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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김구난방

질문에는 엄청난 힘이 있어

8년 연애하고 5년째 부부로 살게 된 계기

by 김이서

수업을 마치며 교수님이 질문이 있냐고 했다. 당연히 없겠지 생각하고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손을 번쩍 든 모양이었다. 1센티 정도 공중에 뜬 궁둥이를 냉큼 다시 붙였다. 어떤 용기 있는 자가 이 콩나물시루 안에서 질문한단 말인가. 난 지극히 평범한 한국인 학생으로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내 그의 목소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좋은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나 나를 뒤를 돌아보게 만든 것은 내용이 아니라 중저음의 동굴 목소리였다. 흰 피부에 갸름한 얼굴, 사각 뿔테 안경을 쓴 그는 단색 셔츠차림을 하고 있었다. 상상 속 법대생 그 자체였고, 어딘지 모르게 답답한 모습이 날 정말 미치게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이어온 한결같은 내 취향이었다. 수업이 끝난 뒤부터 난 줄곧 인간 밤고구마 생각뿐이었다. 햇살이 좋던 어느 봄날, 건물과 건물이 이어지는 통로를 지나며 무작정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요?”


모르는 여학생에게 인사를 받은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그렇게 똑 부러지게 질문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설프게 되물었다. 인사를 받았는데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서 말이다. 그에 질문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고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땐 그저 그에게 난 아는 얼굴(혹은 잊기 힘든 얼굴)이 되었고, 그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 다음부턴 인사를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신이 나 있을 따름이었다.


오가며 인사만 나누는 한 학기를 보냈고, 조금 친해졌고, 사귀게 되었다. 왜 사귀자고 했냐 물었더니 어느 날부턴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내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8년의 연애를 했고 인간 밤고구마에게 ‘나랑 결혼해 줄래?’라는 질문을 받았고 답하여 5년째 부부로 살아가고 있다.


질문에는 이렇게 엄청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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