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노는 고기 맘마를 먹지

25.01.10 날씨 맑음

by 김이서


오늘은 너의 두 돌 기념 촬영을 앞두고 미용실에 갔어. 머리 자를 때마다 목놓아 우는 너를 생각하면 은근히 긴장되는 일이었지. 그런데, 오늘은 달랐어. 병아리 커트보를 두르고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생긋 웃는 네 모습이라니! 동글동글 귀여운 양송이 머리가 너도 마음에 들었던 걸까?


커트를 마치고 네가 부원장님께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인사까지 하더라. "안 울고 머리 자르기, 처음이었어요. 감사합니다!" 엄마도 그렇게 말하며 세심한 배려에 고마움을 표했단다. 한편으로는 부쩍 의젓해진 원몬이가 대견하기도 했어.


기분 좋게 나온 김에 아래층 서점에 들렀어. 머리 자르느라 고생한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거든. 책도 읽어주고 작은 장난감도 하나 사주려고 했는데, 네가 고른 건 '공룡아 뭐 먹니?'라는 책 한 권과 '생생 공룡 손전등 사운드북'이었단다.


처음엔 이것저것 집어 들어서 다 사달라고 떼를 쓸까 걱정했단다. 그런데 두 개만 골라보자는 말에, 너는 4개의 후보를 두고 고민했어. 곧 "이거랑 이거!"하고 두 개를 집어 들었지. 이제 겨우 두 살인데 네가 엄마 말을 이해하고, 스스로 선택할 줄 알다니 가슴이 뭉근해졌어.


엄마도 어릴 적에 공룡을 참 좋아했단다. 초등학생 때 너의 외삼촌이랑 공룡 이름 말하기 놀이도 하고, 물에 넣으면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공룡 모형 장난감도 키웠단다. 사생대회에서도 공룡을 그릴 정도로 푹 빠져있었지. 너에게도 벌써 공룡에 대한 호기심이 시작되었다는 게 놀랍고 반가워.


집에 돌아와서는 커튼을 치고 온 집안을 깜깜하게 만들었어. 필름을 끼우고 손전등을 켜자 거실 벽에 커다란 공룡이 나타났지. 너는 "이거 뭐야?"라고 물으며 눈을 반짝였어. "안녕, 난 티라노사우르스야." 티라노사우르스는 소파 위를 걷고 커튼을 지났지. 원몬이가 "높이 올라가!" 외치며 손을 위로 휘저으면, 천장으로도 뛰었어.


"티라노는 고기 맘마를 먹지! 원몬이 발 냠냠!" 엄마의 장난기가 발동하자, 넌 씨익 웃으며 슬금슬금 피하다 "무서워, 무서워"하고 도망쳤어. 그런 널 쫓아다니다 보니, 거실은 어느새 '쥐라기 공원'으로 변했단다. 그 순간 엄마도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어.


너와 나란히 앉아 책장을 넘기며 공룡 이름을 익힌 시간도, 공룡 손전등을 켜고 벽에 비친 그림을 보며 놀던 시간도 그저 즐거웠어. 너랑 더 재미있게 놀아줄 생각으로 한 일인데, 엄마가 더 신이 나 버렸네.


돌이켜보면, 네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일들이 결국 나를 더 행복하게 했어. 네가 조금씩 자라며, 엄마의 마음을 얼마나 환하게 밝혀주는지 새삼 깨닫는다.


원몬이 덕분에 오늘도 행복했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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