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 된 제니 이야기
“언니! 저 기억해요? 같이 스터디했던 제니 에요.”
‘제니’라는 이름은 낯설었지만, 카톡에 저장된 그녀의 본명과 썸네일 속 얼굴은 낯이 익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 속 인물을 다시 보는 것처럼, 몇 년 전 강남역 공유 회의실에서 작은 테이블에 모여 앉아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던 그날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사랑스러운 미소는 여전한데 눈가에는 전에 없던 주름이 있다. 얼마 만인지 몰라도, 아주 오랜만인 것은 분명하다.
나보다 2년 먼저 엄마가 된 제니는 카톡을 보다 내 썸네일이 아이 사진으로 바뀐 것을 발견하고 참 반가웠다고 한다. 그 마음을 왜 모를까. 나 역시 같은 마음으로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가던 중 우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네! 우리가 이웃이라니!”
나도 참 믿기 힘들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를 다시 잇는 인연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녀는 작아서 못 입는 깨끗한 아기 옷과 신발들을 주고 싶다고 했다. 내 생일을 맞아 속초 여행을 다녀왔던 날, 우리 집 문 앞에는 제니가 두고 간 물건이 한가득 있었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사람인데 어찌나 고마운지 그녀를 다시 만난 게 선물 같았다.
문 앞에 쌓인 옷, 신발, 장난감을 보고 남편은 이게 다 뭐냐고 깜짝 놀라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다 그녀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말문이 막혔다. 제니가 언제 어떻게 내게 스며들게 되었는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지 선명히 떠오르지 않았다.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너무 잘 챙겨주는데, 이상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다단계'를 조심하라고 했다.
잠시 당황했지만, 매일 인간의 추악한 밑바닥을 상대하는 사람다운 조언이라 생각했다. 진심 같은 거짓을 수도 없이 겪다 보면 누구라도 남에게 쉽게 마음을 열거나 선의를 곧이곧대로 믿는 일이 드물 테니까.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그녀의 호의를 의심하며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씁쓸하게 다가왔다.
끝내 그녀의 정체를 떠올리진 못했지만, 우리는 육아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다시금 가까워졌다. 그녀의 작은 배려와 상냥함은 무심했던 나를 일깨웠다. 그 다정함을 닮아가면서 좀 더 따뜻하게 살아가야지 소소한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