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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이네집 Jun 30. 2021

배추를 좋아하나요.

- 작은 배추 <구도 나오코 글, 호테하마 다카시 그림>를 읽고

작은 배추 <구도 나오코 글, 호테하마 다카시 그림, 이기웅 역, 길벗어린이>

배추가 자라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배추는 다른 배 추처럼 쑥쑥 성장해서 트럭을 타고 채소 가게로 가 고 싶지만, 작다는 이유로 배추밭에 홀로 남겨집니 다.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감나무는 곁에서 배추에 게 이것저것 알려주며, 위로를 전하지만, 배추에겐 못 떠난 사실이 슬프기만 합니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어린이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전 이미 어른이 되어버려서 ‘시장에 가도 별거없어, 김치가 될 뿐이야, 밭에 남는 것도 괜찮은데...’ 이런 마음으로 작은 배추를 바라보게 되네요. 얼마나 재미없는 어른의 마음인가요. 


작은 배추는 감나무 옆에서 다른 배추들이 떠난 자 리에 남아, 자기를 키웁니다. 다가올 시간과 봄에 대해 궁금하기, 두렵기도 하지만 다행히 감나무가 곁에서 따뜻하게 지켜주고 바라봐주네요.   


유기농산물을 직거래하는 생협에서 일했을 때 해마다 11월 마지막 주말은 김장 공급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김장에 들어가는 배추, 무, 갓, 생강, 대파, 쪽파 등을 날짜에 맞춰 공급하려면 생산자가 시기에 맞게 파종하며, 키워내고 생협 직원들은 그것들이 잘 자라는지 1년 내내 계획하며, 점검해야하고요. 밤을 가르고 새벽을 달려 무사히 물류센터로 온 김장거리들을 1톤 트럭에 나누어 담아 주문한 사람들에게 출발합니다. 시장이나 마트에 있는 농산물에 비싸구나 싸구나, 신선하네 시들었네 등 가격이나 신선도와 관련한 말들만 할 줄 알았지, 아니 20대 때는 그런 관심도 잘 없었던 것 같네요. 생산자의 얼굴, 손, 눈물 등을 생각 하게 된 건 생협에서 직원으로 일하면서였습니다. 어마어마한 김장 공급 물량을 온 몸을 써가며 받아내고, 약속한 시간에 맞춰 각 집으로 배달을 갈 때는 농부의 마음처럼 조마조마 해지곤 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어디 가서 예쁨 받길 바라는 마음이 되어, ‘귀하게 키웠으니 맛있는 김치가 되어 그 집의 든든한 겨울 식량이 되렴.’ 애틋하고도 짠한 감정으로 보냅니다. 


작은 배추는 눈이 내리는 차디찬 겨울을 납니다. 곁에는 감나무가 서 있습니다. 작은 배추는 더 이상 작은 배추가 아닙니다. 줄기가 훌쩍 자라 노란 꽃들을 피워냈고요. 춥고 외로운 계절을 견뎌내며, 나비가 날아다니고 봄바람이 살랑대는 새로운 계절을 맞았으니까요. 


계절이 담긴 그림책은 넘길 때마다 색감이 달라져 변화하는 자연과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합니다. 한참 머무르며 그림을 보면서 마음의 중심이 작은 배추였다가, 감나무였다가, 배추를 먹는 인간이었다가, 작은 배추를 쓰다듬는 트럭 아저씨였다가 오락가락합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배추처럼, 예상치 못했던 길로 왔지만 자기만의 꽃을 피워낸 배추처럼, 이곳에 이를 줄은 몰랐지만 다다른 중년의 어느 시점에 배추찜, 배추전, 배추김치, 배추쌈 다양한 배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작은 배추’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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