌하고 있을 때, 참지 못한 윤희가 말했다.


“아무 말이나 좀 해봐. 변명이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야?”


“글쎄, 그게 말이지……. 너한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뭘 망설여?”


“모르겠어.”


“그럼 내가 먼저 말할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윤희는 내가 그렇게 떠나버린 뒤 몹시 당황스럽고 화가 났지만 2주 동안 내가 수업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몹시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다시는 너를 볼 수 없을까 봐 진심으로 괴로웠다고. 알겠어? 이 바보야.”


윤희는 ‘진심’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발음했다.


윤희가 나를 ‘바보’라고 일컫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 윤희도 덩달아 웃었는데 그 미소가 예뻤다.


문득 윤희와 같이 밥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에 갈래? 점심 만들어 줄게.”


“뭐? 점심? 네가 직접?” 윤희는 놀랍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응.”


“부모님은?”


“부모님과는 같이 안 살아. 학교 후문이랑 가까워.”


“혹시 너, 그 뭐냐…….” 윤희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그냥 밥 먹는 거야.”


“알았어, 그렇다고 해도 네가 왜 2주 동안 학교에 안 나타났는지는 꼭 이야기해야 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근처 마트에 들러 간단히 장을 본 다음 곧장 집으로 걸어갔다. 내가 살고 있는 원룸은 학교 후문 근처에 있었고, 3층짜리 건물의 꼭대기 층이어서 작은 다락방도 딸려 있었다.


내가 사 온 두부와 돼지고기를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 동안 윤희는 방구석구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았다.


“우와! 내 방보다 깨끗하다. 결벽증 같은 것 없지?”


“그런 게 있을 리가.”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거기 앉아 있어. 시간이 좀 걸릴 거야.”


“무슨 대단한 요리를 하려고? 내가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적어도 너보단 훨씬 잘할 테니까.”


윤희는 미심쩍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더 이상 캐묻지는 않았다.


내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를 만드는 동안 그녀는 가방에서 책을 한 권 꺼내 책상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저번에 읽던 책 아니야?”


“맞아. 내용이 꽤 매력적이라서.”


“왜?”


“음……, 언젠가 가고 싶거든, 아프리카. 그리고……이런 대목들이 마음에 들어.”


윤희는 책장을 재빨리 넘겨서 내게 읽어줄 부분을 펼치곤 목을 가다듬었다.


“잘 들어봐. <우리는 함께 있을 때 대개는 미래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데니스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미지의 힘을 끌어 모을 수 있음을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법이 없었다.> 어때? 멋지지 않아?”


“뭐가 멋져?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서?”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니까. 매 순간을 말이야. ‘넌 아니지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또 넘겨짚는다고 화를 낼까 봐 참고 있어.”


나는 윤희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윤희는 내 성향을 잘 파악했다. 이제껏 누군가 나를 잘 안다고 느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그저 멀고 먼 존재였다. 슬프지만 안타깝지는 않았다. 애써 누구를 이해하고 상황을 바꾸려는 노력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리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과거처럼 미래 역시 변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 걱정하고 근심하고 눈물을 흘리는 일뿐이다.


윤희는 다시 입을 다물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도저히 집중을 할 수 없는지 연신 내 쪽을 쳐다보다가 결국엔 내 곁으로 다가와서 이것저것 참견하기 시작했다. 이걸 먼저 넣어야 한다, 계란말이엔 치즈가 제격이다(물론 냉장고에 치즈 따윈 들어있지 않았다), 흰쌀밥보다는 현미밥이 몸에 좋다, 김치찌개엔 기름이 어느 정도 붙어 있는 돼지고기를 넣어야 한다.


나는 쉴 새 없이 재잘거리는 윤희를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혼이 쏙 빠져나갈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던 윤희는 내가 상을 펴고 음식을 그릇에 담아내자 비로소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부엌 찬장에서 조미김 두 봉지를 꺼내 각자의 밥그릇 옆에 놓아두었다.


“이야, 맛있겠다.”


“얼른 먹어.”


윤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젓가락을 들었다. 그녀의 입술 사이로 연신 “최고.”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언제부터 요리했어?”


“오늘부터.”


“안 웃겨.”


“실은 꽤 됐어. 엄마가 요리엔 별로 취미가 없으셨거든. 항상 적게 드시거나 잘 안 드셨어.”


“왜? 다이어트하신다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날 미워하시느라 자신을 돌볼 겨를이 없었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윤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밥을 먹기 시작했다. 윤희는 나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먹고 있어서 내가 보조를 맞추기 힘들었다.


“왜 그렇게 빨리 먹어?”


“천천히 먹으면 금방 배부르잖아. 난 많이 먹고 싶은데.”


“많이 먹는 편치곤 꽤 날씬한 것 같아.”


“맞지? 우리 엄마도 그래. 우리 집 식구들은 다 그런가 봐. 그래봤자 엄마와 나 단 둘 뿐이지만.”


“왜 둘 뿐이야?”


“아빠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거든.”


윤희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내가 괜한 걸 물어봤네.”


“괜찮아. 아주 옛날 일인걸, 뭐.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래.”


“그런데 그거 알아?”


“뭘?”


“내 친구들한테 아빠가 안 계시다고 말하면 대체로 그렇게 말해. 안 됐다, 불쌍하다. 물론 직접 대 놓고 말하진 않지만 그런 분위기야. 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녀석들은 내게 이런 소릴 지껄이지. 신은 네가 견딜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주신다, 하늘에서 네 아버지가 너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다. 쳇, 웃기지 말라고 그래. 그런 시답지 않은 말을 할 거라면 차라리 입 닥치고 있는 편이 나아. 자기네 가족이 죽으면 절대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없을 걸? 그러면서 마치 진심으로 위로하는 척 말하지. 끔찍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잠자코 듣기만 했다.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아.”


괜찮다고 말한 윤희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윤희의 손을 잡아 주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훨씬 윤희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리라 믿었다. 그녀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지만 손을 빼지는 않았다.


“네 손이 참 따뜻해.”


“고마워. 네 손도 따뜻해.”


정말이었다. 윤희의 손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오랫동안 놓기 싫었다.


“난 네가 좋아,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네가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 좋아. 이거 같은 말이지?”


“아니, 다른 말이야.”


“아니야, 같아.” 윤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실 난 그 교양수업 수강생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네가 나와 같은 학교 학생이란 사실을 알고 동문 선배에게 부탁했어. 기계공학부 1학년은 어떤 교양 수업을 듣는지 알아봐 달라고. 동문 선배가 기계공학부 남자랑 사귀거든. 물론 너네 과 학생들은 워낙 인원수가 많아서 내가 강의실을 일일이 확인하기가 몹시 힘들었어.”


“대체 왜 그랬어?”


“넌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실 때, 내 이름 부르는 거 못 들었지? 아마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아니 왜 그랬냐니까?”


“바보야. 생각이란 걸 좀 해봐. 금방 말했잖아.” 윤희가 잡고 있는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정말 모르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하는 거야?”


윤희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이번에도 숙제야. 그리고 왜 2주 동안 학교에 안 나왔는지 말해야 해. 너 휴대폰 있지?”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 번호 알려줄게.”


내가 책상 위에서 메모지를 가져오자 그녀는 011로 시작하는 휴대폰 번호를 적어주었다.


“2시에 수업 있지 않아? 설거지는 나중에 하고 얼른 뛰어가.”


윤희가 내 등을 떠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집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윤희는 또다시 “안녕”이라는 말만 남긴 채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고 나는 윤희가 멀어지는 뒷모습만 우두커니 쳐다보다가 학교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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