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욕조 안에서

25.01.09 날씨 맑음

by 김이서


오늘은 아빠가 유독 많이 피곤해하는 날이었어. 원몬이 목욕시키는 건 아빠 담당인데, 욕조에 널 담가놓고 소파에서 일어날 기색이 없어 보였지. 네가 혼자 샤워기로 물장난하는 것도 슬슬 그만할 때가 됐는데.


저녁 먹은 것도 치워야 하고, 너 책 읽어주고 재울 것도 생각하면 엄마가 씻을 시간도 부족했지. 그래서 그냥 같이 씻기로 했다. 아빠한테는 "나 씻으면서 원몬이 같이 씻길게, 내보내면 마무리만 좀 해줘."하고 욕조로 퐁당 들어갔단다.


넌 잠깐 의아해했지만 곧 활짝 웃었지. '오잉? 엄마가 들어왔네? 와! 신난다!'하고 말하는 듯했어. 그동안 널 씻겨주기만 하고 같이 목욕을 하진 않아서 그랬나 봐.


엄마가 욕조에 들어가니 물이 네 목까지 찰랑였지. 놀랄까 봐 얼른 안아 올렸단다. 무릎을 세워 산을 만들고 허벅지 위에 너를 앉혔어. 잠시 살갗에 닿는 물결을 느끼며 물 속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단다. 문득 '네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따뜻한 욕조 안에서 네 머리를 감겨주었어. "눈 아야 하니까 가만히 있어"라고 했는데도 계속 뒤돌아보며 싱긋 웃는 모습이 정말 개구쟁이 같아. 방울방울 보드라운 거품을 만들어 구석구석 닦아주는데 갑자기 네가 엄마 품으로 미끄덩 뛰어들어서 놀랐단다.


고사리 같이 작은 손으로 엄마 등을 쓱쓱 문질러주는데 미끈하고 작은 도마뱀이 후다닥 지나가는 것 같아 너무 간지러웠어. 하지만 넌 꽤나 뿌듯했나 봐. 샤워기를 들고 "머리 뒤로! 뒤로!"라고 하면서 엄마 머리도 헹궈주었지.


엄마가 하던 말을 똑같이 따라 해서 그랬나 마음이 찡했단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싶어서 말이야. 어찌나 조심스러운지 눈에 물 한 방울도 안 들어갔는데, 괜스레 눈이 맵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원몬아, 너와 함께하는 날들 속에서 이런 뜻밖의 순간들이 큰 행복으로 다가와. 고된 날들을 녹여 없애 버리는 것만 같아. 비누거품처럼 말이야.


네가 점점 자라며, 서로의 공간을 존중해야 하는 날이 오겠지? 함께 목욕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이 순간이 더 특별하게 느껴져. 그때까지는 가끔 욕조에서 같이 놀자. 눈, 코, 입 놀이를 하며 얼굴에 거품을 칠하고 웃던 때가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아. 네가 배수구로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흉내 내던 게 떠올라서 벌써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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