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평가 시간이었다. 시작하자마자 달랑한 줄만 써 놓고 놀고 있는 학생에게 다가갔다. 채점기준표를 보여주며 더 쓰지 않을 경우엔 최저점을 받을 수 있으니 남은 시간 동안 더 쓰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 학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천진난만하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14살짜리 앞에서 나는 헛웃음이 터졌다. 그래도 그냥 돌아설 수는 없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나는 네가 더 열심히 하길 바라는데 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깝구나."
내 말을 듣고 그 학생은 잠시 머뭇거렸다.
나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수행평가가 내신에 몇 퍼센트 들어가는지, 이 수행평가를 통해 네가 얻을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인지 구구절절 설명했을 테지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만 내 감정을 표현하고 그 학생이 다시 돌아오기를, 수업을 향해 방향을 틀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언젠부터인가 학생들이 졸아도, 수업 시간에 학습지를 풀지 않고 장난을 쳐도 화가 나지 않았다. 화를 내며 속사포처럼 많은 말을 쏟아내도 대부분 다 튕겨나간다는 사실을 안다. 그저 자조 섞인 신세한탄을 속으로 했다. 그러다가 참을 수 없어서 입 밖으로 낸 적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은 날.
"나는 가끔 내 일이 형벌같이 느껴져.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꾸벅꾸벅 졸고 있는 학생들 앞에서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할까? 아마 나라를 팔아먹었을 거야. 졸고 있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파."
반은 농담처럼, 반은 진담처럼 내뱉은 말에 16살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그저 일이에요. 직업이라고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좌절하지도 말라는 의미로 해석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졸고 있으면 수업을 재미있게 하지 못한 내 탓같아서 속상했는데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저 그들 나름대로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여겨."
"맞아요. 늘 자는 애들은 밤에 늦게 자거나 핸드폰 해서 그래요."
그 현자는 내 말에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었다.
20여 년 가까이 선생으로 살면서 내가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학생과의 관계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는 사실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는 것은 내가 나약한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여기 있다고 손 흔드는 표지와 같으며 교사-학생이 아닌 사람-사람으로 만나게 해주는 전환점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수업이 막히거나 학생들 때문에 속상한 일이 생기면 종종 감정을 표현한다. 네가 어떤 행동을 해서 마음이 아프다, 네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한다. 물론 화를 내며 잔소리를 퍼붓고 엄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즉각 나타나지 않는다. 아예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학생들이 내 말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대화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나를 이끌 때면, 작은 위안을 얻는다. 그저 직업일 뿐이라는 학생의 말이 나를 조금은 가볍게 했다. 내가 내 감정을, 느낌을 표현하지 않았다면 얻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